척하며 산다는 것
- 안재동作
싫어도 좋은 척
좋은데 싫은 척
없어도 있는 척
있어도 없는 척
이런 척, 저런 척...
척도 참 가지가지로구나
안 그러고는 살 수 없는 세상인가
안 그러고도 살 수 있는 세상인가
척하며 살기
인간이란 본시 그런 걸까
사회적 산물의 산물일까
척이란 것은 결국
위선 혹은 연기
유쾌하진 않지만 밥 먹듯 하는 일
오늘 나는 또 어떤 척을 했나
[시인 이오장 시평]
자연 속에는 위험이 많고 그 위험은 대부분 맹수에서 온다.
식물 채집하기 전 인간은 조개류나 작은 짐승을 사냥하며 살았다.
점차 삶의 폭이 넓어지고 터전을 확장하며 농사를 짓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때 맹수에게서 받은 위험을 피하고자 숨게 되고 마주치면 움츠리든가 허세를 부려 피하기도 했을 것이다.
또한 영토를 가지게 되면서부터 적을 향해 작아도 큰 척, 없어도 있는 척, 도망치며 숨는 척 등등 생활의 대부분이 척으로 시작되어 척으로 끝냈다.
더구나 한 울타리에 살면서도 가족을 안심시키기 위한 용감한 척, 가장의 위세를 내세우는 허세 등도 있었을 것이다.
현재를 보면 그것은 더 심하다.
외면과 내면의 모든 것이 감시당하듯 투명한 문명시대에 척이 없다면 살 수 없고 사회에서 도태되는 건 순식간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자신을 속이는 짓이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행동이지만 자신은 진실을 안다.
그래서 괴로움의 부작용이 생긴다.
성인군자라는 말이 생겨났고 철학자들은 이러한 심리상태를 분석하여 가르쳤다.
안재동 시인은 이점을 간과하지 않고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세상 모든 사람에게 얼마나 많은 척을 했는지 묻는다.
그렇게 하고도 괴롭지 않았는가.
대답은 가지가지일 것이다.
살려고 태어나서 밥을 먹는데 척이라도 해서 살아야 한다.
시인은 이점을 지적한다.
있는 그대로 살면 되는데 거짓으로 포장하여 살아야 하는가.
그러나 영원히 풀 수 없는 숙제다.
척도 삶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오늘 나는 어떤 척을 했는지 저녁이면 곰곰이 생각하고 한 번이라도 뉘우침의 시간을 갖자. 이것이 시인의 뜻이다.
[전국매일신문 詩] 시인 이오장(현대시인협회 부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