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작 노트
- 김유진作
다 붙잡지 못하고
다 붙잡을 수도 없어
멀리 달아나는 말 중에 간신히 몇을 붙잡았다
영감靈感은 언제나 번개 같아서
내 옆구리를 슬쩍 지나가는 바람의 숨소리다
기분이 좋으면 순간에 머물지만
언제나 뾰족하여 조심히 어루만져야 한다
나의 붓은 동작이 느리고 뭉툭하여
늘 몸을 줄이고 미려하게 다듬어야 한다
대체로 할 말은 줄이고 뭔가를 익숙하게 생각하며
깊이 간직할 수 있는 가슴을 키워야 한다
정오의 대낮, 오늘도 신작로를 맨몸으로 나선다
나의 진심의 옷도 이제 많이 낡았다
[시인 이오장 시평]
목욕재계하고 의관을 갖춘 후 정성으로 먹을 갈고 온몸의 기를 모아 글을 쓰는 게 옳은가.
그래야만 명문이 나올까.
또 명상에 잠겨 하나의 화두를 들고 집중한다면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
그런 글은 이미 정해진 정석에 따라 그대로 복사하듯 쓰던가 아니면 줄을 그어 넣고 칸에 맞추면 된다.
시를 쓴다는 것은 순간으로 얻은 영감을 붙들고 망설임 없이 상상이나 체험을 통해 얻은 이미지를 그리는 것이다.
시는 움직이는 것으로 쓸 때도 살아 있어야 하고 쓴 후에도 그 생명이 꿈틀거려야 좋은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정해진 순서, 가둬진 틀이 없어야 하며 읽는 순간 화자와 한 몸으로 움직여야 독자가 무릎을 치며 감탄하는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시를 움직이는 언어, 언어를 넘는 상상의 언어라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순간적인 변화로 인하여 불현듯 나타난 언어의 그림을 붙잡기는 쉽지 않다.
상상을 초월한 기억력을 가졌다 해도 자신의 틀에 가둘 수가 없다.
한마디로 시를 쓴다는 것은 흘러가는 구름의 변화를 읽는 것과 같다.
금방 모양이 바뀌는 뜬구름 잡기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김유진 시인은 여느 시인과 마찬가지의 고민에 직면했다.
무엇인가를 붙잡았는데 가두려 하면 금방 사라져버려 다시 떠올리지 못하는 고민에 빠진 것이다.
몇 마디를 쥐었다 해도 번개 같은 바람의 숨소리같이 멀리 가버린다.
더구나 잡은 것마저도 뾰족하게 돌출되어 있어 다루기가 쉽지 않다. 시인이라면 누구나 겪는 일상적인 일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늘 몸을 줄이고 익숙하게 깊이 간직할 수 있는 가슴, 즉 마음의 넓이를 키워야 한다.
그러나 그런 다짐으로 맨몸으로 새로운 길을 나서지만, 아직 멀었다.
언제나 새로움을 찾지만 진심의 옷은 많이 낡아버린 것이다.
시작노트라 이름 붙이고 시인이라면 누구나 겪는 시 쓰기의 고민을 적나라하게 밝힌 시인의 자세가 새롭다.
[전국매일신문 詩] 시인 이오장(현대시인협회 부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