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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익의 시선] 자유와 평등의 실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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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익의 시선] 자유와 평등의 실현
  • 양동익 제주취재본부장
  • 승인 2022.11.03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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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익 제주취재본부장

세계 선도국가가 되기 위한 조건, 인류와의 공존

누구나 자유로운 영혼을 꿈꾼다. 삶에서 ‘자유롭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열리고 머리를 맑게 하는 순간의 경험이다. 맑은 가을날의 푸른 하늘을 올려보고 높은 산위에서 넓은 세상을 굽어보듯 혼자서도 세상을 다 품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순간이다. 그러나 ‘자유’가 현실 속에서 항상 주어지는 것만도 아니며 몸이 자유롭다고 마음까지 자유로운 것도 아니다. 더구나 인간이 삶 속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지에 대한 회의를 느낄 때도 있으며 스스로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서 좌절을 경험하기도 한다. 끝임 없는 자유에 대한 갈망이 목마름으로 다가오는 순간들인 것이다. 자유롭지 못한 인간의 삶과 자유롭고 싶은 인간의 요구가 평행을 이루는 현실은 삶에 주어진 숙명과도 같다.

사회가 고도화되고 체계적으로 운영된다는 것은 오히려 인간의 자유를 위협한다. 현대사회의 산업화에 따라 노동자가 기계부품처럼 톱니바퀴가 돌 듯 생활이 구속되는 자유의 종속은 이미 18세기 산업화를 통해 증명된 사실이다. 어쩌면 이러한 인간의 자유에 대한 종속은 오늘날에도 고도화되어 스스로를 가둬두는 환경을 강요받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오랜 옛날부터 계급사회로 구분되고 상하관계가 형성되어 이러한 종속적 관계는 육체를 구속하는 오래된 관습이었다. 전체주의적 관점에서 인간은 스스로가 소모품에 불과한 삶을 살고 있는 것만 같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인간 개개인의 역사는 존재한다. 근대에 등장한 자유주의 사상이 불현 듯이 재기된 몇몇 선각자들의 주장과 발견만은 아니다. 생각해보면 참으로 오래된 인류의 노력이고 인간의 계급 구조를 허문 본질적인 힘이기도 하였다. 자유는 인간의 존엄성을 구체화하는 개념이기도 하다. ‘진정한 인간의 자유는 무엇인가?’ 하는 질문은 개인 삶에도 적용되는 것이고 삶의 노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중세의 패쇄적 사회에서 바하는 음악을 통해 자유로울 수 있었다. 18세기 프로이센 제국에 속한 공국 함부르크의 궁정악장으로 봉건 영주의 고용인에 불과하였지만 그의 음악적 보편주의는 오늘날까지 막대한 영향을 주었다. 수학적으로도 완벽할 수 있는 그의 예술의 세계는 인간의 자유로운 상상이 갖는 무한한 경험을 보여주고 있다. 인간이 갖는 구속된 현실을 넘어서는 상상의 범위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예술이 갖는 매력은 자유로운 상상의 세계에 들어가는 창이다. 마찬가지로 모든 예술가들의 그림이나 조각에서 보이는 아름다움은 그들의 의식의 저변으로 향하는 자유로운 의식의 흐름이다. 그러나 이러한 의식의 흐름을 모두가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 이러한 현실은 슬픈 진실이다. 그러한 이유로 많은 인간의 가식을 만들기도 하고 사람을 구별하는 수단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예술에 대한 이해는 인간의 자유로운 의식에 대한 이해이다. 형상으로 나타나는 작품을 통해 작가의 의식을 물 흐르듯 따라가는 작업이다. 예술은 ‘유희’라는 즐거움의 본질에 접근하는 길이다. 그리고 즐거움의 본질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자유로운 의식의 흐름이 필요하다. 그런 이유로 인간의 모든 욕망이나 비판적 의식에 갇힌 인간의 활동이 ‘승화를 통한 자유로움’의 결과를 갖지 못한다면 이는 예술이냐 아니냐의 기준이 된다. ‘인간의 자유’는 인간의 예술 활동을 규명하는 기준이다.

사람들은 자유의 방종을 경계한다. 자유에 대한 책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평등’의 개념은 자신의 자유의 가치만큼 다른 사람의 자유를 인정하는 공감에서 시작된다. 그러므로 개인의 자유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라면 이는 자유가 아닌 방종이 되는 것이다. 자신의 자유로운 인식과 행동만큼 다른 사람의 자유도 중요하다. 자유과 평등은 무엇 하나 경중을 가리지 못할 만큼 공존하는 두 개의 중요한 축을 이루는 것이고 사회를 구성하는 중요한 가치이다.

그러나 자유와 평등이 대립된 가치로 존재하는 사회는 그 한계를 넘어설 수 없다. 그 대표적인 경우들이 평등을 기반으로 한 사회주의 사상과 자유를 기반으로 한 자유경제주의 사상의 대립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지향하는 우리의 경우도 편협한 이러한 환경적 요인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자유는 평등을 기반으로 하고 평등의 진정한 실현은 자유의 가치를 기반으로 하여 서 있다. 결코 자유와 평등은 양립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개인의 삶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사람을 상하로 구별하는 오래된 계급의식은 지금도 개인의 인식에 자리하고 있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가치가 오늘날 보편적 가치로 자리 잡았으나 이러한 불가분의 원칙을 허무는 중요한 이유가 되고 있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 하지만...?’하는 의문이 여전히 꼬리를 물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성장과 함께한 막연한 고정관념은 스스로도 그러한 계급의 질서 속에 위치하고 있다. 그러한 이유로 이러한 계급의식을 벗어나는 것은 노력의 일환이다.

나보다 부족한 사람들에 대한 배려는 우리 사회의 오래된 정서였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인 마이클 샌델은 공동체주의를 현대인류가 향후 추구해야할 가치라 주장한다. 그는 밴담이 주장한 ‘최대다수의 최대행복’로 대변되는 공리주의에 대하여 소수의 희생을 합리화한다고 비판하였다. 존 롤스의 평등적 자유주의에 대하여는 기회의 평등과 부의 재분배에 대한 차등의 원칙의 허구를 비판하였고, 미국 등 자본주의 경제를 고도화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채택하고 있는 자유지상주의가 추구하는 정부의 최소한의 역할도 비판하였다. 공동체 주의의 요점은 개인은 공동체의 전통에서 비롯된 도덕을 배워서 '도덕적 인성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또한 '도덕적 인간'은 그가 속한 공동체의 사회적 의무를 지키려고 노력해 자기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공동체의 안정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그 도덕적 가치를 실천함으로써 느껴지는 만족감 즉 ‘행복’이 '인간 존재를 위해 좋은 선'에 한하여 우리사회가 권장하는 도덕이 될 수 있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과 행복론을 차용하였다. 여기에 더하여 샌델은 여러 가치들 중 우리사회에 더 합당하고 중요한 도덕적 가치들을 판단해 우리의 도덕(공동선)으로 만들자는 정치적 적극성을 띠고 있다. 권리에는 자연적 의무(생명, 자유), 자발적 의무(합의), 사회적 연대 의무(충성)가 있으며 이러한 권리의 정당성은 그 자체에 있지 않고 그 권리가 기여하는 '목적(telos)의 도덕적 중요성'에 의존한다는 것이 샌델의 주장이다. 이렇게 공공선 즉 ‘도덕’을 고민하는 시민들의 정치 참여가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사회를 개선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시민 의식을 만들어 내며 그 사회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러한 장황한 주장의 핵심은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라는 개개인의 실천적 문화에 있다. 그리고 이는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동시에 실현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우리 사회가 오래 전부터 가져온 이러한 공동체 의식은 샌델이 추구하고자 하는 공동체주의에 누구보다 근접해 있으며 문화로 정착되어 있는 것이었다. 사실 ‘자유’라는 개념이 개인에게는 직관적으로 직접 다가올 수 있는 문제이지만 ‘평등’의 개념은 그 만큼 다가오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한 이유로 샌들 역시 공동체주의를 주장하였지만 피부에 닿을 만큼의 구체성을 주는 것에는 실패한 셈이다. 공동체주의는 ‘평등’에 대한 구체적인 접근이며 ‘자유에 대한 확장의 개념’이다.

평등의 실천적 원천은 배려와 관용에서 나온다. 그리고 공동체주의의 실천적 행위가 된다. 공동체주의의 실천적 행위는 공동체 문화의 형성이다. 문화가 개인의 사회적 관계에 대한 총합이란 개념에서 접근한다면 한국사회의 긍정적인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K-문화의 세계화와 한국사회에 대한 자긍심이 시너지 효과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자 하는 국민의식이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사회 분위기, 시민을 위한 편의시설의 확충, 다양성을 수용하는 외국인에 대한 친절 등 공동체주의를 고도화하는 사회적 현상은 지금도 진보해 나가고 있다. 이 모든 것이 공동체 구성원 개개인의 배려와 관용의 정신에서 시작되고 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K-문화의 핵심 되는 가치는 배려와 관용에서 시작된 공동체 정신에 있다.

국가는 공동체의 확장된 개념으로 존재해야 한다. 현대국가의 출발이 소수의 권위주의 정치세력에서 출발하였다는 점과 현재의 이러한 권위주의 국가의 존재는 타산지석이 되는 것이다. 고조선의 존재나 고구려, 신라, 백제 등 우리의 고대국가들이 합의제 연맹체였다는 사실을 다시 상기할 필요가 있다. 로마의 존재가 그러했고 페르시아 제국의 존재가 그러했다. 현대에 이르러 지방자치를 강조하는 이유와 정치개혁의 방향성과 그 성공을 위해서 그 핵심가치가 공동체주의가 목표가 되어야 하고 다양성의 수용을 위한 배려와 관용의 정신은 실천덕목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이것이 자유와 평등을 동시에 실현하는 유일한 길이 될 것이다.

[전국매일신문] 양동익 제주취재본부장
waterwrap@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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