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이 계속해서 자본시장과 관련한 새로운 의제를 만들어내고 있다. 은행권 횡재세, 공매도 금지 등에 이어 이번엔 대주주 주식양도세 완화 카드를 꺼내 들었다. 금융위원장을 겸직했던 이헌재·윤증현 전 금융감독원장을 제외하고 역대 금융감독원장 중 가장 파워풀한 사람을 꼽자면 아마 현직인 이복현 원장일 것이다. 이 원장의 파워는 김주현 금융위원장을 능가한다는 것이 금융권의 대체적인 평가다. 그 결과 금융위와 금감원의 위상도 역전된 듯하다. 금융계는 늘 이복현 금감원장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그가 던지는 메시지가 윤석열 정부의 금융정책 방향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최근 이복현 원장은 기자들에게 이런 얘기를 했다. “올해 은행권의 이자수익이 60조원 수준으로 역대 최대 수준에 이르고, 3분기 영업이익을 봐도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 등을 합친 것보다 은행권이 크다”며 “과연 반도체나 자동차산업만큼 국제무대에서 다양한 혁신 노력을 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복현 원장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까지 나서 법제화를 공론화하는 등 정치권을 중심으로 논의가 활발한 횡재세 도입과 관련해서도 “횡재세의 경제적 효과나 기의 연속성, 정책적 측면 등은 고민해야겠지만 그것을 토대로 다양한 문제점이 논의될 필요는 있다”며 부정하지 않았다. 이복현 금감원장의 이 같은 발언은 앞서 윤석열 대통령이 민생경제회의와 국무회의 등에서 고금리로 어려운 소상공인들이 죽도록 일해서 고스란히 대출 원리금 상환에 갖다 바치는 ‘은행의 종노릇하는 현실’을 비판하고, 은행의 독과점 시스템을 방치해선 안되며 어떤 식으로든 경쟁이 되게 만들어야 한다며 금융권을 질타한 것과 맥을 같이 한다.
정치적 입장은 극과 극으로 달라도 은행권의 사상 최대 이익 시현에 대단히 부정적이고, 횡재세 등을 통해 어떤 형태로든 금융권의 독과점 이익을 사회에 환원시켜 서민들을 지원하겠다는 점에서는 윤 대통령이나 이복현 원장, 이재명 대표의 생각이 일치하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렇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내년 4월 총선이 5개월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겠지요.결국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얼마전 이른바 은행을 대상으로 한 ‘횡재세’ 도입 논의에 대해 소신을 밝혔다. 장단점이 있어 여러 고민을 하고 있다는 입장이다.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횡재세 관련 입장이 정해졌느냐’는 더불어민주당 민병덕 의원 질의에 확정된 건 없다는 답변이었다. 김 위원장은 은행들의 서민금융 출연 확대와 관련해서도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는데 사실상 이러한 민주당의 횡재세 도입에 관한 여러 논란은 뜨거운 감자로 국민의힘 윤창현 의원도 서민금융 출연 확대를 통해 은행 이익을 공유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취지로 발언한 바 있다.
알려진대로 민주당은 그동안 정유사와 은행권에 대해 횡재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꾸준히 제기해 왔다. 그래서 금리 인상과 유가 상승 등 대외 경제 변수로 인해 기업들이 벌어들인 초과 수익에 대한 빠른 횡재세 입에 나서고 있는지도 모른다. 판단하기 따라 최근 국민의힘에서 김포의 서울시 편입이나 공매도 금지같은 대형 이슈 주도권 경쟁에서 밀린 탓으로 여겨진다. 실제로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당일 국회에서 열린 ‘한국형 횡재세 도입, 세금인가 부담금인가’ 토론회에 참석해 횡재세 도입과 관련한 여러 의견을 밝힌 바 있다.
아마도 그것은 국민의 고통을 담보로 막대한 이익을 내는 기업들에 최소한의 사회적 기업 고통 분담을 함께해달라는 것으로 본래의 취지에 다른 의견은 별로 없어 보인다. 홍 원내대표의 얘기대로 이제 우리 사회도 진지한 논의를 통해 횡재세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는데 있다. 다만 이러한 횡재세가 조세왜곡을 발생시킨다는 주장이 근거가 약하다 해도 세금이 경제적 효율성을 낮추는 경우는 경쟁 시장에서만 성립하며 독과점적 비효율성이 존재하는 경우 정부의 개입이 타당하다는 한 참석자의 의견이 이성적으로 받아들여진다. 관련 기업들의 과도한 영업이익과 은행권의 초과 이득에 대해 과세를 하고, 이렇게 징수된 세액 중 일부를 소상공인 혹은 서민금융 지원 등에 배분하자는 게 중심에서다.
사실상 올해 초까지만 해도 횡재세 도입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혀왔던 정부다.하지만 최근 대통령의 ‘종노릇’ 발언 이후 급선회하는 모양새로 고물가·고금리 국면이 1년 넘게 이어지면서 표심이 악화하자 정치권에서 은행 횡재세를 카드로 꺼내 든 것으로 여겨진다. 문제는 횡재세 규모와 부과 방식에 따라 부작용도 클 가능성이다. 은행권을 향한 투자자 심리가 얼어붙으면서 은행들의 자금 조달 비용이 늘 수 있고 시장이 흔들릴 여지도 있어서다. 은행권의 손실흡수 능력이 줄면 국가 경제 전체의 거시건전성이 타격을 입는다는 점이다. 향후 거시경제 환경도 무시하기 어려운 탓이다. 그럼에도 악화되는 여론에 등장할 수 있는 횡재세의 향방이다.
금융산업은 애초에 금융이 갖는 공공성 때문에 인허가 비즈니스이며 따라서 과점산업이 될 수밖에 없다. 단적으로 우리나라 은행업은 국민 신한 하나 우리 농협 기업은행 등 6대 은행이 사실상 시장을 지배한다. 보험업이나 증권산업도 크게 다르지 않다. 금융산업이 과점체제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은 금융이 네트워크 비즈니스이고 슬로 비즈니스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신규 진입도 어렵지만 어렵게 진입해도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되기는 더 어렵다. 문제는 윤석열 대통령 말대로 이런 과점체제를 깨고 독과점의 폐해를 없애려 할 경우 이게 쉽지도 않을뿐더러 자칫 부작용만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당국이 카카오뱅크 등 인터넷 은행들의 신규 진입을 허용하고 대구은행 등 지방은행을 시중은행으로 전환시킨다고 은행업이 과연 경쟁산업으로 바뀔까요. 답은 매우 부정적이다. 더욱이 금융위기가 발생할 경우 제일 먼저 흔들리는 곳은 작은 은행들이다. IMF 외환위기 때 다수의 지방은행들과 중소기업 지원 등을 명분으로 설립됐던 동남 대동 동화은행 등이 문을 닫았던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금융산업은 애초에 경쟁산업이 될 수 없고 경쟁산업으로 만드는 데 따른 사회적 비용이 너무 크다. 이자 장사로 금고를 불린 은행들이 해마다 과도한 성과급 잔치와 명예퇴직금 퍼주기로 따가운 비판을 자초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횡재세 도입은 따져봐야 할 것들이 하나둘이 아니다. 자유시장 경제의 근간을 훼손할 수 있다는 점이 우선 그렇다. 은행들의 모기업인 금융지주가 상장사라는 점에서 이중 과세나 재산권 침해 등의 논란이 제기될 수도 있다. 초과 이익에 대해 추가로 세금을 부과한다면 추후 초과 손실을 볼 때 이를 보전해줘야 하는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 면밀한 사전 협의가 전제돼야 하는 것이다.
국회에는 현재 횡재세 관련 법안들이 야당 발의로 기획재정·정무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은행 수익의 일부를 서민금융진흥원에 부담금으로 출연하는 법안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정부는 달라야 한다. 유권자를 의식해 반시장경제 색채가 짙은 제도를 고집할 수 있는 야당에 비해 보다 균형잡힌 법안을 금융 당국은 고민해야 한다. 취지가 좋다 해도 경제 주체들의 자율적 의사를 무시하고 시장 경제를 위협한다면 문재인 정부의 반기업 정책과 다를 게 없다. 고전 ‘논어’의 마지막 장인 요왈(堯曰)에는 “시대의 큰 흐름인 명(命)을 알지 못하면 어찌 군자라 하겠는가”는 구절이 나온다. 정치인이든 정부당국자든 눈앞의 이해관계보다 큰 흐름을 읽고 판단을 하기 바란다. 특히 금융감독원이나 금융위의 최우선 과제는 횡재세 같은 것을 거두는 게 아니라 가계부채 관리 등 금융의 건전성 확보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전국매일신문] 최재혁 지방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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