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화순의 나물이야기] 아홉 번 산다는 강인한 생명력의 주인공, 고사리 이야기

고화순 대한민국식품명인 남양주시 하늘농가 대표

2024-05-24     전국매일신문

고사리는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펴져 있는 양치류로 고생대에 번성한 다년생식물이다. 공룡의 시대가 끝나고 포유동물이 나타났고 속씨식물 시대가 열렸다. 고사리는 6,500만 년 동안 속씨식물과 경쟁하면서 멸종하지 않고 오늘날까지 살아남았다.

‘고사리’의 어원은 ‘구살이’에서 비롯되었다는 설과 ‘굽사리’ 또는 ‘곡사리’에서 파생됐다는 설이 있다. 먼저 구살이는 ‘아홉 번 산다’는 뜻으로 고사리의 강한 생명력을 의미한다. 그래서 고사리를 채취할 때는 캐지 않고 줄기 아랫부분을 끊어낸다. 고사리를 채취한 곳에 며칠 지난 후에 가면 다시 고사리 줄기가 올라와 이전처럼 무성해진다. 그렇게 거듭 끊어도 다시되 살아나기를 아홉 번 한다고 하여 ‘구살이, 고사리’라고 불렀다고 한다. 

‘굽사리’는 ‘굽었다’는 뜻의 ‘곡(曲)’에서 ‘ㄱ’이 탈락한 ‘고’와 ‘풀(草)’이라는 뜻의 ‘사리’가 합쳐져 된 말이라고 알려져 있다. 또한 새순이 나올 때 줄기가 말린 고사리를 뜻하는 ‘곡(曲)’과 ‘사(絲)’와 같이 하얀 털이 붙어 있다고 해서 ‘곡사리(曲絲里)’라 불리다가 고사리가 되었다는 설도 있다.

고사리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기원전 470년경 공자가 편찬한 중국 최고의 시집 시경(詩經)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시경(詩經) 국풍(國風) 편 소남(召南)」에 실려 있는 ‘초충(草蟲)-풀벌레’라는 시에는 고사리를 ‘궐(蕨)’이라 칭하며 노래하고 있다. ‘陟彼南山 言采其蕨(척피남산 언채기궐)/저 남산에 올라 고사리를 캐자꾸나’.

중국인들에게 고사리와 같은 산나물은 오랜 옛날부터 가난과 궁핍, 배고픔의 상징이었다. 백이와 숙제의 ‘고사리’ 역시 굶주림과 죽음을 의미한다. 이백(李白)과 함께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시인이라 평가받는 두보(杜甫)는 ‘해민(解悶), 번민을 풀다’라는 시에서도 고사리가 출현한다. ‘今日南湖采薇蕨(금일남호채미궐)/오늘 남호에서 고사리를 따는데’.
 
두보의 고향인 장안의 두릉은 참외가 유명한 고장이라고 한다. 두보가 전란을 피해 유랑생활을 하면서 참외를 볼 때마다 고향이 그리웠다. 그러나 참외는 고사하고 먹을 것이 없으니 남호에 지천으로 핀 고사리를 따서 연명할 수밖에 없는 피난길의 착잡한 심경을 노래한 것이다. 두보에게 고사리는 고달픈 삶과 함께 귀한 식량이었다.

고사리에 국한할 수는 없지만, 고사리에 대한 중국인들의 인식이 우리 민족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래전부터 동북아 삼국인 한국, 중국, 일본사람들은 산나물을 먹었다. 그러나 중국, 일본인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오늘날까지 산나물을 식탁에 올려 즐겨 먹지 않는다. 물론 중국인들도 고사리를 채취 또는 재배한다. 그러나 자국에서 소비하지 않고 대부분 우리나라로 수출한다. 일부 먹는 사람들이 있다면 거의 조선족들이다. 이처럼 산나물을 일상적인 반찬으로 먹고 제례음식으로서 귀히 여기는 민족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일하다. 

우리나라의 전국 각지에는 약 360여 종의 고사리가 자생한다. 봄이면 산기슭을 빼곡히 채운 고사리 군락을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다. 주로 산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고사리는 강인한 생명력을 이어오면서 양지바른 야산이면 어디서나 군락을 이룬다. 오랫동안 사람들이 즐겨 먹는 식재료이다. 또 관상식물로 각광받는다. 특히 경남 남해와 함안, 전남 순천과 구례, 제주 등지가 주산지이다. 2022년 산림청 ‘임산물조사통계’에 의하면 전국의 고사리 생산량은 9,072톤, 생산액은 634억 원이다. 경남 남해군은 단일품목으로 전국 생산량의 22%(2,081톤)로 우리나라 최대 고사리 생산지다. 

고사리는 명절 차례상과 제사상에 올라가는 삼색나물 중 하나다. 일본이나 중국은 차례상이나 제사상에 고사리를 올리는 일은 없다. 삼색나물 중 뿌리는 도라지로 조상을 뜻하고 고사리는 줄기로서 부모를 의미하며, 시금치는 이파리로 자손을 가리킨다. 고사리는 귀신도 좋아한다는 말이 생길 만큼 제사상에 꼭 있어야 할 음식이었다. 정월대보름에도 고사리를 비롯한 9가지 묵나물을 먹어야 그해 여름 더위를 이길 수 있다는 풍습이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 마침 제주도의 한 호텔에서 입맛 없는 여름철을 맞아 제철 점심으로 한우육회 비빔밥과 고사리 된장찌개를 선보인다는 기사를 봤다. 고사리는 제사상은 물론이고 우리 음식과 함께 오랜 세월을 보냈다. 이 정도면 국민 나물이라 불릴만 하지 않을까?

[전국매일신문 칼럼] 고화순 대한민국전통식품명인 남양주시 하늘농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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