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화순의 나물이야기] 우리 민족과 함께 한 고사리 이야기

고화순 대한민국식품명인 남양주시 하늘농가 대표

2024-06-07     전국매일신문

우리 선조들은 고사리를 꺾어 데쳐서 말려두고 연중 먹을 수 있는 나물로 만들었다. 그리고 정성스럽게 차리는 제사상에서 빠져서는 안 되는 제수용으로 사용되면서 말린 고사리는 비싸게 팔린다. 그렇지만 인간이 먹는 식물 가운데 동물이 안 먹는 식물은 고사리가 유일하다. 동물까지 고사리를 먹는다면 더 비싸졌을 것이다. 더욱이 고사리는 우리 민족에게 깊은 역사와 고전 문화를 지니고 있다. 고사리에 대한 풍습도 지역별로 특이하며 신성시 여겼다. 

청동기 시대 제사장이나 지배자가 종교의례에 사용했던 무구(巫具:무당이 굿할 때나 점을 칠 때 사용하는 각종 도구)로 추정되는 유물인 ‘간두령(竿頭鈴)’이나 ‘팔두령(八頭鈴)’ 등에서 고사리무늬를 발견할 수 있다. 무구에 고사리 문양을 새겼다는 것은 당시 우리 조상들이 고사리를 중히 여겼음을 알 수 있다. 삼국시대 유물에서도 고사리무늬는 계속해서 발견된다. 고대 부족사회에서도 무구 등에 고사리무늬를 새겼다면 삼국시대에는 수막새, 각종 토기 등 건축물이나 생활용품 등에 새겨 국가의 안위와 일상의 복을 기원한 것 같다.

조선왕조실록의 태종실록에 보면 ‘시물(時物)을 종묘에 천신하도록 명했는데 3월에는 고사리를 올린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세종실록과 성종실록에는 ‘햇고사리가 나는 시기에 맞추어 올리고 과할 때는 면제하기도 하였다’라고 적혀 있다. 조선시대에도 역시 고사리는 종묘(宗廟)에 바치는 시물로서, 임금에게 바치는 진상품으로서 특별한 식품이었다. 

고사리를 주제로 한 우리의 고전 문학작품으로는 성삼문(成三問)과 주의식(朱義植)의 시조가 유명하다. 이것은 백이(伯夷)·숙제(叔齊)의 고사와 관련된 시조로, 성삼문의 작품은 백이·숙제가 고사리를 꺾어 먹은 것을 탓하는 내용으로 자신의 높은 절의를 과시한 작품이다. 주의식의 작품은 성삼문과는 달리 백이·숙제가 고사리를 캔 것을 두둔하고 있다.

또한 ‘고사리 꺾기 노래’, ‘고사리 꺾자’ 등 민요도 전국에서 채록되어 전승되는데, 지방마다 노랫말은 조금씩 다르다. 전라도에서는 8월 한가윗날 달 밝은 밤에 처녀들과 아낙네들이 모여 강강술래와 더불어 고사리꺾기 놀이한다. “고사리 대사리 꺾자. 나무 대사리 꺾자. 유자 콩콩 재미나 넘자. 아장아장 벌이어”. 고사리꺾기 놀이는 주로 봄·가을, 특히 추석에 많이 하는 집단놀이다. 여자 어린이와 처녀들 외에 가끔 남자 어린이도 함께한다. 

충북에서는 “고사리 꺾어 잔대 꺾어, 밥 비벼 먹세!”라고 노래한다. 경남 거창지방의 민요 ‘고사리 꺾는 노래’는 처녀·총각이 고사리 꺾으러 가서 정답게 노는 내용의 노래이다. 전북 남원지방의 민요 ‘고사리꺾기 노래’는 산에서 고사리를 캐면서 부르는 노래로 노동의 어려움을 말하는 내용의 노래이다. 경북 상주지방의 민요 ‘고사리노래’는 고사리를 캐어와 보니 멀리 가셨던 낭군이 돌아왔으므로 너무도 반가워 그 고사리로 나물을 장만하여 밤새워 정답게 낭군과 함께 먹었다는 내용의 노래이다. 충남 청양지방의 민요 ‘고사리 타령’은 오지 않는 님에 대한 불만과 시집살이의 고생스러움을 달래기 위하여 애꿎은 고사리만 비틀어 꺾는다는 내용이다.

강원도 강릉 구정면 일대에서는 ‘괴비고사리놀이’라는 놀이가 전해 내려온다. “신령산 괴비고사리 꺾으러 가세. 그 고사리를 꺾어서 무엇을 하나. 이 고사리를 꺾어서 우리 부모님께. 꺾세 꺾세 신령산 괴비 고사리 꺾으러 가세”. 고사리꺾기 놀이처럼 원무 형태의 놀이다. 놀 곳이 별로 없던 옛날 산골 아이들은 탁 트인 묘 주변이 놀이터였다. 괴비고사리 놀이는 나무를 하고 오던 아이들이 묘터에서 한바탕 놀던 강릉 구정면 사람들의 놀이다. 아이들은 묘를 돌면서 고사리를 꺾어 부모님께 효도하겠다고 노래한다. 시골 마을 아이들의 순박한 웃음과 순수한 마음씨를 느낄 수 있다. 

고사리는 여러해살이 양치식물이다. 가을이 되면 잎은 누렇게 변하면서 고사해 버린다. 그러나 땅속에서 단단하게 살아남은 뿌리는 겨우내 영양소를 듬뿍 안고 새봄과 함께 싹을 틔운다. 비탈진 초록색 산 오름으로 봄 햇살이 비추고 새소리가 선명하게 들린다. 천천히 오르니 ‘짠’하고 나타나는 고사리는 보배를 만나는 듯 반갑다. 잎이 피기 전 연두색 솜털에 싸여 있을 때 채취한다. 금방 솟아난 새순만이 먹을 수 있는 고사리다. 마치 주먹을 꼭 쥔 아기의 손처럼 조그맣게 말려 있을 때이다.


[전국매일신문 칼럼] 고화순 대한민국전통식품명인 남양주시 하늘농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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