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확산일로 치닫는 ‘딥페이크 포비아’ 발본색원 엄벌해야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

2024-09-02     전국매일신문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한 ‘딥페이크(Deepfake │ 불법 합성물)’에 의한 성범죄 피해가 일파만파 확산일로를 치닫고 있다. 개인 얼굴에 음란물을 합성해 만든 가짜 영상물이 대거 제작·유포되며 피해자를 양산하고 있다. 그동안 텔레그램을 통해 무분별하게 확산돼 왔고, 이 중 일부가 온라인에 유포되면서 피해자가 늘고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성적 허위 영상물 차단·삭제를 요구한 사례는 2020년 473건에서 올해 7월 말 기준 6,434건으로 급증해 전 년 동기 대비 4배가량 늘었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딥페이크 성범죄가 한낱 ‘장난 거리’처럼 10대들을 파고들고 있다는 점이다. 

여성가족부 산하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은 올해 1월 1일부터 8월 25일까지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디성센터)로부터 딥페이크 피해 지원을 요청한 건수는 2018년 69건에서 올해 들어서 8월 25일까지 무려 781건으로 11배나 넘게 급증했다고 밝히고 이들 781명 가운데 288명(36.9%)은 10대 이하라고 이날 발표해 더 큰 충격을 주고 있다. 피해자 열 명 중 세 명 이상이 10대 이하 청소년인 셈이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 1~7월 딥페이크 성범죄 신고는 총 297건 접수됐고 이들 중 입건된 피의자는 178명인데 10대가 131명으로 무려 73.6%를 차지했다. 피해자 중에도 10대 이하가 36.9%를 차지했다. 교육청에 접수된 전국 학교 피해 사례에는 초등학생 8명이 포함돼 충격을 더 주고 있다.

최근 부산의 한 중학교에서 일부 학생들이 같은 학교 학생과 교사들을 대상으로 불법합성물을 제작해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에 퍼뜨린 범죄가 드러나는가 하면 대학가는 물론 미성년자인 초중고생까지 겨냥하는가 하면, 군부대에서는 군 내부망에서나 볼 수 있는 증명사진을 이용한 대담한 범죄까지 벌어지고 있다. 앞서 전국 70개 대학에서 딥페이크 범죄가 적발된 것도 충격적인데, 미성년자 학생들까지 이런 범죄에 노출돼 있다니 참으로 기가 찰 노릇이 아닐 수 없다. 딥페이크 범죄 피해자들은 세상에 완전히 발가벗겨진 듯한 고통과 공포를 겪고 있다. 극단적 선택에 내몰려도 ‘유작’이란 조롱과 함께 음란물이 추가 유포될 수 있어 “죽어서도 끝나지 않는 고통”이라고 한다. 이 같은 ‘인격 살인’을 청소년들이 당하고 있다니 피해 정도를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서둘러 근절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실 불법 합성 음란물은 이전부터 존재했었지만, 정부와 사회의 대처가 미흡했다. 그러다 AI 기술이 발전하고, 디지털 환경이 진화하면서 딥페이크 영상물 제작과 유포 속도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많아지고 빨라지게 됐다. 단언컨대 딥페이크 영상의 제작·유포는 피해자의 삶을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중대 범죄다. 따라서 딥페이크물을 제작한 가해자는 반드시 처벌받도록 제도를 강화해야만 한다. 이번 사태의 온상이 된 텔레그램과도 적극적 공조를 통해 가해자를 잡아내고, 발본색원(拔本塞源)하여 결국 엄하게 처벌받게 된다는 것을 백일하(白日下)에 보여줘야만 한다. 그런데도 대다수의 딥페이크 가해자들은 ‘가짜 영상’이라는 이유로 큰 잘못이라는 인식도 없이 지속해서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가벼운 처벌 기준도 범죄 확산의 한 이유가 되어 왔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50조(벌칙) 형량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이렇다 보니 허위 영상물 편집·반포 행위에 대한 최고 형량이 징역 5년에 불과하다. 수십 명의 피해자를 낳은 일명 ‘서울대 n번방’ 사건 공범도 검찰 구형 10년의 절반인 5년 형을 선고받았다. ‘합성 수준이 낮다’라는 등의 이유로 형량이 줄어드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유포 목적이 아닌 제작은 아예 처벌 대상도 아니다. 여전히 안일한 정부의 인식도 문제다. 딥페이크 성범죄의 급속히 확산하고 디지털 성범죄가 활개를 치고 있는데도 불법 영상물 삭제에 투입되는 디지털 성범죄 피해 대응 예산은 올해 12억 2,800만 원에서 2025년 10억 2,600만 원으로 2억 200만 원인 16.4%나 삭감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딥페이크와 같이 급속도로 진화하는 디지털 성범죄 기술을 따라잡기 위한 기술 개발 비용은 전무했다. 이러니 전 세계 딥페이크 음란물 피해자의 절반 이상이 한국인이라는 낯부끄러운 분석이 나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8월 27일 국무회의에서 “디지털 성범죄를 뿌리 뽑아야 한다”라고 지시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긴급회의를 소집해 텔레그램 모니터링에 나섰고, 경찰청은 7개월간 특별집중단속을 하겠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딥페이크 제작·유통을 중대한 학교폭력으로 간주해 퇴학 등 고강도 징계를 하겠다고 한다. 정부가 딥페이크 성 착취물 관련해 국무조정실에 종합 컨트롤타워를 설치하여 운영키로 한 것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피해 신고 접수단계부터 피해자 지원, 가해자 수사와 처벌 등이 실시간 종합적으로 동시에 필요한 만큼 각 부처가 개별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공동 대응하고 합동 처리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딥페이크 성범죄 발생을 막기 위해 허위 영상물 처벌 기준을 현행 5년에서 7년으로 강화하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을 추진하는 것은 잘한 일이다. 차제에 딥페이크 가해자 중 상당수가 청소년인 만큼 범죄를 저질러도 처벌받지 않는 ‘촉법소년(14세 미만)’임을 감안하여 이의 연령 조정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피해자 보호다. 피해 신고센터를 가동해 피해 발생 시 신속하게 지원하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 피해자 보호 대책은 물론이고, 딥페이크물이 더 이상 유포되지 않고 온라인에서 삭제되도록 하는 지원도 의당 필요하다. 딥페이크를 막기 위한 다양한 법과 제도를 서둘러 만들어 정교하게 대응해 나가야만 한다.

인격을 말살하고 사회를 병들게 하는 딥페이크 범죄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국민들을 디지털 성범죄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관련 부처들이 긴밀히 협의해 종합 대책을 마련하고 ‘빅테크(Big tech)’들과의 협력도 강화해야 한다. 당연히 사회와 학교의 노력도 동반돼야만 한다. 철저하게 단속·수사를 하는 것은 물론 양형 기준을 손보고 딥페이크 제작·소지에 대해서도 엄중하게 처벌해야 한다. AI 범죄 근절을 위한 규범을 마련하고 「AI 기본법」 제정 등 법제 정비도 서둘러야만 할 것이다. 더불어 죄의식 없이 딥페이크물을 아예 만들지 못하도록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성교육과 디지털교육, 법교육 등을 강화해야만 한다. 각종 예방교육과 캠페인 강화에도 오히려 관련 범죄가 증가하는 것은 청소년들의 범죄에 대한 경각심의 부족도 한몫하고 있는 만큼, 보다 체계를 갖춘 실행력 있는 대책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우리 사회에서 딥페이크물을 뿌리채 뽑아낼 확실한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 

[전국매일신문 칼럼]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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