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익의 시선] 국가보훈제도의 전면개혁, 한민족 명예의 전당

양동익 제주취재본부장

2022-03-10     양동익 제주취재본부장

세계 선도국가가 되기 위한 조건, 인류의 공존

국가보훈제도는 예전 군사 원호청이라 불리웠던 과거의 수준에서 벗어나야 한다. 1961년 내각 직할로 발족하였고 1962년 원호처로 개편되어 1985년 대통령령에 의거하여 국가보훈처로 개명되었다. 보훈처장 역시 노무현 정부에서 장관급으로 격상되었다가 이명박 정부에서 차관급으로 격하되었고 문재인 정부에서 다시 장관급으로 격상되었다. 국가 원호청은 상이군인에 대한 치료와 원호, 전사자 유족의 원호, 군인연금의 기금 관리와 지불 등 군사 원호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는 대한민국의 중앙행정기관이었다. 이후 호국보훈가족 및 유족의 우대 및 보호, 참전용사 및 군인과 제대군인에 대한 우대 및 지원을 목적으로 하며 그 외 상이군경, 독립운동가 및 애국자에 대한 원호와 가족 및 유족에 대한 예우와 지원 등을 맡고 있다.

독립운동가와 6.25 전쟁 참전용사 본인 그리고 그 후손들이 매우 힘든 삶을 살고 있다는 점이 많이 알려지면서 이런 업무를 관장하는 국가보훈처는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국가보훈처는 2011년에 한국전쟁 참전 용사의 유족이 군인사망보상금을 신청하자 이를 거부했다. 유족이 행정소송을 걸어 국가보훈처는 보상금을 유족에게 지급하라는 조정안에 대하여 보훈처는 마지못해 보상금을 지불했는데 놀랍게도 그 보상금이 5,000원이었다. 그 당시의 보상금을 그때의 가치로 환산해도 380만원이 된다. 결국 행정심판위에서 이에 대해 부당하다고 제동을 걸었다. 한국전쟁에 사망한 군인의 수와 그에 대한 국가재정을 생각한다면 국가부담이 큰 것은 사실이지만 그에 대한 연구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국군 사망자 수가 14만 명에 이르고 정규군이 아닌 알려지지 않은 군속과 학도병 등을 합하면 그 수는 상당한 수준이다.

국가를 위해 희생된 사람에 대한 보상은 반드시 필요하다. 이는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이고 대한민국이란 공동체 사회를 이끌어가는 근본적인 힘이 된다. UN군을 포함한 26만여 명에 대한 보상뿐만 아니라 이름도 없이 사라져간 군속과 학도병에 대한 희생을 발굴하고 이에 대한 보상을 늦게나마 모색해야 함이 옳다. 3세대 직계가족에 한하여 최소한의 보상이 이루어져야 하고 독립유공자의 후손에 대한 처우 역시 마찬가지로 실현되어야 한다. 최근 5·18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나 제주4·3에 대한 국가권력에 의한 희생에 대하여 보상이 이루지고 있다. 해방 이후 혼란했던 시대에 강요당했던 민간인의 희생에 대하여 국가권력이 재조명되고 있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명백히 국가를 희생한 국가유공자에 대한 처우는 반드시 개선되어야 하는 것이다.

국가보훈처가 2015년에는 국가유공자 보상금 등과는 관계없는 나라사랑 추진 관련 예산을 전년 20억 원대에서 2016년 6,000억 원대로 확대 요구했다. 6.25에 참전한 분들을 예우한다고 해 놓고는 동상이나 기념비를 짓겠다는 예산만 잔뜩 요청한 것이다. 그리고 보훈처 산하 단체들은 과거 군사정권 시절부터 수익사업으로 보훈대상자들을 지원하였다. 이는 관변단체로 정치적 결사단체의 모양새를 하고 있었으며 여러 특혜를 받고 있었다. 이것이 오랜 세월 지속되면서 온갖 비리 의혹이 터져 나오고 있다. 이들 단체를 장악한 간부들은 수익사업을 통한 돈벌이에 집중하면서 정작 회원들을 위한 복지는 내팽개친 모양새를 갖기도 하였다. 현재도 집권당에 따라 정치적 성향을 극단적으로 바꾸며 살아남아 있는 것이다.

‘한민족 명예의 전당’을 설치해야 하는 이유는 국가보훈제도의 혁신적 개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재의 국가유공자 제도를 엄격히 관리하고 그에 상응하는 보상체계를 재정립해야 함은 물론이고 관련 단체의 엄격한 관리를 통해 국가보훈제도의 새로운 틀을 마련해야 한다.

외국인으로서 이 나라를 누구보다 사랑한 이들이 있었다. 어느 순간 미국인 선교사가 아닌 한글학자가 되어 한글 교본을 출간한 호머 헐버트가 있다. 그는 서재필, 주시경 등과 함께 독립신문을 만들어 최초로 띄어쓰기를 실현하였다. 영국의 언론인 토마스 베델은 일제 강점기에 대한매일신보를 발행하고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의료선교사 셔우드 홀 일가, 의사 올리버 R. 에비슨, 연세대학교를 세운 언더우드, 독립선언문을 세계에 알린 엘버트 W. 테일러, 조선의 문화 자체를 사랑하여 영상기록을 만든 노르베르트 베버 신부 등 수많은 이들이 일제강점기를 안타까워하며 한민족의 독립을 지원했다. 여기에는 해방 이후 한국 선교사묘역에 묻힌 한국 고아의 아버지로 불리던 ‘소다 가이치’라는 일본인도 있다.

국가보훈처는 국가행정의 차원을 넘어선다. 이는 국민이 동의해야 하는 문제이고 모두가 공감할 수 있어야 그 기능을 다할 수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국가보훈처는 국회 직할기관이 되어야 하고 국회를 통해 국가유공자를 심의할 필요가 있다. ‘한민족 명예의 전당’의 추서는 국회를 통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국가를 대신해 감사를 표하고 이는 국민의 삶의 표상이 될 수 있는 인물들이 엄선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를 위해 희생한 외국인을 모셔야 하는 이유는 단순한 감사의 의미도 있지만 우리 국민이 인류공영에 함께하기 위한 적극적인 실천과 의지의 표현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국회의 활동이 정치적으로 이용되어지는 것은 경계되어야 한다. 또한 살아있는 유족이 고인의 업적을 과장하여 권력을 이용하려는 행위도 경계되어야 한다. 그 기준이 엄격해야 하는 이유는 국민 대다수의 공감과 삶의 표상이 되어야 한다는 점에 있다. 국가유공자는 공로를 중심으로 하는 것이지만 한민족 명예의 전당에 추서되는 인물은 삶의 전반이 기준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과 같은 공과가 분명한 정치성이 짙은 인물들은 배제되어야 하고 전태열, 박종철과 같은 인물에 대한 공은 국가유공자로 인정될 수 있는 것이지만 명예의 전당에 추서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러한 논의가 논쟁으로 비화되어 국론을 분열시킬 우려가 있는 경우는 이를 유예함이 옳을 것이다.

국가보훈제도의 전면개혁과 ‘한민족 명예의 전당’을 제도화하고자 함은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다. 대한민국 국가공동체를 위한 희생이 그 만큼의 숭고한 가치를 가지게 되고 국가에 대한 희생이 모범이 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 국가공동체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기초가 되는 것이다. 국가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국가보훈제도는 우리를 사랑했던 많은 이방인이 있었던 것처럼 한민족의 이름을 가지고 해외 모든 국가에서 희생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한국인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국가보훈제도가 형식에 그쳐서는 안 된다. 과거권력의 국가폭력에 대한 민간인 배·보상과는 분명한 인식의 차이가 있어야 한다. 우선 향후 국가를 위한 희생에 대한 보상은 분명하고 확실하게 국민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수준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국가유공자로 인정되어진다는 것이 국민의 명예가 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군대에서 죽으면 개죽음이라는 비하는 더 이상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뿐만 아니라 국민의 일상생활 속에서도 공동체 사회를 위한 영웅적 희생에 대하여도 국가유공자로 인정될 수 있어야 한다. 보훈정책의 적극적인 시행은 사회가 나아가는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고 희생적 삶의 가치를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국가의 존재 이유가 된다.

[전국매일신문] 양동익 제주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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