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혁의 데스크席] ‘지방선거 실종’
최재혁 지방부국장
오는 6월 1일에는 지방선거가 치러진다. 그런데 온통 대통령 선거에 관심이 쏠려 있다 보니 지방선거에 대한 관심은 찾아보기도 어려울 정도다. 6·1 전국동시지방선거가 81일 채 남지 않았지만 무엇 하나 뚜렷이 정해진 게 없다. 정국이 온통 대선 이슈에만 함몰돼 지방선거는 뒷전으로 밀려난 탓이다. 여당은 정권 재창출, 야당은 정권 교체에 사활을 걸면서 법이 정한 예비후보들의 후보자 등록과 선거운동까지 제한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지역에서는 광역자치단체장 후보군만 약간 거론될 뿐, 기초자치단체장은 물론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은 광역·기초의원 후보군은 예비 출마자가 누군지조차 베일에 가려져 있다. 이로 인해 역대급 ‘깜깜이 선거’가 될 것이라는 우려와 함께 지방선거를 홀대하는 중앙 정치권에 대해 해도 해도 너무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실상 이번 지방선거 예비후보자 등록은 이미 지난달 18일 시작됐다. 하지만 아직까지 강원은 물론 전국에서도 예비후보자로 등록한 이는 극히 드물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출마 예정자들에게 대선 이후로 등록을 미루라는 지침을 내렸고, 제1 야당 국민의힘도 대선 전 등록은 가능하지만 출마 선언과 개인 선거운동은 대선 이후에 하라는 방침을 정했기 때문이다. 두 거대 정당이 “대선에서 지면 지방선거도 없다”며 사실상 대선 전 선거운동 금지령을 내린 셈이다. 출마 예정자, 특히 정치 신인들은 현재 분위기에서 지방선거를 언급했다가 당의 눈밖에 나 공천 등에서 불이익을 받을까 싶어 스스로 움츠러들 수밖에 없게 됐다.
이제 20대 대선이 지난 9일 끝나 곧 지역의 일꾼을 뽑는 지방선거가 시작된다. 지방선거는 지역별로 당면한 과제를 점검해 공론화하고, 그 과제를 가장 잘 해결할 사람을 선택하는 공적 행사이다. 유권자들이 자기 지역의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대안을 모색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그러나 올해 지방선거는 대선에 가려져 상대적으로 관심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다.
도지사, 교육감, 도의원, 시장·군수, 시·군의원까지…. 각 후보자들은 예비후보로 등록하고 출마기자회견이나 출판기념회 등 나름대로 얼굴을 알릴 방안을 찾고 있지만 유권자들의 관심에는 멀어져 있다. 여기다 코로나 시국까지 겹쳐 후보자들만 애가 타는 모양새다. 예년 같으면 한창 선거 열기로 뜨거워야 할 시기인데 지금 지방선거 분위기는 정중동이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근간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더욱 심각한 것은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지방의원 선거구 획정조차도 안 되어 있다는 것이다. 광역의원 선거구와 기초의원 정수를 확정해야 하는 국회가 직무유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기 지역의 공기와 물을 마시고, 숲과 하천을 걷고, 지역의 어린이집·유치원, 학교·복지시설·도서관·문화시설·병원·공원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지역경제, 지역일자리도 지방자치단체의 정책에 따라 많이 달라진다. 지역 현안이 아니더라도 공원이나 산책로, 하다못해 버스정류장의 위치에 따라서도 내가 걷는 걸음 수가 달라진다. 출마자가 많은 지방선거의 경우 누가 입후보했는지조차 모르고 투표소로 향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했다. 후보들의 사람 됨됨이는 어떤지, 그들이 내건 공약은 실현 가능성이 있는지 등을 따져보지 않고 특정 정당 소속 후보들에게 표를 몰아주는 행위는 현명한 유권자의 자세가 아니다.
무능하고 부패한 이들이 당선될 가능성이 있다. 주거, 교통, 환경 등 삶의 질이 나아질 리 없다. 후보들이 고만고만해 보이고 일상이 바쁘겠지만, 누가 주민 실생활과 직결된 일을 척척 해낼 수 있을지 차분하게 비교한 뒤 투표장에 가야 한다. 지방선거는 지역 주민의 삶과 지자체의 살림을 책임질 일꾼을 뽑는 데 있다는 점에서 그 무게가 가볍지 않다. 결코 소홀히 접근할 사안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중요하다면, 풀뿌리 일꾼을 선택하는 지방선거도 그 못지않다.
지방선거까지 앞으로 3개월도 채 안남았다. 지역의 4년을 맡길 일꾼을 선택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일 수 있다. 하지만 결국은 유권자들의 현명한 판단만이 해결책이다. 후보들 역시 대선 결과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공약과 정책으로 유권자들에게 다가서야 할 것이다. 굳이 풀뿌리 민주주의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지역민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지방선거는 대선 못지않게 중요하다.
하지만 대선에 함몰된 지금 상태로는 출마 예정자들은 선거를 어떻게 치러야 할지 막막하고 유권자들은 정책과 인물을 검증할 시간을 제대로 갖지 못하게 된다. 지역의 젊은 정치 신인이 지방선거로 데뷔할 기회가 현저히 줄어들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말로는 젊은 정치를 외치면서 속으로는 그들의 정치 참여를 막는 이율배반의 행태를 보이는 여야를 질타하지 않을 수 없다. ‘깜깜이 선거’의 피해는 고스란히 지역 주민에게 돌아가게 된다는 점에서 이번 지방선거를 이대로 방치해선 안 된다. 지방선거 주권자들이 주인이 되는 선거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