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혁의 데스크席] 고향 사랑 기부금, 지방 소멸 막는 마중물
최재혁 지방부국장
고향세 도입 논의가 이뤄진 지 10여 년 만인 지난해 ‘고향 사랑 기부금에 관한 법률’이 마침내 국회를 통과했다. 우여곡절 끝에 도입됐지만 소멸 위기에 선 지역에는 희소식이다. 강원 지자체가 내년 시행을 앞두고 있는 고향사랑기부금제의 기금 활용 방안 마련에 들어갔다고 한다. 고향사랑기부금제도가 내년 1월부터 시행되기 때문이다. 기부자는 지방자치단체에 기부만큼의 법정 세액공제 혜택과 지자체에서 제공하는 30% 정도의 고향특산(답례)품을 받을 수 있다. 특히 지자체는 기부금을 활용하여 취약계층이나 청소년지원, 독거지원 등 다양한 주민 복리 재원 및 지역경제 활성화 증진정책으로 부싯돌과 멧돌처럼 활용할 수 있는 제도다.
전문가들은 지자체가 실제 기부에 나설 ‘관계인구’에 초점을 맞추라고 권고한다. ‘관계인구’란 실제로 지역에 살지 않아도 지역의 각종 행사에 다양하게 참여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이들이 고향사랑기부금제의 핵심인 셈이다. 출향민에게만 의존하는 고향사랑기부금제는 큰 성과를 올리기엔 한계가 있다. 이에 따른 대응전략으로는 관계인구 파악과 형성이 중요하게 꼽히고 있다. 지역에 관심을 갖고 응원하는 관계인구의 통계 파악이 시급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고향은 늘 어머니의 배냇속 같지 않은가? 비오면 무척 끊어지길 잘하던 학교 가는 도랑길.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는 곳”이 우리들의 고향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들의 고향풍경은 어떤가? 늘 마음의 안식처 같은 고향 곳곳이 이미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 행정리 기준 3만7563개소의 농촌마을 중에 무려 3만4000개소가 넘는 마을이 초등학교와 약국, 소매점 등 최소한의 편의시설이 이미 사라진 실정이다. 이 제도는 2008년에 도입한 일본의 ‘고향납세’ 사례를 벤치마킹한 것이다. 일본은 14년 전 비슷한 고향납세제도를 도입해 2020년엔 6724.9억엔(한화 약 7조1486억원)이나 모금했다니 인구감소와 재정악화로 어려움을 겪는 지자체 입장에선 여간 고무적인 일이 아니다.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되는 ‘고향사랑기부금에 관한 법률’(약칭 고향사랑기부금법) 시행령이 최근 제정됨에 따라 일선 지방자치단체들이 제도 홍보 및 조례 제정 등 후속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고향사랑기부금이란 지자체가 주민복리 증진 등의 용도로 사용할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해당 지자체 주민이 아닌 사람으로부터 자발적으로 제공받거나 모금을 통해 취득하는 금전을 뜻한다. 지자체들은 광고나 정보통신망의 이용, 그 밖의 방법으로 기부금을 제공해 줄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의뢰·권유 또는 요구할 수 있다. 지자체는 기부에 대한 답례로 기부금액의 최대 100분의 30에 해당하는 금액의 답례품을 제공할 수 있다.
기부는 개인만 할 수 있고 연간 한도는 500만원이다. 10만원까지는 전액, 10만원 초과분은 16.5% 세액공제가 된다. 재정자립도가 낮고 소멸위기가 심각한 농어산촌지역 기초지자체들은 법 시행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부족한 지방재정 보완, 주민복리 증진, 기부문화 확대, 지역경제 활성화 등 여러 가지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에 강원 정선군도 소멸위기 극복 및 지역 발전의 ‘마중물’이 될 것으로 보고 제도 홍보와 답례품 선정에 속도를 내고 있다. 답례품은 해당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특산물이나 지역사랑상품권, 지역 관광지 이용권 등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지자체들은 고향사랑기부금법이 몇 가지 문제점을 갖고 있어 입법 취지를 제대로 살릴지 우려하고 있다. 가장 큰 우려는 기부금 모금 방법이 극히 제한돼 있다는 점이다. 법에서는 광고매체를 통한 기부금 모금과 현수막, 행사장의 홍보 부스 등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모금방법만 허용하고 있다. 공무원이나 일반 주민들의 전화, 서신, 이메일을 통한 모금, 호별 방문, 향우회·동창회 등 사적 모임에 참석해 기부를 권유·독려하는 방법은 불법이다. 지자체들은 법 시행 초기에 출향민들이 주로 기부금을 낼 것으로 추정되는 만큼 향우회를 대상으로 한 기부금 모금은 허용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 기부자가 개인으로 한정된 데다 연간 기부한도액이 500만원에 불과한 것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지자체들은 재정 여력이 있는 법인들의 기부를 허용하고 기부한도액도 늘려야 한다고 말한다. 모든 지자체에 법인 기부를 허용하는 것이 어렵다면 소멸위기가 심각한 ‘89개 지자체’로 국한하는 것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특히 고향사랑기부금을 낼 가능성이 높은 출향인들은 대부분 고령인 만큼 세액공제가 별 도움이 되지 않아 다른 인센티브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참고해야 한다.
인구 많은 지자체의 경우 출향인이 많아 기부금이 많이 몰리고 그렇지 않은 지자체는 반대의 경우가 생기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발생할 개연성도 있다. 때문에 인구를 기준으로 지자체별 연간 모금한도를 정해 기부금의 적정 배분을 유도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광역지자체를 기초지자체와 동일하게 기부금을 받도록 한 것이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새겨 들어야 한다. 지자체들은 답례품에 의한 ‘기부금 쏠림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는 만큼 답례품 선정에 많은 고민을 해야 한다.
고향에 대한 건전한 기부문화를 조성하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해 국가균형발전에 이바지하겠다며 도입한 고향사랑기부금제가 연착륙되도록 정부는 예상 문제점들의 대책 마련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어려운 시절 집안을 일으키려고 객지에서 타향살이의 서러움을 겪으며 꿈에서조차 망향가를 부르던 사람이 줄어드는 것이 현실이다. 게다가 도시에서 태어난 자식들이 아버지 고향에 무슨 애틋한 마음이나 사랑이 있겠는가? 결국 감성에 호소하기보다는 합리적으로 설득하는 수밖에 없다.
고향사랑기부금제가 작동하려면 도시민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 생각해 보라. 시골에는 눈먼 돈이 많아서 쓸데없는 토목공사를 벌이고 선심성 보조금은 먼저 보는 사람이 임자라고 한다면 어느 누가 기금을 내겠는가? 고향을 지켜야 한다는 공감대 위에서 지역 스스로 살아남으려고 허리끈을 졸라매고 최선의 노력을 하고 그래서 출향민과 연고자 등 지역의 장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뭐라도 도와야겠다’는 마음이 우러나도록 해야 한다.
또 그렇게 모금한 기금이 꼭 필요한 곳에 요긴하게 사용된다는 신뢰를 주고 그 결과 참여자들이 보람과 긍지를 느낄 때 제도가 지속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돈이 없어 미뤘던 지역공동체 활성화와 취약계층 지원, 주민의 삶의 질 향상 등 숙원사업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답례용 지역특산품을 개발하고 농촌관광과 도농교류를 통한 관계인구 확대를 통해 지역을 다시 살릴 수 있다는 것이 바로 고향사랑기부금제의 취지이자 운용의 핵심이다.
[전국매일신문] 최재혁 지방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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