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그날] 대법원 "부부사이라도 강간죄 성립" 사상 첫 인정
대법 "부부 사이에 성생활 함께 할 의무 포함" "폭행・협박으로 강요된 성관계 감내 의무는 아냐" 서울고법 "동성커플, 부부 아니지만 건보자격 인정" "생활공동체로 부양책임, 혼인관계와 유사" 판단...건보, 상고장 제출 부부 이혼사유, 종교갈등・제사문제 등 대두 대법 "제사주재, 장남・아들 우선 아닌 나이순"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다.
10년 전 헤드라인 뉴스를 통해 '과거 속 오늘'을 다시 한 번 되짚어 보고
더 발전했는지, 답보상태인지, 되레 퇴보했는지 점검해보고자 한다.
[뉴스 타임머신-10년 전 그날]
2013년 5월 16일 대법원,"부부사이라도 강간죄 성립" 사상 첫 인정
지난 2013년 5월 16일은 두가지 키워드로 정리할 수 있다. 바로 '부부'와 '성관계 의무'다.
●대법, 부부 강간죄 첫 인정
2013년 부부의날(5월21일)을 닷새 앞둔 5월 16일 대법원은 '부부 강간죄'를 사상 처음으로 인정했다.
실질적인 혼인관계가 유지되는 경우라도 남편이 아내를 성폭행한 경우 강간 혐의로 처벌할 수 있다는 판결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신영철 대법관)는 16일 특수강간 등의 혐의로 기소된 A씨(45)에게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다수 의견으로 “부부 사이에 민법상 동거의무가 인정되고 있고 여기에는 배우자와 성생활을 함께할 의무가 포함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 동거의무에 폭행, 협박에 의하여 강요된 성관계를 감내할 의무가 내포돼 있다고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혼인이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포기를 의미한다고 할 수 없고 성적으로 억압된 삶을 인내하는 과정일 수도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형법 제297조가 정한 강간죄의 객체(대상)인 ‘부녀’에는 법률상 처(아내)가 포함된다”며 “부부 사이에서 혼인관계가 파탄된 경우뿐 아니라 실질적인 혼인관계가 유지되는 경우에도 남편이 폭행이나 협박을 가해 아내를 간음한 경우에는 강간죄가 성립한다고 보아야 한다”고 밝혔다.
강간죄의 객체에 아내를 포함시키는 것에 대해서는 일부 반대 의견도 나왔다.
이상훈·김용덕 대법관은 “남편이라도 아내를 강제로 간음했다면 형사처벌해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한다”며 “그러나 강간죄는 ‘배우자가 아닌 사람’이 성관계를 강요한다는 요소를 고려해 형량을 정한 만큼 강간죄를 부부관계에까지 확대하면 처벌이 지나치게 무거워진다”고 밝혔다.
A씨는 2011년 아내를 폭행한 뒤 흉기로 위협하고 강제로 성관계를 맺은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2001년 결혼한 A씨 부부는 두 자녀를 낳고 평범하게 살았으나, 사건 발생 2~3년 전부터 불화가 심해지면서 A씨는 여러 차례 아내에게 폭력을 휘두른 것으로 조사됐다.
1심은 A씨에게 징역 6년을 선고했다. 2심도 유죄를 인정했으나 부인이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탄원서를 제출한 점이 참작돼 징역 3년6월로 감형했다.
한편 외국은 부부 강간죄를 인정하는 추세다. 미국은 1984년 부부 강간을 유죄로 인정했고, 영국은 1991년 최고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로 배우자 강간 면책조항을 공식 폐기했다. 프랑스는 오히려 부부간 강간을 일반 강간죄보다 더 엄하게 처벌하고 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은 아내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호하고 혼인과 성에 관한 시대적 변화에 발을 맞췄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은 “가정폭력 사건의 경우 성폭력은 무혐의 처분되고 폭력행위만 처벌받아왔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가정성폭력 피해자들이 구제받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동성 커플, 부부 아니지만 건보 자격 인정
동성(同性) 결혼의 상대방을 사실혼 배우자로 인정할 수는 없지만 건강보험 피부양자로는 받아줘야 한다는 첫 법원 판결이 나왔다. 국민 건강을 위해 ‘동성 결합’에도 피부양자 제도가 적용돼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고법 행정 1-3부(재판장 이승한)는 2023년 2월 21일 소성욱(32)씨가 건보공단을 상대로 피부양자 등록 취소가 부당하다며 낸 소송의 항소심에서 1심 판결을 깨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남성인 소씨는 다른 남성인 김용민(33)씨와 2017년부터 동거하다 2019년 결혼식을 올렸다. 건보공단은 2020년 김씨의 신청에 따라 소씨를 사실혼 배우자로 보고 피부양자 등록을 해줬다. 이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공단은 ‘착오’라며 등록을 취소했으며 이에 소씨는 소송을 냈다.
서울행정법원은 작년 1월 소씨에게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성(異性) 간 사실혼 배우자만 피부양자가 될 수 있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서울고법은 이날 “사실혼 배우자와 동성 결합 상대방은 이성인지 동성인지만 다를 뿐 동일한 정도로 밀접한 생활 공동체 관계”라며 “동성 결합에만 피부양자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이라고 판결했다.
서울고법은 이날 판결에서 “(모두 남성인) 소씨와 김씨 사이에 사실혼 관계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헌법, 민법과 대법원·헌법재판소 판례가 모두 사실혼을 남녀 간 결합으로 보고 있다는 게 이유였다. 사실혼은 혼인신고만 하지 않았을 뿐 배우자 간에 동거·부양·정조 의무가 있고 건강보험, 국민연금, 산재 보상 등도 적용받을 수 있다.
이에 따라 서울고법은 소씨와 김씨의 관계를 이성(異性) 간 사실혼과 구분해 ‘동성(同性) 결합’이라고 불렀다. 재판부는 “두 사람이 반려자로 생활하기로 합의하고 사회적으로 선언하는 의식도 치렀으며 상당 기간 생활공동체로 협조와 부양 책임을 졌다”면서 “혼인 관계와 유사하다”고 밝혔다.
소씨와 김씨는 이날 선고 후 “동성 커플은 그동안 누리지 못하고 잃어버렸던 권리를 찾아가고 있으며, 이번 소송도 그런 과정의 일환이었다. 오래 걸렸지만 오늘 사법체계 안에서 우리의 지위를 인정받게 됐다”고 말했다.
한편 2023년 3월 6일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동성 커플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한 서울고법 판결에 불복해 상고장을 제출했다.
●대법, "제사주재는 장남·아들 우선 아니라 나이순으로"
2011년 1월 법원에서 부부들의 이혼 사유로 종교갈등·제사문제 등이 인정된 가운데 제사는 아들이 물려받는다는 원칙이 뒤집힌 판례가 2023년 5월 11일 대법원을 통해 나왔다.
2017년 사망한 B씨의 부인과 두 딸은 미성년자인 B씨의 혼외 아들을 상대로 ‘추모공원에 안치한 아버지 유골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원심은 혼외자인 어린 아들을 ‘제사 주재자’로 판단해 두 딸의 청구를 기각했다.
'제사 주재자’는 제사를 지내는 한국 문화의 특수성 때문에 민법에 오른 개념이다. 민법 1008조의3은 ‘제사 주재자가 제사용 재산(3000평 이내 선산과 600평 이내 농지, 족보와 제구)의 소유권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제사용 재산은 상속세도 면제된다. 유골과 유해도 제사용 재산으로 분류돼 제사 주재자에게 처분권이 있다.
이번 판례는 2008년 장남을 비롯해 남성이 제사 주재자에 우선 지정된다는 대법원 판례를 15년 만에 뒤집은 결과였다. 유족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남녀, 적서(적자와 서자)를 불문하고 고인의 직계비속 중 가장 연장자가 제사 주재자를 맡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종전 전원합의체 판결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며 “현대사회 제사에서 부계혈족인 남성 중심의 가계계승 의미는 상당 부분 퇴색했다. 제사용 재산 승계에서 남성과 여성을 차별하는 것은 합리적 이유가 없고, 헌법 정신에도 위배된다”고 판결했다.
제사 주재자 선정의 새로운 기준으로 ‘직계비속, 최근친, 연장자’를 제시했다. 대법원은 “제사의 추모의식 성격을 고려하면 근친관계를 고려하는게 자연스럽고, 같은 지위의 사람들 사이에서는 연장자를 우선하는 게 전통 미풍양속에 부합한다”며 “제사주재자를 정할 때 여성 상속인을 열위에 두는 것은 현대적 의미의 전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대법원 관계자는 “남성 중심 가계계승을 중시했던 적장자 우선의 관념에서 벗어나 제사 주재자를 정하는 방법을 헌법 이념과 현대사회의 보편적 법의식에 합치되도록 했다는 점에서 판결의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전국매일신문] 김주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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