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치솟는 밥상물가 선제적 대응 필요
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가까스로 진정 기미를 보이던 ‘밥상 물가’에 다시 비상등이 켜졌다. 유례없는 역대급 ‘극한 호우’로 농산물 가격이 폭등하고 있는 데다 유럽 최대 곡창지대인 우크라이나의 곡물 수출이 중단될 위기에 처하면서 ‘글로벌 애그플레이션(Agflation) 쓰나미’가 몰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치솟는 밥상 물가에 초비상이 걸리면서 서서히 잡혀가던 인플레이션 불씨가 되살아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이번 집중호우로 지난 7월 21일 오전 6시 기준 침수와 낙과 등 피해가 접수된 농작물 면적은 3만 5,068.4㏊로 집계됐다. 이는 여의도 면적 290㏊의 121배에 달하는 규모로 농작물 피해 중 침수된 농지는 3만 4,776.6㏊이고 낙과 피해 농지는 291.8㏊에 달한다. 가축은 88만 2,600마리가 폐사됐는데 닭 88만 3,200마리, 오리 4만 4,900마리, 돼지 4,300마리, 소 400마리 등이다. 이미 무더위로 들썩이던 농산물 가격은 이 여파로 수직적 상승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산물 유통정보’에 따르면 도매가격 기준 상추는 100g당 1,491원으로 전주 대비 23.1% 올랐고, 열무는 1kg당 3,393원으로 전주 대비 17.4% 인상됐다. 시금치 가격은 4kg당 1개월 전 1만 7,400원에서 5만 4,800원으로 폭등했다. 이 외에도 애호박, 오이, 적상추, 얼갈이배추, 대파, 파프리카 등의 가격이 1주 새 급등했다. 향후 수급 문제가 발생할 만큼 피해가 집중된 작물도 많다. 문제는 장마가 끝나도 물가 불안 요인이 상존한다는 데 있다. 본격적인 휴가철과 다가오는 추석으로 국내 소비가 증가할 것이다. 8∼9월에 잦았던 태풍이 한반도를 덮칠 때는 상황은 더 꼬이게 된다.
한국뿐만 아니라 인도와 미국, 브라질 등 주요 농산물 생산지는 엘니뇨와 폭우, 폭염, 가뭄 등 이상기후가 전 세계 경작지를 덮치면서 쌀·설탕·카카오·커피 등 식량 가격도 뛰고 있다. 지난달 국제 설탕 가격은 사탕수수 최대 산지인 브라질, 인도, 태국 등 설탕 원료인 사탕수수 산지에서 불볕더위와 가뭄, 폭우 등 이상기후로 인한 작황 부진으로 12년 만에 가장 높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베트남과 인도 등이 주산지인 커피콩 품종 로부스타의 원두 선물가격은 올해 들어 50% 가까이 올랐다. 초콜릿의 원재료인 카카오 콩은 주산지인 코트디부아르와 가나에서 폭우로 생산량이 감소하며 지난달 말 선물가격이 46년 만에 최고 기록을 썼다.
여기에다 러시아가 지난 7월 17일 세계의 ‘빵 바구니’인 우크라이나의 곡물을 아프리카 등으로 실어 나르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흑해 곡물수출협정’을 연장하지 않고 종료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렇게 되자 단 하루 만에 우크라이나의 주요 수출품인 밀은 3%, 옥수수 국제 선물가격은 1.4% 치솟았다. 우크라이나는 세계 옥수수 수출의 12%, 밀 수출의 9% 등을 차지하고 있어 사태가 장기화하거나 수출길이 다시 막히면 곡물 자체 가격만이 아니라 빵이나 면 등 식품 가격도 연쇄적으로 오를 수밖에 없을 뿐만 아니라 전쟁 발발 직후 경험했던 전 세계적 식량 가격 폭등이 재연될 우려가 크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추경호 부총리는 21일 “집중호우 피해가 ‘밥상 물가’ 불안으로 전이되지 않도록 수급 안정에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강조하고, 정부는 호우 피해 지원과 신속한 복구에 재정, 세제, 금융 등 모든 정책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히고 양파, 상추, 시금치, 깻잎, 닭고기 등을 20일부터 농축산물 할인지원 품목으로 선정해 물가 부담을 완화할 방침이다. 닭고기는 8월까지 할당 관세 물량 3만t을 도입해 가격안정에 나서기로 했다. 하지만, 신선식품과 수입 곡물가의 동반 상승은 가공식품과 외식 물가는 물론이고 생활물가 전반의 상승을 부채질하는 요인이 된다. 식료품과 에너지 관련 품목을 모두 제외한 나머지 품목(458개 중 309개)으로 작성한 근원물가(Core CPI) 상승률은 3.5%로 여전히 높고, 다음 달부터 순차적으로 서울 버스와 지하철 요금이 오르는 등 물가 상승 압력은 지속되고 있다.
가계가 느끼는 체감물가는 여전히 높은데 ‘밥상 물가’ 공포까지 더해지면 소비심리가 위축되고 경기 회복이 더 멀어지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밥상 물가’ 불안을 서둘러 잡아야 하는 이유다. 장기적으로 기후 위기 일상화 시대에 맞는 농축산물 공급 안정화 대책과 같은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물가 안정에 찬물을 끼얹는 담합이나 편법 가격 인상 등에도 선제적으로 적극 대응할 필요가 있다.
[전국매일신문 칼럼] 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