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혁의 데스크席] 연금개혁 불신 높아

최재혁 지방부국장

2023-11-02     최재혁 지방부국장

국민연금은 윤석열 정부가 노동, 교육과 함께 3대개혁으로 약속한 과제다. 2055년 이후 기금이 고갈되는 것으로 시계열상 추정된다. 1988년 출범 당시 과도한 낙관론이 화근이 됐다. 인구는 줄고 있는데 거둬들이는 보험요율은 25년째 9%로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낮다. 여기다 수령 연금은 금융기관 이자율보다 훨씬 높게 설계돼 있다. 올 6월 말 현재 적립 기금이 983조원으로 출범 이래 535조원의 투자수익을 냈지만, 베이비부머 세대가 속속 은퇴하면서 빨간불이 들어왔다.보건복지부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는 최근 무려 18개 시나리오의 방안을 내놓았다.

개혁이라 하기에는 무색하지만, 보험요율을 매년 0.6%씩 인상해 15%로 올리는 안을 중심으로 기금 소멸 시기를 2093년까지 늦춘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국민연금 개혁안이 발표됐으나, 이에 대한 비판과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달 27일 정부가 공개한 제5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은 구체적인 모수(숫자)를 제시하지 않고, 논의의 방향성만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되며, 이로 인해 시민사회, 정치권, 노동계 등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민주당은 정부의 연금개혁안을 “알맹이 빠진 개혁안”으로 비판했다. 핵심적인 숫자인 소득 대체율과 보험료율에 대한 구체적인 목표치가 없어, 연금 개혁의 핵심 문제를 회피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비판은 연금 개혁의 책임을 국회로 미뤘다는 무책임한 정부 태도에 대한 것이다. 국회 연금개혁특위 민주당 간사는 윤석열 대통령이 '개혁 포기 선언'을 한 것으로 평가하며, 제대로 된 노후 소득 보장을 위한 연금 개혁안을 국회 특위를 통해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정부의 연금개혁안에 대한 신뢰를 잃고 국회의 역할을 강조하는 의견이다.

시민사회와 노동계에서도 이번 연금 개혁안에 대한 비판이 나오고 있다. 연금행동은 "맹탕 연금개혁안"이라고 비판하며, 핵심 숫자가 결여된 안을 재검토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정부가 국가 재정 책임성을 명확히 하고, 국민연금 제도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국민 신뢰를 제고할 것을 요구하며, 보장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조차 유력안을 도출하지 못한 상황에서 정부가 압축된 모수개혁안을 내놓는 데 따른 부담이 컸을 수 있다. 복지부도 “의견이 다양한 만큼 특정안을 제시하기보다 공론화 과정을 통해 폭넓은 논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방향성을 제시했다”고 한계를 인정했다. 정부가 언급한 방향성은 ‘더 받는’ 개혁보다 ‘더 내는’ 개혁 쪽에 맞춰진 듯하다. 내는 돈인 보험료율을 현행 9%보다 인상하는 게 필요하다는 점을 분명히 했지만, 받는 돈인 소득대체율은 퇴직·기초연금을 아우르는 다층노후소득보장체계 틀 속에서 구조개혁 논의와 연계해 검토하겠다며 결정을 미뤘다. ‘늦게 받는’ 연금 지급연령 상향 문제에 대해선 “고령자 계속 고용 여건이 성숙한 이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연금 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이며, 미래세대의 부담이 커질수록 노후 보장의 중요성은 커진다. 이제 연금 개혁은 국회로 넘어가게 됐다. 그러나 정부의 압축된 안을 제시해도 국회 공론화 논의에는 극심한 진통이 뒤따를 판인데 핵심 수치가 결여된 정부 안을 토대로 시작되는 국회 차원의 논의와 입법 절차가 힘을 받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국회 차원의 논의가 시작될 때 어려움은 예상되고도 남는다. 따라서 정부와 국회는 구체적인 방향과 계획을 제시해야 하며, 국민연금의 보장성을 강화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 연금 개혁은 모수개혁 뿐만 아니라 큰 틀에서의 구조개혁과 함께 이뤄져야 한다. 따라서 정부와 국회는 연금 개혁을 종합적으로 접근하고, 책임 있는 방향과 계획을 제시해 국민의 노후 보장을 강화해야 한다.

국민연금 개혁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그것도 한시라도 빨리 해야 미래 세대와 국가의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절박한 과제다. 저출생이 고착화되고 고령화와 보건·의료 여건 개선으로 수급자와 수급 기간이 늘어나는 흐름이라 국민연금 적립기금 고갈은 피할 수 없다. 지난 3월 발표된 ‘제5차 국민연금 재정추계’에 따르면 국민연금 적립기금은 2041년부터 지출이 수입보다 많은 수지 적자 상태에 빠진 후 2055년에 모두 소진될 전망이다. 합계출산율이 2025년부터 반등해 2030년 0.96명, 2046년 1.21명으로 높아진 뒤 안정화된다고 가정하는 등 낙관적 전망에 기초한 추계여서 실제 상황은 더 악화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대목은 국민연금의 본질은 국민전체가 내는 자금을 모으고 증식해 은퇴자에게 지급한다는 원리다. 불입한 돈과 운영 수익을 보태 지급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돈을 뿌리는 구조가 아니다. 국회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국민부담을 가중할 보험요율 인상을 미룰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 해도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보험요율을 순차적으로 조금씩 올리고, 받는 연금을 적정 수준으로 줄이거나 수급 시기를 늦추는 것이다. 다만 세대 간 피해의식을 고려해야 한다. 정년연장과 함께 청년층에게는 보험료의 일정부분을 지원하는 것도 대안이다.

윤석열 정부는 비록 인기 없는 정책일지라도 국민을 설득하고 개혁안을 관철해야 한다. 이런 개혁수행이 과거 정부와 확연히 차별되는 지점으로 향후 평가받을 것이다. 정부의 재정 투입은 결국 세금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국민 부담이 늘어나는 건 마찬가지다. 세금을 더 걷는 데는 소극적이면서 소득대체율을 높이는 건 연금 혜택은 늘리면서 이를 뒷받침할 증세 부담은 미래 세대에 떠넘기는 것이다. 명목 소득대체율 상향에 집착하지 말고 고용 연장, 취약계층에 대한 보험료 지원 등을 통해 가입 기간을 늘림으로써 실제 연금액을 좌우하는 실질 소득대체율을 높이는 게 노후소득 증대에 더 효율적이다.

국민연금은 평균적으로 보면 가입자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수급액에 물가상승률이 반영되는 구조이고 거론되는 개혁안이 통과돼도 납입 보험료보다는 더 많은 금액을 연금으로 받는 구조다. 국민연금 개혁은 지속가능성과 세대 간 형평성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윤석열정부가 대선 공약인 개혁 약속을 지키길 바란다. 문재인정부의 방치로 적립기금 고갈시기가 2년 앞당겨졌다. 더불어민주당도 개혁에 적극 협조해야 할 것이다.연금 개혁은 국민 전체의 이익을 고려해야 하는 문제다. 이를 위해 정부, 국회, 시민사회, 그리고 노동계는 협력·합의해야 한다. 책임 있는 방향과 계획을 수립해 노후 보장을 강화하고, 국민의 신뢰를 얻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 연금 개혁은 국민 전체의 이익을 고려한 종합적인 논의와 협력이 필요한 중요한 과제이다. 노후 보장을 강화하기 위해 정부, 국회, 시민사회, 그리고 노동계는 책임을 다해야 한다. 

[전국매일신문] 최재혁 지방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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