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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태안해역 발견 백자 제기 테마전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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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태안해역 발견 백자 제기 테마전 열려
  • 대전/ 정은모기자
  • 승인 2017.12.19 1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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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가 19일부터 내년 2월 11일까지 해양유물전시관 제1전시실에서 태안 해역 발견, 백자 제기 테마전이 열린다.  
 
2014년 가을, 태안 마도 인근을 탐사하던 중 침몰선의 선체조각과 목재 닻이 발견, 그 주변 서쪽 25m 지점에서 백자 꾸러미가 함께 발견됐다.

꾸러미 속에는 촛대 2점, 발 59점, 접시 40점, 잔 10점 등 총 111점의 백자 제기가 담겨 있었다. 18~19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며 유약의 발색 정도만 다를 뿐 기종별로 비슷한 형태들이었다.

전시는 당시 발견된 백자 111점 중 대표적인 유물 20점을 공개하는 자리로 조선 후기 백자 제기의 특징을 알리고, 바닷길을 이용한 백자의 유통과 더불어 백자 제기의 사용 배경과 그 의미를 조명하기 위해 기획됐다.

조선 초기에 비해 화려하진 않지만 하얀 빛을 띤 간결하고 단아한 형태가 가장 조선다운 면모를 보이는 유물들로, 조선 시대 도자 제기의 출현과 사회 변화를 이해할 수 있어 중요하게 평가받고 있다.

우리나라 바닷속에서 발견되는 백자는 수량이 많지 않으며, 대부분 깨지거나 조개껍데기 등의 이물질이 붙은 채 발굴되어 주로 뱃사람들이 사용하던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태안 해역에서 나온 백자는 그릇 바닥에 번조받침이 그대로 남아있어 사용하지 않은 제품임을 알 수 있다.

또한 18~19세기 해상로를 통한 도자기의 장거리 유통을 보여주는 최초의 실물 자료로 학술적으로도 중요한 유물들이다.
 
유교를 사회규범으로 삼은 조선은 조상을 숭배하고 제사를 지내는 것에 큰 의미를 두었다. 이에 따라 제사의 형식과 절차는 점차 규범화되고 제기도 그것에 맞게 제작됐다.

제기는 토기에 이어 금속으로 만들었지만 고려 후기에 금속이 부족해지면서 조선 초기에 들어서는 금속 제기를 본떠 도자로 제기를 만들기 시작, 점차 장식문양이 단순해지고 간소화되면서 18~19세기에 이르러서는 단아하고 소박한 백자 제기가 완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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