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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權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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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權力)
  • 최재혁 지방부 부국장 정선담당
  • 승인 2017.11.30 14: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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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윤동주는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이라며 스스로를 경계했다. 부끄러움을 아는 것조차 어려운 세상이니 우리로서는 감히 흉내조차 내기 힘들다. 죽는 날까지는 고사하고 일상에서도 부끄러운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권력(權力)의 권(權)’은 저울추라는 뜻이라 한다. 남을 지배하여 강제로 복종시키는 공인된 힘이 권력이다. 권력을 잡으면 분수를 모르고 설치다가 낭패를 당하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공인된 힘이기 때문에 권력을 잡은 사람이 힘을 행사하는 기간에는 잘못인줄 알고도 시키는 대로 하면 차후에 탈이 날 우려가 있지만 어쩔 수 없이 따르는 경우가 많다.

 

정치판이 요동치면서 나는 새도 떨어뜨릴 정도였던 전정권의 실세들이 구속되는 엄연한 현실 앞에서 정치권력의 무상함이 저절로 느껴진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구속과 파면에 이어 청와대수석 등을 지낸 실세들이 비리혐의로 줄줄이 구속되는 것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고 비탄감을 느끼게 한다.

 

정상적인 절차에 따라 결정됐던 일들이 정권이 바뀌니 손바닥 뒤집듯 바뀌고 있어 놀랍기만 하다. 이전에야 제왕적 권력을 행사하는 서슬 퍼런 정부였으니, 살기 위해 취한 행동이라 동정이라도 받았을 수 있다. 그런데 민주정권이 생했는데도 정권의 눈 밖에 나지 않으려는 행동은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독재정권이든 민주정권이든 권력을 보는 눈은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결정된 우표발행이 취소되고, 공사 중인 원전건설이 중지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아직도 한국사회는 소신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져 있지 않음을 느낀다.
 
결정에 참여하는 자들이 늘 올바른 판단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절차에 따라 결정한 사항은 존중하는 것이 민주주의이다. 그간 정부 영향 아래에 있는 많은 위원회나 이사회가 정권의 입맛에 맞는 인물들로 구성되어 그들의 결정에 늘 잡음이 있어 왔다. 한번 결정되면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기에 늘 균형 있는 인적구성을 요구하는 것이다.

 

결정과정에 부정적 여론이 많아 실제로 내부 저항이 있었던 사안이라면, 그것을 바로잡을 기회가 찾아왔을 때 정상으로 돌리는 일은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뒤집을 수는 없는 일이다.

 

적폐를 청산해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정부가 탄생했는데, 그런 정부의 눈치를 보느라 정해진 결정을 번복하는 행태야말로 청산해야 할 적폐이다. 본인들이 소신을 갖고 결정한 일이라면 당당하게 지켜나가야 하거늘, 그간의 절차에 하자라도 있었다는 듯이 이를 하루 아침에 뒤집고 말았다.
 
새 정부가 들어섰으니 바꾸지 않으면 불이익을 당할지 모른다는 압박이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이전 정부에서의 행동이 정말 부당하게 이루어졌던 것이라 양심선언이라도 하듯 결정을 번복해야 했던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결정과 번복이 압력에 굴해 했던 것이라면 그때도 잘못된 결정이었고, 그렇지 않고 현 정권의 등장으로 바꿀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면 이 또한 잘못된 결정이다.

 

결정에 관여한 자들이 정상적 법절차에 따라 내린 자신들의 결정을 새 정부의 입맛에 맞도록 바꾼 것이라면, 이는 새 정부를 예전과 같은 비민주적 정권으로 보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어쨌든 일련의 일들은 민주권이 탄생했음에도 많은 이들이 여전히 정권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는 반증일지도 모른다. 이런 사고를 불식시키지 않고서는 진정한 민주정부의 탄생은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민주주의는 다름을 인정하고, 소수의견을 존중하고, 더디더라도 절차에 따라 적법하게 해결해 가는 것이라고 주장해 왔었다. 민주정부 실패의 경험이 있다 하더라도 이런 주장을 다시 한 번 되새겨야 할 것 같다. 힘이 있을 때 힘이 없어질 때를 생각하여 정치를 하는 것이 답이다. 모든 국민을 언제까지나 자기편으로 묶어둘 수는 없는 일이다.

 

정권의 눈에 들어야 자리보전이 되거나 뭔가 한자리 할 수 있었던 그간의 불공정한 사회의 단면일지도 모르지만, 사정이 바뀌면 소신을 굽히고 언제라도 현실에 타협할 수 있는 자들로는 한국의 미래를 논하기 어렵다. 피를 흘리며 쟁취한 민주주의가 이기적 기회주의의 장으로 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정부도 적폐를 청산하며 선을 행하겠다고 섣부른 결정을 내려서는 안 된다. 지금의 결정이 지금은 최선처럼 보여도 머지않은 미래에 터무니없는 오판으로 판명날 수도 있는 일이니, 새로운 결정에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만 한다. 특히 기존의 결정을 뒤집고 관행을 깨는 일에는 더욱더 그렇다.

 

국민이 준 권력이라 하여 국민의 여론만 등에 업으면 된다는 식의 사고도 매우 위험한 일이다. 국가의 대사를 결정하면서 여론을 경청해야 할 사안도 있는 것이고 전문가의 의견을 종합해내야 할 사안도 있는 것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과학의 발전으로 급변하는 사회를 경험하고 있으면서, 어찌 변할지도 모를 미래를 단정적으로 판단하여 결정하는 일은 현명할 수 없다.

 

섣부른 결정은 국가 경쟁력에 치명타를 줄 수도 있다. 대립만 보이는 한국의 정치상황에서 새 정권이 들어서서 재차 바꿔야할 사안이 되기라도 한다면 국가를 또 다시 혼란에 빠트릴 수 있어 깊은 주의가 요구되는 바이다.

 

권력은 쟁취하기도 어렵지만 유지관리 하기는 더욱 더 어렵고 내려온 후는 더 어렵다. 권력은 누리고 있을 때는 권력자와 그 주변인들까지 황홀하다. 그 보물단지 같았던 권력이 정점을 찍고 내려온 후 사람을 망가뜨리는 애물단지로 전락될 때는 부메랑이 되기 십상이다.

 

사정 기관도 권력의 해가 중천에 떠 있을 때는 침묵으로 일관하다가 권력추가 서산에 넘어갈 즈음, 넘어간 후에 칼날을 여지없이 들이 댄다. 자기가 지은 업행(業行)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이 받게 마련이다. 대통령에 권력이 집중된 소위 ‘제왕적 대통령제’가 문제의 발단이라는 주장도 있다. 대통령 권한을 축소하는 장치를 마련해야 하는 이유다.

 

정치의 최종 방향성과 정치권력자의 행태는 미래 국가 공동체의 발전토양 확대와 그 고민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는 부분이다. 정치는 국가적 삶의 토대를 키워 나가는 것이 본연의 과제이다. 그 다음 문제가 그 공간에 터잡고 사는 구성원의 삶을 보살피는 일이다. 이러한 두 과제를 제대로 작동시킬려면 정치권력은 무엇보다 꾸준히 시간을 가지고 각 분야전문지식을 가진 사람을 아끼고 활용의 토대를 넓혀 주는 과정에서 가능한 다양한 인적 자원 문제를 최우선 순위에 두어야 한다. 국가생존이라는 정치적 행위의 주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중요하다. 이 사실, 잊지 말아야 한다.

 

최근 한 사람의 전직 대통령과 국가 최고급 정보 수장들의 잇따른 구속, 그리고 또 한 사람의 전직대통령으로 치닫는 권력의지는 그렇게 좋은 모양새는 아니다. 잘못이 있으면 바로 잡아야 한다. 잘못을 잡는 방법의 문제는 정치가 큰 틀에서 긍정적으로 방향을 잡아 주어야 한다. 실정법 잣대를 갔다대면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전 권력 수장들 일련의 구속들은 먼지를 틀면 먼지가 날 수 밖에 없는 우리 사회와 시대가 안고 있는 원죄의 부분이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권력행사는 일정 부분 그 여백으로 남겨두어야 한다. 꽉 찬 권력행사는 나중에 정치적 부메랑으로 반드시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정치가 읽어주었으면 하는 부분이다. 거친 정치, 이제 좀 숨고르기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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