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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동계올림픽, 평화의 문 열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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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동계올림픽, 평화의 문 열리길
  • 최승필 지방부국장
  • 승인 2018.01.07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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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필 지방부국장

2018년 새해 벽두부터 남북관계 복원과 평화 관련 사안이 한반도는 물론, 국제사회를 긴장시키고 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지난 1일 신년사를 통해 남북대화 용의를 밝힌 후 28시간여 뒤인 2일 오후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고위급 남북 당국회담을 제안했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신년사를 통해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진심으로 바란다”며 “선수단 파견을 포함한 필요한 조처를 할 용의가 있다. 이를 위한 북남 당국이 시급히 만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은 2일 오전 청와대 본관 세종실에서 새해 첫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북한 대표단의 평창올림픽 파견과 당국 회담의 뜻을 밝힌 것은 평창올림픽을 남북관계 개선과 평화의 획기적 계기로 만들자는 우리의 제의에 호응한 것”이라고 평가하며, “환영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김 위원장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평창 동계올림픽에 북한 대표단을 파견할 뜻이 있다는 구체적인 메시지를 전해오고, 문 대통령도 환영의사를 밝히며, 양자 간 화해무드가 조성됐던 2000년대 중·초반 때처럼 스포츠 행사를 매개로 남북대화의 물꼬가 트였다.
 
결국 북한은 5일 오전 10시16분 판문점 연락채널로,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를 비롯, 남북관계 개선 문제를 논의하자”는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의 통지문을 보내 한국정부가 제안한 ‘9일 판문점에서의 남북 고위급 회담 개최’ 제안을 받아들였다.
 
북한이 한국 정부가 제안한 회담 장소와 일정을 그대로 수락한 것은 대단히 이례적이다.
 
북한의 이 같은 제안 수락은 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하루 전인 4일 오후 10시 전화 통화를 통해 한미 연합 군사훈련 연기를 공식 합의하자 12시간여 만에 전격적으로 화답에 나선 셈이다.
 
앞서, 3일 개성공단 가동 중단 이후 완전히 끊겼던 남북 연락채널이 1년 11개월 만에 복구되면서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대표단 파견과 남북회담 개최 문제 논의가 본격화 된 것이다.
 
이처럼 새해 첫날 김 위원장의 신년사로 시작돼 남북 연락망 재개통, 한미 연합 군사훈련 연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남북대화 적극 지지, 고위급 회담 참석자 발표, 전략회의 및 모의회담 등 롤러코스터 같은 긴장의 분위기 속에 남북이 2015년 12월 이후 2년 1개월 만에 대화 테이블에 마주 앉기로 한 것이다.
 
우리 정부는 남북 간 회담이 성사될 경우 북측의 평창 올림픽 참가 문제에 초점을 맞춘다는 입장이다. 이번 대화를 통해 북한 선수단 참가는 물론, 고위급 인사와 응원단의 방한에 대해서도 얘기를 나눌 뿐 아니라 동시에 군사긴장 완화 등 경색된 남북관계 복원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분위기를 이끌어 간다는 계획이다.
 
특히, 북한의 평창 겨울올림픽 참가가 성사되면 한반도는 유엔 올림픽 휴전결의안이 만료되는 3월25일까지 80일간 한시적으로 평화를 맞게 된다.

그 동안 남북 상호간 체육교류와 국제대회에 단일팀으로 참가하는 문제 등을 협의하기 위한 회담은 수차례 진행됐지만 순조롭지는 않았다.
 
1964년 제18회 도쿄올림픽대회에 단일팀으로 출전하는 문제를 놓고 63년 1, 5월 각각 로잔과 홍콩에서 남북 체육회담이 처음 열린 뒤 다른 어느 분야의 회담보다도 자주 개최됐다.
 
1985년 10월8일 스위스 로잔에서 시작된 남북한올림픽위원회와 국제올림픽위원회의 대표들이 참가한 회담은 제24회 서울올림픽대회에 북한체육인들이 보다 뜻있게 참가하는 문제를 협의하는 것으로, 당시 국내외의 주목을 받았다.
 
이어 86년 6월 제3차 로잔체육회담에서 IOC위원장 사마란치는 23개 경기종목 중 탁구와 양궁을 평양에서 진행하도록 북한올림픽위원회 측에 위임하는 문제 등을 내용으로 한 타협안을 제시함으로써 남북한의 동의를 얻었다.
 
그러나 그 뒤 북측은 8개 종목의 북한개최를 요구했고, 88년 1월12일 공식 성명을 통해 올림픽 불참방침을 밝힘으로써 2년간 이어왔던 로잔체육회담은 성과 없이 결렬되고 말았다.
 
그 뒤 90년 베이징아시아경기대회에 남북 단일팀을 구성·파견키 위한 체육회담이 개최, 89년 3월9일 제1차 회담 이래 12월22일까지 6차 회담과 3차례 실무접촉을 가졌고, 90년 2월7일까지 9차 회담을 통해 꾸준한 절충을 시도했으나 단일팀 참가에는 실패했다.
 
그러나 아시안게임 중인 90년 9월 베이징에서 남북체육정상회담이 열려 ‘남북(북남)통일축구대회’를 열기로 했고, 10월 분단 이후 최초의 남북한 체육교류인 통일축구대회가 평양과 서울에서 번갈아 개최됐다.
 
이어 91년 1∼2월 남북체육회담이 다시 열려 각종 국제대회에 참가할 단일팀 구성에 합의, 91년 4월 지바에서 열린 제41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와 6월 포르투갈에서 열린 제6회 세계청소년축구대회에 남북단일팀을 구성하고, ‘코리아’란 이름으로 출전하게 됐다.
 
그러나 91년 8월17일로 예정됐던 제5차 남북체육회담은 바르셀로나 세계 유도선수권대회에 참가했다가 한국으로 망명해온 이창수 씨 사건을 이유로 북측에서 무기한 연기시켰다.
 
이후 남북 간 화해 무드 조성에 힘입어 99년 남북 통일농구대회를 서울에서 개최했고, 2000년 9월 시드니 올림픽 개회식에서 남북이 동시 입장하는 성과를 거둔 뒤 국제대회에서의 남북 동시입장이 수차례 성사됐다.
 
남북한 국가올림픽위원회(NOC)는 2004년 2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단일팀으로 출전하는데 합의했으나 2007년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남북공동응원단 구성에는 합의했지만 정권이 바뀌면서 단일팀 구성 문제에 있어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무산됐다.

그러나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에 대한 북측의 반응은 그 어느 때 보다 사뭇 다른 양상이다. 그 동안 북한에 대해 비핵화를 위한 국제적인 대북제재가 더욱 강화되는 상황에서 북측의 남북대화 용의 및 수락은 대단히 이례적이지만 오랜 긴장상태에서 대화 국면으로의 전환은 평창 동계올림픽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한반도 정세를 화해 무드로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달여 남은 평창 동계올림픽이 평화의 문을 열길 바란다. 그리고 9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리게 될 남북 고위급 회담이 한반도 비핵화라는 최종 목표까지 순항하길 염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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