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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3 지방선거 깐깐하게 따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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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3 지방선거 깐깐하게 따져보자
  • 최재혁 지방부 부국장 정선담당
  • 승인 2018.04.05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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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샤를 드골 전 대통령은 “246종이나 되는 치즈가 있는 나라를 어떻게 다스리겠는가”라고 고충을 토로한 적이 있다. 이 말은 옥스퍼드 정치인용구 사전에도 올라 있다. 국민 욕구의 다양성과 정치의 예측 불가능성에 대한 비유다. 현재 프랑스에선 500종 넘는 치즈가 생산된다니 드골 시대보다 더 복잡다단해졌을 듯싶다.
 
이런 관점은 한국에도 대입해 볼 만하다. 지난 10년간 소비 트렌드의 변화는 눈이 핑핑 돌아갈 정도다. ‘깐깐한 소비자’ 덕에 한국은 글로벌 명품 브랜드들의 ‘테스트 마켓’이 된 지 오래다. 커피전문점이 편의점보다 많은 ‘커피 공화국’에선 이제 커피 원산지까지 따진다. 수입맥주와 수제맥주 빅뱅, 라면 브랜드의 폭발적 증가는 더 이상 새롭지도 않다.
 
이뿐만이 아니다. ‘푸드 트렌드’ 전문가인 문정훈 서울대 교수에 따르면 돼지고기 시장도 삼겹살 일변도에서 원산지, 품종, 숙성방식까지 따지는 분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숲에 방목해 도토리를 먹고 자란다는 스페인산 ‘이베리코 흑돼지’는 괄목할 만하다. 지난해 수입량이 7만2000t으로 4년 새 4배로 급증했다.
 
버크셔, 듀록 같은 돼지 품종을 일부러 찾아 먹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게다가 돼지고기를 소고기처럼 피가 비치는 ‘미디엄 레어’로 먹을 정도다. 냉장숙성에서 벗어나 바람숙성, 수중숙성 등도 관심사다. 마니아의 취향이 어느덧 소비 트렌드로 자리잡은 것이다. 문정훈 교수는 “일각에선 수입규제 목소리가 나오지만 스마트한 농민들은 소비자 변화를 ‘기회’로 여긴다”고 귀띔했다.
 
소스, 소금 등도 변화가 뚜렷하다. 대형마트의 소스 매대는 된장, 고추장 자리를 유럽 소스, 동남아 소스, 중화 소스 등이 밀어내고 있다. 왕소금, 맛소금만 알던 주부들이 프랑스 게랑드, 미국 모튼 등을 줄줄이 꿴다. 치즈는 슬라이스에서 모짜렐라, 고메치즈로 옮겨가고, 건강·다이어트와 연관된 퀴노아, 렌틸콩, 햄프씨, 아마씨 등 곡물 수요도 크게 늘었다.

 

‘싸고 양 많게’라는 과거 관점으론 도저히 따를 수 없는 변화다. 소비자들은 쓸 데 없는 소비는 배격하지만, 비싸도 만족하면 기꺼이 지갑을 연다.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넘어 ‘가심비’(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이어야 팔린다.

 

한국인 취향이 세분화·다원화·전문화 할수록 정치·사회의 변화 압력은 커질 것이다. ‘신토불이(身土不二)’를 넘어선 소비패턴은 글로벌화나 보편가치를 지향하게 된다. ‘주는 대로 먹어라’식 일방통행이 통할 리 없다. 이는 집단주의, 획일주의를 본능적으로 싫어하는 ‘개인의 탄생’과도 연관이 깊다.

 

이렇게 소비자는 변했는데 좀체 안 변하는 게 한국 정치시장이다. 양당 중심의 독과점 체제는 마치 맥주시장의 오비와 하이트처럼 경쟁적 공생관계를 형성해왔다. 지난 총선 때 다당제가 됐지만 실상은 좌우·지역 구도 속에서의 분화일 뿐이다. 수시로 포퓰리즘 경쟁이 벌어지는 걸 보면 구태 그대로다.
 
드골은 “정치란 정치인에게 맡겨두기에는 너무나 심각한 문제”라는 말도 했다. 정치가 갈등 해결이 아닌, 갈등 그 자체인 한국에 딱 들어맞는다. 정치 후진성을 타파하려면 결국 정치시장 소비자(유권자)들이 깐깐해지는 길 외엔 방법이 없다.

 

경영전략가 마이클 포터는 《경쟁론》에서 ‘까다로운 소비자’의 존재를 해당 분야 발전의 필수조건이자 국가경쟁력의 원천으로 봤다. 물건 살 때 가성비·가심비를 따지면서 정치인의 자질과 공약은 왜 따지지 않나. 지상낙원을 만들어주겠다는 허위와 짝퉁의 정치인을 솎아내는 것이나, 미래를 위해 당장 정치적 손해도 감수하고 국민에게 쓴소리도 할 줄 아는 ‘진품 정치’를 가려내는 것은 유권자의 몫이다. 6·13 지방선거부터는 ‘충동구매’ 습관을 버리고 깐깐하게 따져보자.
 
좀체 안 변하는 게 한국 정치시장이다. 양당 중심의 독과점 체제는 마치 맥주시장의 오비와 하이트처럼 경쟁적 공생관계를 형성해왔다. 지난 총선 때 다당제가 됐지만 실상은 좌우·지역 구도 속에서의 분화일 뿐이다. 수시로 포퓰리즘 경쟁이 벌어지는 걸 보면 구태 그대로다.
 
불명예스러운 의혹을 받게 되면 무조건 오리발부터 내미는 것이 이 나라 엘리트들의 버릇이 된 지 오래다. 목격자나 증인은 공작으로, 물증은 조작으로 몰아가며 부인으로 일관한다. 말 그대로 빼도 박도 못할 상황까지 몰려야 시인을 하기 시작하는 데, 그것도 명백하게 드러난 부분까지만 단계적으로 인정해 간다. 가증스러운 것은 지은 죄가 아니라 죄를 짓고도 반성은커녕 요리조리 발뺌하며 세상을 속이는 기만적인 태도이다.
 
정봉주 전 의원 사례도 정치 엘리트들의 이런 결함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는 성추행 의혹을 받자마자 음모로 몰아갔다. 피해자가 당했다는 당일에는 문제의 호텔에 가지도 않았다고 주장했다. 한 공중파 방송의 시사 프로그램에 그날 행적을 담은 사진들까지 공개하며 피해자를 윽박질렀다. 보도한 언론도 고소했다.

 

그러나 그날 호텔에서 사용한 카드 내역이 밝혀지며 진실을 덮어버리려던 그의 발버둥은 가련한 결말을 맞았다. 그가 서울시장 출마 포기를 선언하며 남긴 넋두리는 일말의 동정심마저 앗아갔다. “호텔에서 카드를 썼으니, 가긴 간 모양이지만 누군가를 성추행 한 기억은 없다”고 말했다. 그날 호텔에 가지 않은 기억만 생생했다는 그는, 그래서 아직 피해자에 대해서는 사과 한마디 하지 않고 있다.
 
구속된 두 분 전직 대통령도 다를 게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최근 검찰이 밝힌 세월호 참사 당일 행적만으로도 용서받기 어렵다. 대통령은 그날 근무시간에 침실에 홀로 칩거해 안보실의 비상전화조차 받지 않았다. 최초 보고는 세월호가 물속에 거의 잠겨 골든타임을 넘긴 후에야 받았다. 뒤늦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방문도 몰래 청와대로 잠입한 최순실이 결정했다고 한다. 20~30분 간격으로 실시간 보고를 받았다는 애초 해명은 새빨간 거짓말이었고, 그 거짓말을 사실로 짜맞추기 위해 상황일지를 조작하고 증언을 날조했다. 그러고도 자신은 음해세력에 엮였을 뿐이라며 조사도 재판도 거부하며 구치소에서 책만 읽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을 고스란히 답습했다. 의혹들을 뒷받침하는 물증과 증언이 차고 넘치지만 모두 정치공작으로 일축할 뿐이다. 가신과 참모, 친척의 증언은 모두 `자신들이 지은 죄를 모면하기 위해 둘러대는 거짓말'이라고 반박했다. 오리발이 통하지 않을 확실한 증거 앞에서는 자신 몰래 아래 선에서 한 일이라며 참모들에게 떠넘겼다. 그는 박 전 대통령에게 배운 대로 검찰 조사를 거부하고 있으며 법정도 기피할 공산이 높다.
 
지난 2014년 지방선거에서 출마자 8994명 가운데 39.8%인 3579명이 전과자로 밝혀졌다. 10명에 4명꼴이었다. 출마자 전원이 전과자인 선거구도 적지않았다. 올해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도 지역 언론마다 전과자들이 대거 예비후보자로 등록한 민망한 현상을 앞다퉈 보도하고 있다. 예비후보자 절반이 전과자인 지역도 심심찮게 거명되고 있다. 음주운전은 기본이고 사기와 도박에 폭력·성폭행 등 강력범죄를 저지른 예비후보자도 수두룩하다. 어느 분야보다도 준법의식과 도덕성이 요구되는 정치계를 전과자들이 예사로 넘보는 이유는 자명하다. 그들이 보기에도 만만하기 짝이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전과자들은 자신보다 더 오염된 정치판에서 가능성을 보았을 것이다. 자신들의 흠결이 정치판에서는 사소한 티끌에 불과하다는 인식을 하게 되면서 가당찮은 도전에 나설 용기를 얻었을 것이다. 유권자들의 잣대 역시 도덕성이 바닥에 떨어졌지만 수치심조차 갖지 못하는 정치판의 후안무치를 겪으며 무뎌질 대로 무뎌졌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사회적 지탄에도 불구하고 전과자 절반 가까이가 당선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전과가 당선의 결정적 하자가 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 현장에서 입증되며 죄를 짓고도 당당한 낯두꺼운 인물들의 정치판 출몰이 도를 넘는 우울한 현실. 국민을 기만하고도 일말의 죄의식조차 보이지 않는 엘리트들의 파렴치가 남긴 또 다른 폐해이다.
 
처방은 하나다. 그들이 흐려놓은 물에 유권자들이 현혹되지 않는 것이다. 유권자들이 눈을 부릅뜨고 후보들의 면면을 냉정하게 평가하는 것만이 삼류로 전락한 정치를 극복할 해답이다. 물건 살 때 가성비·가심비를 따지면서 정치인의 자질과 공약은 왜 따지지 않나. 지상낙원을 만들어주겠다는 허위와 짝퉁의 정치인을 솎아내는 것이나, 미래를 위해 당장 정치적 손해도 감수하고 국민에게 쓴소리도 할 줄 아는 ‘진품 정치’를 가려내는 것은 유권자의 몫이다. 6·13 지방선거부터는 ‘충동구매’ 습관을 버리고 깐깐하게 따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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