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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특수활동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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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특수활동비
  • 최재혁 지방부 부국장 정선담당
  • 승인 2018.07.12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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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대통령은 백악관에 들어서는 순간 본인과 가족들의 밥값, 의복비는 물론 심지어 화장실 휴지 구입비 등 생필품 비용을 모두 지불해야 한다. 대통령과 가족들이 사적으로 필요한 물품들은 모두 청구되는 것이다. 퍼스트레이디에게 필요한 스타일리스트 비용도 대통령이 내야 한다.

다행스러운 일인지는 모르지만 백악관 건물 임대료는 내지 않는다. 백악관에서 필요한 대부분의 비용을 개인 비용으로 지불하도록 하고 있다. 공적인 업무와 연관되지 않은 비용은 모두 청구하고 대통령의 월급으로 지불된다. 철저하게 사적 업무와 공적 업무를 나눠서 처리하는 합리적이고, 당연한 모습에 미국 민주주의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모습은 백악관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최근 참여연대가 국회 사무처로부터 제출받은 국회 특수활동비 내역은 충격적이었다. 국회의원들이 아무런 감시와 통제 없이 특수활동비를 마치 쌈짓돈인양 사용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매달 꼬박꼬박 월급처럼 챙겨가기도 했다. 이런 사실이 밝혀지기까지 시민단체의 특수활동비 정보공개 청구 등 끈질긴 노력이 있었다.

국회사무처는 특수활동비 내역은 비공개 대상 정보가 아니라는 대법원 판결에도 세부 지출내역이 공개되면 국회 본연의 의정활동이 위축된다며 공개를 거부해왔다. 특수활동비의 용처를 파악하는 것과 의정활동 위축이 무슨 연관이 있는지 모르겠다.
 
특수활동비 내역 공개는 1994년 이 제도가 생긴 이래 장장 25년만의 일이다. 이번에 공개된 2011~2013년도 특수활동비만 240억원이나 된다. 연평균 80억원 꼴이다. 상임위원장들은 매달 600만원씩 상임위 활동비 명목으로 받아갔고, 국회의장 해외출장이나 정책지원비 명목으로도 수천만원씩이 건네졌다.

이 돈이 어떻게 사용됐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다. 정상적인 업무에 쓰였을 줄 믿는다. 하지만 특수활동비를 생활비나 자녀 유학비로 썼다는 의원들의 자기고백이 있고 보면 국민들로써는 울화통이 터질 일이다.

특수활동비는 기밀유지가 필요한 활동에 쓰이는 경비를 뜻한다. 그런데 사용내역을 보면 기밀유지와는 거리가 멀다. 위원회 활동이 없는 기간에 특수활동비를 지급받은 것만 봐도 그렇다. 특수활동비를 용도에 맞게 사용하지 않고 국회의원 개인의 호주머니에 넣었다면 응당 환수해야 마땅하다. 특수활동비는 국민의 혈세인 까닭이다. 문제가 되자 국회는 2015년부터 개선책을 내놓겠다고 해놓고 깜깜무소식이다.

국회의 가장 큰 기능 가운데 하나는 예산 심의·의결권이다. 하지만 국회는 특수활동비 부분 만큼은 관대했다. 물론 특수활동비를 반납한 의원도 있다. 정의당 노회찬 원내대표는 어제 국회 특수활동비 폐지를 골자로 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은 국회의장이 국회 소관 예산요구서를 작성할 때 특수활동비를 제외하고, 국회의장 소속 국회예산자문위원회를 신설해 국민의견을 수렴할 수 있도록 했다. 개정안 처리를 지켜보겠다.일부에서는 활비를 폐지해야 한다는 여론과 함께 특활비 내역을 투명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동안 국회의원들은 사회 곳곳의 특권 등에는 눈에 불을 켜고 지적하고 이를 개선해왔지만 정작 자신들의 특권에는 관대해왔다.

셀 수 없이 많은 의원들의 특권 내려놓기는 공염불이 되기 일쑤였다. 국민 여론이 차가울 땐 모든 특권을 내려놓을 것처럼 하면서도 어느 누구도 특권을 내려놓지 않고 있다. 쌈짓돈처럼 써온 특활비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는다면 국회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더 싸늘해 질 수 있다는 것을 지금이라도 명심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에서는 국정원의 특활비를 받아 써 오다 문제가 됐으며 국회의 특활비는 지난 2015년 5월 '성완종 리스트' 수사를 받던 홍준표 당시 경남 지사의 발언에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홍 전 지사는 2011년 한나라당 당 대표 경선 기탁금을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에게 받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자 비자금 출처로 특활비를 꼽았다. 2008년 여당 원내대표이자 국회운영위원장이었던 시절 받은 국회대책비(특활비) 월 4000만∼5000만 원 중 일부를 생활비로 줬고, 아내가 이를 비자금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비슷한 시기 입법 로비 의혹으로 재판을 받던 신계륜 새정치민주연합 전 의원도 특활비를 자녀의 유학 자금으로 썼다고 말하면서 비난을 받았다. 이에 참여연대는 011∼2013년 국회 특활비 내역을 공개하라며 정보 공개 청구를 했으나 국회 사무처는 거부했고, 3년간 법정 다툼 끝에 이번에 내역이 공개됐다. 특활비의 자금 원천도 결국 국민의 세금이다. 우리가 낸 돈이 이렇게 무원칙하게 쓰이고 있다니 화가 난다. 빠른 시간 내에 제도적 개선책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실 이 글을 쓰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있다. 열심히 의정활동을 하는 의원들이 많다. 국민에게 겸손하고 수시로 정부의 잘못을 지적해 시정하는 의원들을 보면 존경하는 마음이 생긴다. 그들은 특활비로 의원들이 국민으로부터 지탄 받을 때 무척 괴로울 것이다. 원래 까마귀 소굴에 백로가 들어가면 곤욕을 치르게 마련이다. 그 안에서 치열하게 싸워야 한다.
 
제도개선을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속 들여다보이는 소리 하지 말라. 폐지하면 간단하게 해결된다. 도대체 특활비를 사용할 무슨 명분이 있는가. 개인이 아닌 국가를 위한 특활비라면 당당하게 사용하면 된다. 오히려 이렇게 나라를 위해서 돈을 쓴다고 해야 한다. 영수증도 없이 도둑놈 물건처럼 쓰기가 염치없지 않은가. 폐지하는 이외에 어떤 제도 개선도 있을 수 없다.
 
의원들이 출마했을 때 국민에게 온갖 약속을 다 한다. 국민에게 한 약속은 바로 빚을 지는 것과 같다. 약속을 이행했는가. 국민은 자신의 대변자인 국회의원이 무슨 일을 하는지 잘 알고 있다. 요즘 의원들의 행동을 보면서 욕을 할 생각도 포기했을 것이다. 그야말로 버린 자식으로 여길 것이다. 미운 짓을 골라가며 한다는 말이 있다. 이번에 들통이 난 특활비가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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