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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한 나라의 정신은 말과 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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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한 나라의 정신은 말과 글에 있다
  • 최재혁 지방부 부국장 정선담당
  • 승인 2018.10.11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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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은 한글날이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해 발표한 1446년 이후 572년째 되는 날이다. 한글날은 1970년 법정 공휴일이 되었다가 휴일이 많아 산업 발전에 저해된다는 문제 제기로 1990년 공휴일에서 제외되었다. 그러나 한글이 만들어진 시대적 배경과 문화사적 의의는 국민들이 알아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판단해 2012년 다시 공휴일로 지정됐다.

경제적 발전에 못지않게 문명사적 가치가 존중받아야 한다는 시대적 흐름도 반영된 결과로 보아야 한다. 지금으로부터 500여 년 전 세종대왕은 한글 창제의 목적이 백성에게 있음을 분명히 했다. 자국의 글이 없어 어려운 한자를 사용해야 하는 백성들을 안타깝게 여겨 만들어 낸 것이 한글이다.
 
지금으로부터 572년 전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이라는 새로운 문자체계를 선언했다. 당시 문맹률 높은 평민들이 더 편하게 살도록 배려하려고 만들었으나 500여 년 뒤 수만 명의 외국인까지 한글을 배우려고 한국을 찾는다. 세종대왕은 이런 상황을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세종대왕이 발명한 한글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는 학생 및 일반인들의 설문조사에서도 밝혀진 바 있다. 2004년 12월 한국발명진흥회에서 전국 15개 초 · 중 · 고교생 2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23.7%가 한글을 우리나라 최고의 발명품으로 꼽았다. 이어 측우기(22.7%), 해시계(15.5%), 거북선(12.1%), 금속활자(9.3%), 거중기(7.0%), 물시계(4.9%) 순이었다.
 
또 발명의 날 52주년을 맞아 페이스북 친구(페친)들이 뽑은 ‘우리나라를 빛낸 발명품 10선’에서도 최고의 발명품에 한글이 선정되었고, 2위는 거북선, 3위는 금속활자, 4위는 온돌, 5위는 커피믹스, 6위는 이태리 타올, 7위는 김치냉장고, 8위는 천지인 한글자판, 9위는 첨성대, 10위는 거중기 순이었다.

참 신통한 일이다. ㄱ, ㄴ으로 시작하는 불과 14개의 자음, ㅏ, ㅑ로 출발하는 10개의 모음으로 만개 이상의 소리를 표현하는 우리의 한글말이다. 한글은 글자 하나하나가 하나의 소리를 내는 음소(音素)문자다. 일본어와 중국어 소리는 많아야 500여개를 나타낼 뿐이다
 
소수민족이 쓰는 말을 포함하면 지구상에 모두 7000 여개의 언어가 있단다. 백만명 이상이 쓰는 문자는 30여개로 추려진다. 그중 한글의 과학성은 단연 으뜸이라는 평가가 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가 그 실증이라 하겠다. 동양에서는 유일한 등재 기록물이다.
 
인터넷 자판이나 휴대폰 단말기 글자판 이용에 있어서도 영어나 중국어, 일본어보다 훨씬 간결하다. 그럼으로써 타자속도나 정보체득 등 소통방식이 빨라진다. 세계 최강 수준의 IT산업을 구축한 기반이 여기서 발원된게 아닌가 싶다.
 
지난 9일은 5대 국경일의 하나인 한글날 이다. 특별한 의미를 살핀다. 주위에 한글의 영예로운 위상손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얼토당토 않은 언어습성이 한글명예를 훼손시킨다. 한글과 어울리지도, 옳지도 않은 한자어와 영어 갖다 붙여 그 뜻을 굴절시키는 꼴불견도 있다. 조어(造語), 아이디어 같지만 우리글의 오염으로 읽힌다.

“감기 빨리 낳으세요” “일해라 절해라 마세요” “들은 예기가 있는데요”…. 몇 해 전 한 포털이 조사한, 가장 거슬리는 맞춤법 오류들이다. ‘낳다’와 ‘낫다’를 구분 못 하고, ‘얘기’가 ‘예기’로 둔갑하는 건 지금도 흔하다. ‘이래라저래라’를 ‘일해라 절해라’로 쓰고도 ‘문안(→무난)하다’는 식이다. ‘에어컨 시래기(→실외기)’, ‘설앞장(→서랍장)’쯤 되면 정말 ‘어의(→어이) 없다’고 해야 하나.

억지 단축어·신조어·비속어는 점입가경이다. ‘댕댕이’(멍멍이), ‘#G’(시아버지)를 모르면 아재 소리를 듣는 세태다. “솔까말 존맛은 아니야”(→솔직히 까놓고 말해 진짜 맛있진 않아) 같은 외계어로 대화가 통할까 싶다.
 
정부도 오십보백보다. 법령에는 ‘수봉’(收捧), 양묘설비, 행정응원’ 등 해괴한 한자어가 지뢰처럼 박혀 있다. 일본 법률을 별 고민 없이 그대로 베낀 탓이다. 법제처가 최근 알기 쉬운 법률 용어를 공모한 결과 수봉은 징수, 양묘설비는 닻 감는 장치, 행정응원은 다른 관청의 협조요청에 응하는 행위로 순화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국민 의식을 정부가 못 따라간다.

북한 '조선글날'부터 훈민정음 상주본까지 … 당신이 알아야 할 572돌 한글날 헌법에도 130개 조문 중 37개 조문(29%)에 일본식 한자·표현·어투가 산재해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정갑윤 자유한국당 의원). 개헌보다 일본식 용어 정비가 더 급하다. 이한섭 고려대 교수의 《일본어에서 온 우리말 사전》에 따르면 1880년대 이후 우리말로 들어온 일본어 어휘가 3634개에 이른다. 땡깡, 기스, 간지 등은 여전히 일상어로 쓰인다.

정부 보도자료를 보면 습관적으로 외래어·외국어를 남발한다. 스타트업, 클러스터, 프리존, 커스터마이징, 크리에이티브팩토리 등처럼 표기는 분명 한글인데 영어를 모르면 이해가 어렵다. 동사무소도 굳이 주민센터로 바꾸고, 민원도우미는 옴부즈맨으로 써야 직성이 풀리는 모양이다.

국어기본법에 ‘공공기관 등의 공문서는 어문규범에 맞춰 한글로 작성해야 한다’는 규정이 무색하다. 하긴 청와대 홈페이지도 ‘브리핑, 온에어, 메시지, 풀버전’ 등 외래어 투성이다.1926년 ‘가갸날’을 기반으로 1928년 제정됐다. 그러나 90년이 지나도록 매년 한글날을 부끄러운 마음으로 맞고 있다.

한글날 하루는 너도나도 한글의 우수성을 칭송하겠지만, 그다음 날이면 까맣게들 잊고 또 한글파괴 경쟁을 벌일 것이다. “한 나라의 정신은 말과 글에 있다”는 괴테의 말을 되새길 때다.
 
국제화 시대를 맞아 다양한 언어가 사용되어야 함은 이해가 된다. 하지만 그렇다하더라도 한글이 민족의 고유 언어란 사실을 절대 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언어를 보전하는 정신에 모두가 공동의 뜻을 모아야 한다. 한글창제 정신과 한글을 보전하는 일은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을 지키는 일과도 같은 것이다. 정부나 공공기관, 전파를 타는 언론사나 포털의 올바른, 정상적인 한글운용을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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