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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유아교육은 비즈니스가 아닌 공공성이 확보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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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유아교육은 비즈니스가 아닌 공공성이 확보돼야
  • 최재혁 지방부 부국장 정선담당
  • 승인 2018.11.01 13: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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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국정감사에서 가장 뜨거운 국회의원 세 명을 꼽으라면 그 중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손에 꼽을 것이다. 바로 ‘사립유치원 감사결과’를 공개한 것 자체가 화제가 됐기 때문이다.

박 의원의 자료 공개는 새로운 게 아니다. 전국 시·도 교육청의 2016년부터 2018년까지의 감사결과 자료를 공개한 것으로 원자료(Raw Data)도 아니고 교육청마다 감사결과를 표로 정리한 형태의 자료와 ‘감사결과보고서’ 형태의 자료 등으로 혼재되어 있다.

전국 시·도 교육청이 전수조사를 한 것도 아니다. ‘자체’ 기준에 따라 ‘일부’ 유치원을 선별해 실시한 감사로 교육부가 전수조사를 하게끔 하지 않은 잘못이 분명 있다. 일예로 박 의원에 의해 공개된 자료를 보면 강원교육청은 85건의 적발사항이 공개됐지만 경남교육청은 6건의 적발사항에 그쳤다.

국민을 충격에 빠뜨린 사립유치원 비리의 본질은 죄의식 없이 국민 세금을 멋대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사용 내용도 명품 가방을 구입하거나 아파트 관리비와 벤츠 차량 유지비에 충당하는 등 개인적 용도로 쓴 것으로 드러났다. 또 급식 식재료 대신 술과 옷을 구입하거나 심지어 성인용품을 구입한 경우도 있었다.어떻게 이런 일이 오랫동안 광범위하게 벌어질 수 있었을까?

2조원의 국가 지원금이 내 돈이 아니라 국민 돈이라는 도덕적 의식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교육자로서의 자질이 의심스러운 일부 사립유치원 운영자의 도덕적 해이가 우선 지적된다. 여기에다 사립유치원의 불투명한 회계 감사시스템과 이를 적발하고도 눈감아온 교육당국의 안이하고 무책임한 행정도 한몫했다.

사립유치원의 회계 비리가 공개된 뒤 후폭풍이 거세다. 학부모와 국민들의 분노가 이만저만 아니다. 정말 교육현장인 유치원에서 일어난 일인가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다. 믿기지 않는 내용들이 속속 사실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도록 교육당국은 그동안 뭘 했는지 비판의 목소리도 고조되고 있다. 그렇다고 유치원을 안 보낼 수도 없다. 유치원은 사실상 정규 교육과정이나 다름없다. 부모들은 당연히 국공립 유치원을 보내고 싶어한다. 한데 자리가 없다. 원생 수용률을 보면 25% 밖에 되지 않는다. 울며 겨자먹기로 사립유치원에 보낼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문제가 된 사립유치원의 행태를 보면 도를 넘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학부모가 낸 돈은 물론이고 정부 지원금까지 원장 쌈짓돈 처럼 쓰인 사실이 드러났다. 전국 사립유치원 1878곳에서 5900여 건의 비리가 적발됐고 부정하게 유용된 금액도 269억 원에 달한다. 국회 국정감사에서 밝혀진 17개 시·도교육청의 2014-2017년 감사 결과다.

전체 사립유치원의 3분의 1을 감사해서 밝혀낸 것만 이 정도다. 전수 조사를 했다면 비리가 얼마나 더 있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사립유치원 곳곳에서 국민 혈세가 줄줄 새고 있었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유치원연합회에선 “일부 유치원의 비리가 마치 모든 유치원의 일처럼 과장됐다”며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뒤늦게 대책을 마련하겠다며 부산을 떠는 교육당국도 한심하다.

적발된 내용엔 단순실수나 행정오류 등도 적지 않다. 하지만 비리 유형을 보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내용도 있다. 유치원 돈으로 명품백을 구입하거나 아파트 관리비로 쓴 경우가 있다. 노래방이나 숙박업소 결제도 있다.

개인 계좌에 거액을 넣어둔 사례도 있다. 도덕적 해이를 넘어 엄연한 불법이자 범죄행위다. 물론 원칙대로, 투명하게 예산을 집행하는 사립유치원들이 더 많을 것이다. 일부 원장의 일탈로 인해 모든 사립유치원들이 욕을 먹는다고 항변할 수도 있다. 하지만 미꾸라지 한 마리가 흙탕물을 만들어도 결국은 모두가 욕을 먹는 법이다.

유치원의 비리나 부정은 과거에도 있었던 일이다. 이를 근절하기 위해선 당국에서 재발방지를 위한 조치를 제대로 했어야 했다. 감시시스템을 갖추고 위반 시 처벌을 강화해야 하지만 그러질 못했다.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수도권 교육청이 사립유치원 회계부정을 알면서도 수년간 제도개선을 하지 않은 점을 문제 삼았다.

일차적으로 사립유치원이 문제지만 이를 방치한 교육당국이 더 문제라는 질타다. 현재 국공립 유치원은 회계장부를 교육부가 수시로 들여다볼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사립유치원에도 추진하려고 했지만 반발 등을 이유로 하지 못하고 있다. 이를 회계부정이나 비리가 사라지지 않고 반복되는 원인으로 지목하기도 한다. 그동안 사립유치원이 감시와 감독의 사각지대에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세금을 한 푼이라도 받았다면 원칙대로 사용하고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전국 4200여 곳의 사립유치원에 정부가 누리과정 예산으로 매년 2조 원을 지원하고 있다. 이 돈은 유치원 운영자금의 45% 정도를 차지한다고 한다. 당연히 국공립 유치원과 같은 회계처리 기준과 감사 시스템을 적용받아야 한다. 이마저도 싫다면 정부의 지원금을 일절 받지 않는 게 마땅하다.

유아교육은 비즈니스가 아닌 공공성이 확보돼야 하는 교육의 영역이다. 문제는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지원되는 막대한 국민혈세가 허술한 감시·감독을 틈타 부정축재의 수단으로 악용된다는 것이다. 이번 기회에 유치원과 어린이집 투명성을 강화하고 비리를 근절해야 한다. 비리신고센터에 신고가 된 유치원과 대형 유치원을 우선 감사하고 비리가 적발될 경우 법·제도적 근거를 통해 단호한 조치를 취하야만 한다.

여론도 사립유치원에 우호적이지 않음은 물론이다. 이번 사태를 사립유치원의 문제들을 개혁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교육당국이 시급히 해야 할 일은 사립유치원의 투명한 회계 시스템 도입이다. 사립유치원들도 땅에 떨어진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적극 동참을 해야 한다. 이번에야말로 과거처럼 시간 끌기나 유야무야 넘어가는 일이 있어선 결코 안 된다. 분노한 국민들과 학부모들이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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