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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기부와 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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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기부와 나눔
  • 최재혁 지방부 부국장 정선담당
  • 승인 2018.11.29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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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를 마무리 해야할 시점에 이르면 기부와 나눔에 대한 생각이 깊어진다. 과거에는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처럼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하는 선행을 참된 선행이라 여겼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면서 사람들의 시각도 달라졌고, 요즘에는 유명인들의 기부 및 나눔이 언론매체를 통해 퍼지면서 일반인들에게 확산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기부와 나눔의 형태도 금전 기부, 재능기부 등으로 다양해졌고, 참여하는 사람들의 직업군도 다양해졌다.
 
희망차게 맞았던 무술년(戊戌年)도 이제 한 달 남짓 남았다. 새해를 시작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연말이 코앞이다. 유통가와 여행업계에서는 연말 시즌을 앞두고 각종 상품 출시 등 고객 잡기에 분주한 모양새다. 직장인들도 송년회 약속으로 벌써부터 스케줄이 빼곡해진다. 수능을 치른 수험생 등 여기저기 들뜬 분위기도 감지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올 겨울 유난히 강한 한파가 예고되며 소외 계층에게는 더욱 힘든 겨울나기가 예상되고 있다. 장기화된 경기침체와 소비심리 위축까지 겹쳐 이들을 향한 도움의 손길도 예전만 못하다는 게 또 하나의 걱정거리다. 자영업자를 중심으로 진행되던 기부금 감소 등 기부문화 위축이 바로 그것.

이처럼 기부문화가 위축된 것은 경기불황의 영향 탓이다. 소외계층은 그대로인데, 기업들의 재정여건과 개인 가게의 주머니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선뜻 나눔을 실천하기 힘들어졌다. 올 겨울 매서운 한파가 소외계층에게는 더욱 차갑게 다가오는 이유다. 양극화·소득 불균형 해소까지는 아니더라도 주변 이웃에 대한 작은 손길이 절실한 요즘이다.

때마침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중심으로 지난 20일 '희망 나눔 캠페인'이 시작됐다. 걱정되는 것은 기부 문화가 위축되며 공동모금회의 모금목표 달성이 성과를 거둘지 여부다. 분명한 것은 기부는 경제적 여유가 있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주변에는 이미 평생 김밥을 팔아 모은 돈을 쾌척한 할머니들뿐만 아니라 배달일, 보따리 장사 등 어려운 여건 속에도 나눔을 실천해 감동을 준 이들이 적지 않다. 오히려 생활 여건이 넉넉지 않은 이들이 다른 이의 처지를 더 이해하고 도움의 손길을 전한 셈이다. 결국 기부는 경제 여건이 풍족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나눈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그것이 작은 나눔이라도 말이다.

기부와 나눔의 문화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방식으로 SNS(Social Networking Service)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바로 ‘아이스 버킷 챌린지’(Ice Bucket Challenge 얼음물 뒤집어 쓰기)이다. 이 운동은 루게릭병(근위축성 측색 경화증 ALS) 환자들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기부금을 모으기 위해 이번 여름 미국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아이스 버킷 챌린지의 참가자는 각각 세 명을 지목하고, 지목당한 사람은 24시간 안에 얼음물을 뒤집어쓰든가, ALS단체에 100달러를 기부해야 한다.

여기에 마크 주커버그와 빌게이츠 같은 유명인들이 동참하면서 이 운동은 SNS를 타고 전세계로 확산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연예인들이 동참하면서 일반인들이 관심을 갖고 동참하는 결과를 낳았다. ‘얼음물 뒤집어 쓰기’가 마치 하나의 놀이인 것처럼 퍼져나간 것에 대한 비판도 있었지만 억지로 타인의 동정심을 자극하지 않고 기부문화의 새로운 형태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과일 장사로 모은 전 재산을 고려대 장학금으로 내놓은 노부부 이야기에 가슴이 훈훈해진다. 초등학교도 제대로 못 마친 김영석·양영애 부부가 평생에 걸쳐 일군 땅과 건물의 가치는 400억원으로 고려대 역사상 개인 기부 최고액이다. 아직도 40년 된 소파와 장롱을 쓰는 이 부부의 반찬은 세 가지뿐이라고 한다.
 
“나 같은 밑바닥 서민도 인재 기르는 데 보탬이 될 수 있어 기쁘다”는 이들처럼 우리 사회에는 배우지 못한 사람들의 기부 선행이 많다. 신문 팔아 모은 1억1200만원을 초·중·고교에 기탁한 유창일 씨, 콩나물과 국밥 장사로 번 15억원을 모두 내놓은 김유례 씨 등 수많은 ‘손수레 할아버지’와 ‘김밥 할머니’ ‘행상 부부’가 있다.

남모르게 기부하는 ‘얼굴 없는 천사’들도 있다. 전북 전주 노송동 주민센터에 18년째 기부해온 ‘천사’는 매년 성탄절 무렵에 신원을 밝히지 않은 채 온정을 베풀고 있다. 지난해까지 기부액만 5억5813만원에 이른다. 9년 전부터 전남 담양군청에 총 4억여원을 보내 화제를 모았던 또 다른 ‘천사’의 신원은 얼마 전 칠순의 전직 소방관 임홍균 씨로 밝혀졌다.
 
돈이 많건 적건 피땀 어린 재산을 기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들의 눈물겨운 쌈짓돈으로 자란 미래 꿈나무들의 각오는 그래서 남다르다. 장학금 덕에 무사히 학업을 마친 서울대 졸업생 이미진 씨가 최근 첫월급에서 100만원을 떼 남해군향토장학회에 기탁한 얘기는 ‘아름다운 선순환’의 한 사례다.

기업들도 대를 이어 장학·기부에 힘쓰고 있다. 며칠 전 1000억원 규모의 ‘최종현학술원’을 발족한 SK그룹을 비롯해 삼성 현대 롯데 등이 키운 인재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이종환 삼영화학그룹 회장이 전 재산을 들인 관정이종환교육재단도 16년간 7500여 명에게 2300억원의 장학금을 지급했다.
 
진정한 기부는 물고기만이 아니라 고기 잡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모두가 보람을 얻는다. 셰익스피어도 자선과 기부를 “주는 자와 받는 자를 두루 축복하는 미덕 중에서 최고의 미덕”이라고 말했다.
 
기부는 돈이나 땅으로만 하는 게 아니다. 의료·교육 등 영역이 다양하다. 장기 기증으로 생명의 빛을 나누는 숭고한 차원까지 나아간다. 이로써 사회가 건강해지는 만큼 우리가 얻는 감동은 더 깊고 뭉클해진다. 지금 이 순간에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선행을 베푸는 사람이 많다.
 
기부와 나눔 같은 일들은 나 자신만이 아니라 타인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기부와 나눔의 문화가 확산되는 일은 우리 사회에 무척 긍정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타인에게 무관심한 사회, 타인의 아픔에 둔감한 사회만큼 무서운 사회가 또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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