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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황금돼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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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황금돼지해
  • 최재혁 지방부 부국장 정선담당
  • 승인 2019.01.03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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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 이후 한반도의 정세가 올해만큼 좋았던 적이 없었다.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는 등 전무후무한 남북관계 개선으로 한반도 역사상 큰 획을 그었다. 급기야 DMZ 내에 감시초소를 철수하고 지난달 26일에는 남북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 착공식을 열어 한반도가 섬나라에서 벗어나 아시아 대륙으로 뻗어나가게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만들어낸 한 해였다.

2019년 황금돼지의 해, 기해년이 시작됐다. 기해년은 재물과 부를 상징한다고 해서 많은 사람들이 결혼과 출산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도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희망적이지 못하다. 지난해부터 경제전문가들은 우리 대한민국의 경제상황이 더욱 악화되어 일자리가 급감할 것이라는 전망만을 내 놓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경제란 '정부하기 나름'일 수도 있다.

문제는 우리 경제의 대내외 여건이 그리 녹록지 않다는 점이다. 우선, 대외환경이 매우 불확실하다. 지난해까지 한국 경제를 지탱해 주었던 반도체 산업의 성장세가 새해부터는 수요감소와 중국의 영향을 받아 본격적으로 둔화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 발 미중 통상 전쟁 역시 우리의 대외환경을 더욱 어둡게 하고 있다. 글로벌 자국 이기주의 확산 역시 무역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에는 큰 암초임이 분명하다.

우리 민족이 돼지와 함께 살기 시작한 때는 3500년 전이다. 우리 민족에게 돼지의 위상은 대단하다. 조상의 음덕을 부르는 제사음식이 됐다. 돼지꿈은 대표적 길몽으로 재화를 뜻하며 연초에 돼지꿈을 꾸면 일년 내 재수가 있다고 생각한다. 경제가 어려운 지금 국민 모두가 황금 돼지꿈을 꾸는 대박의 한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돼지는 복과 재물을 상징한다. 신이 준 가축으로 여겼다. 짧은 임신기간에 다산하는 특성 때문이다. 돼지의 회임기간은 4개월이다. 한번에 10여 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엄청난 번식력이 재물의 상징이 된 것이다.

돼지 저금통이 이를 대변한다. 돼지의 한자인 돈(豚)이라는 발음이 화폐를 의미하는 돈과 같은 것도 돼지가 재물의 화신이 된 이유이다.

고사를 지낼 때 웃는 돼지의 입에 지폐를 물리는 풍습은 돈을 쫓아다니는 현대인의 가치관이 반영된 것이 아닐까. 이는 횡재수로 연결이 된다. 특히 돼지꿈은 길몽으로 최고다. 돼지꿈을 꾸면 복권을 사고 싶어진다. 복권당첨자들은 하나같이 돼지꿈을 꾸고 복권을 샀다고 한다.

돼지는 약속의 징표가 되기도 한다. 우리 민족은 ‘돼지의 날’ 즉 상해일(上亥日)에는 통통한 돼지 모양으로 만든 두개의 주머니를 비단으로 만들어 달고 다녔다.

돼지는 고대 출산 설화에 자주 등장하는 동물이다. 고구려 산상왕이 주통촌 여인과 관계를 갖도록 해준 동물이 바로 돼지였다. 왕은 돼지가 아들을 낳게 해줬다고 하여 왕자 이름을 교체(郊)라고 지었다. 돼지 아들이 바로 11대 임금인 동천왕(東川王)이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산상왕의 득남 설화가 재미있다.

가을 9월에 주통촌의 여자가 사내아이를 낳았다. 왕은 기뻐하며 ‘이것은 하늘이 뒤를 이을 아들을 나에게 준 것이다’고 말했다. 제사에 쓸 돼지의 일에서 시작돼 그 어미를 가까이 하기에 이르렀으므로, 그 아들의 이름을 ‘교체’라 하고, 그 어미를 후궁으로 삼았다. 이전에 그녀의 어머니가 아이를 배어 낳기 전에 무당이 점쳐 말하기를 ‘반드시 왕후를 낳을 것이다’고 했다. 어머니가 기뻐하고 낳은 후 이름을 후녀(后女)라고 했다. 겨울 10월에 왕은 환도로 도읍을 옮겼다. 산상왕 17년(213) 봄 정월에 ‘교체’를 세워 왕태자로 삼았다.

또 고구려 수도 국내성에 도읍을 정하게 해준 영험한 동물로도 등장하고 있다. 유리왕 고사에도 제사에 쓸 돼지가 도망을 쳐 관리들이 뒤를 쫓았다. 그런데 돼지가 도망을 간 곳이 넓고 수도를 삼을 만한 땅이었다. 700년 대륙을 지배했던 왕도 국내성이었던 것이다.

돼지는 고운 최치원의 설화에도 등장하고 있다. 고운의 어머니가 황금돼지에게 잡혀갔는데, 부친이 실(絲)을 부인의 다리에 묶어서 이를 되쫓아가서 구출한 뒤에 최치원을 잉태했다는 것이다. 돼지가 점지해준 최치원은 당나라에서 문명을 날린 최초의 한류였으며 최고의 문장가였다.

지금의 마산 월영대에 내려오는 전설에도 최치원과 황금돼지가 등장한다. 신라말엽 어느 해 돝섬에 광채와 함께 황금돼지 우는 소리가 들렸다. 마침 이곳에 있던 최치원이 활을 쏘아 빛을 맞춰 화를 면하게 했다는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각종제사에 돼지보다는 소를 많이 썼다. 양반가에서는 돼지고기를 기피하는 풍속이 있었다. 그러나 국가의 중요한 제사였던 납향(臘享)에는 멧돼지고기를 썼다. 납향이란 새나 짐승을 잡아 종묘사직에 공물로 바치고 지내는 대제다.

오늘날에 고사에는 돼지 머리를 제물로 쓴다. 재물과 행운을 주는 동물로 납향의 고사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 한국은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다. 30년 이상 지속적으로 출생율이 감소, OECD 국가 중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저출산 요인으로는 젊은 세대들의 결혼기피와 육아문제, 주택문제, 실업문제 등이 부각되고 있다.

2007년 정해년(丁亥年)에는 웬만한 병원 신생아실마다 아기 울음소리가 가득했다. 그해가 600년 만의 황금돼지해로, 황금돼지띠 아이들은 재복을 타고난다는 소문이 퍼진 때문이었다. 실제 그해 출생아 수는 49만7000명으로 전년보다 4만5000명이 증가했다. 황금돼지띠 아이들이 돌이 되자 금값이 오르고, 유치원 취학 때는 유치원 대란이 발생했으며, 초등학교 입학 때는 교실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후 출산율이 다시 떨어지다가 2010년 경인년(庚寅年) 백호랑이띠, 2012년 임진년(壬辰年) 흑룡띠 해에도 속설로 출산 붐이 일었다.

황금돼지해인데도 분위기가 좀처럼 뜨지 않는 게 오히려 안타깝다. 한국조폐공사가 황금돼지 골드바를 출시하고, 기업들도 이런저런 마케팅에 나서고 있으나 침체된 경기를 살리기에는 역부족이다. 예비엄마들이 모이는 일부 인터넷 게시판에는 기대감을 표시하는 글들이 올라오는 모양이나 출산율 반등은 어려운 상황이다. 젊은 세대에게는 한때의 풍설이 아니라 아이를 낳고 키울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이 중요하다.

직장여성들은 결혼으로 인한 경력단절이나 자녀 양육의 어려움으로 결혼을 주저한다. 결혼 후의 삶은 한마디로 ‘신 빈곤층’으로 추락하기 때문이다. 맞벌이를 해도 과도한 집 장만에 따른 은행부금, 자녀 양육비 부담으로 기초적 문화생활조차 힘들다. 결혼 2~3년차 신혼부부들의 이혼율이 크게 증가하는 것도 경제적 불화가 주요 원인이다.

정부가 수십조나 들인 출산 정책은 실패로 돌아갔다. 도심 아파트에서는 영아들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하는 시대가 됐다. 대도시의 잘 나갔던 산부인과 병원들이 경영난을 겪고 있다는 신문 보도도 있다. 황금돼지해 획기적인 출산정책은 없는 것일까. 설화대로 올해만큼은 많은 영재들이 태어나는 한해가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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