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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106] 막말 정치인, 국민은 수치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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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106] 막말 정치인, 국민은 수치스럽다
  •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 승인 2019.04.10 13: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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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길원 大記者 세상읽기]

‘난장판’, ‘개판’처럼 정치인 스스로가 정치권을 막말과 독설의 정치판으로 만들고 있다. 부끄러워하기보다는 저주와 증오를 퍼붓고 오히려 우쭐하는 치졸함이 유치함의 극에 달한다 .

국가 재난사태로 번졌던 강원도 고성.속초 산불이 많은 과제를 남겨놓았음에도 불구하고 다행스럽게 진화됐다. 큰 불 소식에 가슴을 조이던 국민들이 한 시름을 놓았다. 큰 사건이 터질 때마다 ‘이게 나라냐’고 분노했던 국민들로서는 오랜만에 정부의 존재를 확인했다.

하지만 산불은 꺼졌지만 국민들의 가슴에 불을 지르는 정치권의 방화는 여전히 활활 타오르고 있다.

꽃이 지고 피는 계절에 정치권의 험악한 독설과 막말이 그야말로 가관이다. 여야 가릴 것 없이 ‘누가 누가 험악한 말을 잘하느냐’는 경연을 펼치고 있다. 어느 의원은 자기당의 대표를 두고 ‘찌질하다’고 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우리의 정치인이, 또 정치가 국민들의 평균 수준 이하의 찌질함인 것도 이런 품격 잃은 언어에서 비롯되고 있다.

고성. 삼척의 국가적 재난 앞에서 시민들은 불길을 잡겠다고 뜨거운 산불과 사투를 벌이는데 한국당은 무슨 호재를 만난 듯 정부를 조롱하며 정치공세에 열을 올려 공분을 샀다.

한국당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는 자신의 페이스 북에 “문재인 ‘촛불정부’인 줄 알았더니, ‘산불정부’네요. 촛불 좋아하더니 온 나라가 산불, 온 국민을 화병‘이라고 썼다. 한 때 대권까지 꿈꿨던 사람의 인식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상식 이하의 수준이 초라하다 못해 참담하다.

그런가 하면 방송기자출신의 민경욱 대변인은 페이스북에 “대형산불 발생 네 시간 후에야 긴급지시한 문대통령 북으로 번지면 북과 협의해 진화 하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빨갱이 맞다‘는 글을 쓰거나 공유했다가 비난이 일자 삭제 했다.

제1야당의 대표도 예외가 아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8일 문재인 대통령을 가리켜 “수치(羞恥)를 수치로 모르면 국민이 대통령을 수치로 여긴다”고 밝혔다. 김연철 통일부·박영선 중소기업벤처부 장관후보자의 임명 강행기류와 관련해서다.

정치신인이지만 증오의 정치로 패거리를 만들려는 계산된 발언은 이미 노회한 정치 9단 이상이다. 신인다운 신선함이나 국가와 국민의 미래를 담당하고자 하는 고민은 어디에도 없다.

문재인 대통령의 인사 참사를 두둔해서가 아니다. 대통령의 이번 인사는 전 정권과의 차별성마저 의심케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수치를 수치로 모르면 국민이 대통령을 수치로 여긴다”는 황 대표의 말은 그가 국무총리로 재직하던 시절 대통령이었던 박근혜에게 국민들이 했던 말이다. 적어도 그 ‘수치’에서 황 대표도 아직 예외는 아니다.

기독교 장로로서 얼마든지 품격 있는 말로 아프게 지적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많은 기독교 신자들조차 인상을 쓰게 하는 막말을 동원하는 것은 정치를 마키아벨리즘으로 보기 때문일 것이다.

여당이라고 해서 다르겠는가. 지난달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외신을 인용하여 문재인 대통령을 ‘김정은 수석 대변인’에 비유하자 이해찬 대표가 느닷없이 ‘국가원수 모독죄’를 꺼내든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블랙코메디다. 나 원내대표의 발언이 유치하고 치졸하기 짝이 없는 것이 사실이나 여기에 ‘국가원수 모독죄’로 맞대응한 이 대표도 ‘그 나물에 그 밥’이고 도긴개긴이다. 차라리 아무말도 하지 않았으면 나 대표의 몰상식을 비난했을 국민여론이 이 대표의 발언으로 희석되고 말았으니 말이다.

또 대통령 모독발언이라면 이명박을 가리켜 ‘쥐박이’라고 조롱했던 것이나, 박근혜를 ‘만주국 귀태(태어나지 않아야 할 사람)의 후손’이라고 비하한 것도 마찬가지다.

히틀러는 유대인 학살을 정당화하기 위해 ‘빨갱이 반기독교’라는 증오의 언어를 동원했다. 군중은 증오에 의해 더 잘 뭉치고 때로는 맹목적이 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오늘의 한국사회에, 특히 정치권에 증오와 저주의 막말이 넘쳐나고 있다. 감정적 의견을 여과 없이 배설하고 상대를 존중하거나 비판의 예의를 찾아보기 어렵다. 오직 권력을 좇아 편을 나누고 갈등을 부추기는 증오의 언어가 난무하고 있을 뿐이다. 증오의 언어는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는 폭력이다. 물리적 폭력보다 상처가 더 깊을 수밖에 없다.

‘난장판’, ‘개판’처럼 정치인 스스로가 정치권을 막말과 독설의 정치판으로 만들고 있다. 부끄러워하기보다는 저주와 증오를 퍼붓고 오히려 우쭐하는 치졸함이 유치함의 극에 달한다.

한국 사회가 변하려면 정치 언어부터 바뀌어야 한다. 언어는 인격이다. 천박한 인격의 정치인은 국민을 슬프게 한다. 황 대표의 말을 막말의 정치인들에게 되돌려 주고 싶다. “정치인이 수치를 모르면 국민이 정치인을 수치로 여긴다” 

 

[전국매일신문]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sgw@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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