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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에서] ‘조국 수호 검찰 개혁’은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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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에서] ‘조국 수호 검찰 개혁’은 성찰
  • 최재혁 지방부국장
  • 승인 2019.10.10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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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 지방부국장

 

▲최재혁 지방부국장 정선담당

<전국매일신문 최재혁 지방부국장 정선담당>

광화문과 서초동의 머릿수 싸움은 마치 원시 부족 간 패싸움의 전야제를 보는 것 같다. 정치의 갈등 조정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국정운영이 망가지니, 이 상태를 이용해 이익을 보려는 여야의 교묘한 정치행위가 작동했다. 여의도 정치는 무능의 끝판왕을 보여준다. 광장이 판을 치니 상대는 나쁜 놈, 타도해야 할 적이다. 보이는 게 다 부정적이고 정치적 잇속 챙기기라는 생각만 넘쳐난다.

그래도 보이는 게 다가 아닐 것이라는 굳은 믿음으로 어디엔가 있을 발전적 요소를 애써 찾아봤다.우선 검찰 개혁이 전 국민의 의제로 떠올랐다. 그동안 추상적인 의제였다면 이제는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는, 꼭 해결해야만 하는 과제가 됐다. 피의사실 공표, 공개소환, 특수부의 인지 수사, 검사 외부 파견 등은 그동안 자의적 남용으로 인권을 침해하거나, 나아가 검찰 자체 권력을 강화하는 지렛대로 활용했던 것들이다.
 
아직 시작 단계에 불과하지만 이런 것들을 포기·금지한 것은 검찰 개혁이 더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됐다는 신호다.대통령과 여당은 이 계획을 정교하게 준비했을까. 그렇지 않다고 보는 게 맞아 보인다. 상황이 그렇게 흐른 것이다. ‘조국 수호=검찰 개혁’은 정권의 선동적 정치구호일 뿐이다.

조금도 동의하지 않거니와 오히려 조 장관의 존재는 검찰 개혁의 걸림돌이 돼 버렸다. 개혁은 장관 혼자가 아니라 수많은 이해당사자들의 이해와 압박, 여론의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여권은 검찰 개혁이라는 작은 단위의 전술에서는 유리한 환경을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국정운영이라는 거대한 전략에서는 진흙탕에 빠졌다.

여권이 검찰을 다루는 행태는 그들이 그렇게 몰아세웠던 보수 정권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모두가 나서 적폐수사를 강조하더니 같은 잣대로 권력 실세를 다루니까 검찰권 남용이란다. 그런 주장을 하려면 육참골단(肉斬骨斷·자신의 살을 베어 내주고 상대방의 뼈를 자른다)의 자세로 했어야 했다.

그럴 의지나 자신이 없었던 거다. 공정과 정의라는 진보의 가치는 만신창이가 됐다. 결론적으로 조국 사태는 검찰 개혁을 거스를 수 없는 흐름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조국 수호와 검찰 개혁은 아무 상관이 없다. 흐름이 대세를 탔기 때문에 다른 이가 해도 충분히 할 수 있다.

조국 사태는 진보 보수 기득권의 적대적 공생이라는 암을 치료 가능 시기에 운 좋게 건강검진에서 발견한 것과 같다. 보수는 탄핵 이후 성찰이 없어 궤멸 상태의 지지율 그대로다. 조국 사태에서 성찰이 없으면 진보의 폐족 시대가 다시 올지도 모를 일이다.

밀리면 끝이라는 ‘노무현 트라우마’는 벗어날 때도 됐다.또 하나의 성과는 정치인의 무능이 얼만큼 국민을 피곤하게 만드는가를 확실히 알았다는 점이다. 주말마다 노는 날마다 거리에 나가려고 대통령 뽑고 여야 의원 뽑은 게 아니다. 권력을 선출한 책임은 결국 선출한 사람에게 돌아간다. 역사에 지름길은 있어도 생략은 없다던데, 우리는 감히 생략하려던 과정을 지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역사는 사람들을 가르칠 게 있기 때문에 거칠 것은 꼭 거치게 하는 모양이다.
 
성찰이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사용한 이는 조국 법무부 장관이다. 그는 지난달 26일 국회 대정부질문에 출석해 성찰이라는 단어를 수차례 사용했다. 자유한국당 주광덕 의원이 ‘현직 장관이 검찰 수사 대상이 됐다’고 지적하자, “저와 제 가족의 일로 국민에 심려끼쳐 너무 송구스럽고 죄송하다. 성찰하면서 업무에 임하겠다”고 말했다.

또 검찰이 자신의 자택을 압수수색할 때 현장의 검사 팀장과 전화 통화를 한 데 대해 야당 의원들의 질책이 이어지자 “물론 제 처가 전화를 걸어왔고 (몸)상태가 매우 나빴지만 그냥 끊었었으면 좋았겠다고 후회한다. 성찰하겠다”고 했다.

이어 전화를 받은 검사가 압력을 느꼈을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에는 “그게 불찰이라면 성찰하겠다”며 또다시 ‘성찰’을 언급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최근 두차례 성찰을 언급했다. 지난달 27일 조국 법무부 장관 일가에 대한 검찰 수사와 관련, “검찰이 아무런 간섭을 받지 않고 전 검찰력을 기울이다시피 엄정하게 수사하는데도 검찰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현실을 검찰은 성찰해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조국 일가에 대해 수사를 하고 있는 검찰에 대해 언급한 성찰은 문 대통령과 여당 지지자들은 몰라도 나머지 국민들은 쉽게 동의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의 발언은 원론적으로 보면 조국 일가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검찰의 고질적인 병폐인 피의사실 공표와 인권침해 논란이 불거지고 있는 데 대해 대통령으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검찰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 이상으로 조국 일가에 대한 엄정한 수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큰 현 상황에서 검찰에 대한 성찰 요구는 모든 국민을 대표하는 대통령으로 신중하지 못한 발언이었다는 지적이 높다.

만약 문 대통령의 검찰에 대한 성찰 요구가 세월호 유가족 사찰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다 지난해 말 목숨을 끊은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이나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를 방해했다는 혐의로 수사를 받다 2017년 11월 목숨을 끊은 변창훈 검사 사건이 터졌을 때 나왔더라면 전 국민으로부터 지지와 환호를 받았을 일이다.

이 전 사령관이나 변 검사 모두 윤석열 검찰총장이 검사장으로 있던 서울중앙지검에서 수사를 받았다. 여,야, 그들의 싸움에서 도덕성은 실종되고 정직과 공정의 룰은 폐기됐다. 그 대가가 고스란히 국민들의 몫이라는 사실이 더욱 두렵게 만든다.한 달 뒤면 문재인 정부가 임기 반환점을 돌게 된다.

그럼 지금쯤 대선과정에서 약속하고 취임사에서 천명한 집권 청사진이 얼마나 구현됐고 앞으로 남은 과제는 뭔지, 평가와 성찰의 시간을 갖는 게 정상이다. 이 정부가 어떤 정부인가. 국정농단과 헌정유린을 자행한 박근혜 정부를 탄핵한 촛불의 명령을 받들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장담한 정부가 아닌가. 가장 아픈 것은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던 약속이 국민을 두 동강내는 결과로 나타난 점이다.
 
대통령은 두 집회를 두고 대의 정치가 민의를 반영하지 못할 때 국민이 직접 의사 표시를 하는 것은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하는 긍정적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민의를 반영할 주체가 누구보다 대통령 자신인데 국회 탓만 하고 있다. 대통령에게 조국 파면을 요구하는 광화문 집회는 민의도 아니란 말인가. 국회 탓이라면 왜 여의도가 아니라 서초동에서 모여 검찰 개혁을 외치는가. 

[전국매일신문] 최재혁 지방부국장
jhchoi@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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