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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48] 두려움으로 독자 앞에 다시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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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48] 두려움으로 독자 앞에 다시 선다
  •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 승인 2017.01.04 14: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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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길원 大記者 세상읽기]

-젊은 시절의 작가 앙드레 지드가 답답한 현실의 모든 언어로부터 탈출해 저 아프리카의 사막을 방황하며 알몸뚱이로 자신과 투쟁했듯 정유년 새아침 빈가슴과 치열한 정신으로 또 다른 시작을 준비해야만 한다.-

지난 한 해 아침은 항상 부끄러움이었다. 언제나 최선을 다한 하루였다고 자위하면서 어제 밤 원고를 마감했지만 아침이면 항상 부끄러운 얼굴로 너(신문)를 맞았다. 알지도 못한 것을 아는 것처럼 사실이 아닌 것을 진실인 것처럼… 두 눈 부릅뜨고 감시해도 두발 부르트도록 뛰어도 진실은 저 먼저 저 멀리 달아났으며 난 두려움을 소주잔에 실어 날려 보냈다. 어쩌다 핸드폰에 울리는 독자들의 칭찬에 다시 힘을 얻기도 했지만 끊임없이 쏟아지는 질타는 나의 정열을 주눅들게 만들었다.

정유년 새아침 무디어진 펜을 다시 갈고 두려움을 거둬내기 위해 우선 새마음으로 책상부터 정리한다. 책상위엔 지난 한해 동안 기록했던 취재수첩 몇권이 어지러히 널부러져 있다. 기회가 닿으면 쓰려고 메모해 두었던 기록들이 지면으로 튀어 나오지 못한 채 희미하게 지워져 가고 있다. 한권의 취재수첩을 들추자 그럴듯하게 진실인양 위장된 글, 낙서로 이어지다. 중간쯤 장에 적힌 글이 눈길을 끈다.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는 말로 시작되는 초면의 만남은 몇 분 지나지 않아 고향과 출신학교, 성씨와 본관을 확인하면서 '인연'을 찾아 간다. 양자가 거기서 인연의 끈을 찾지 못할 때는 가족과 친구로 확대되고 대부분의 경우 늘어진 끈을 접점으로 이어진다. 그리고는 밤을 넘기지 않고 '타인'은 '호형호제'의 관계로 나아간다. 'ㅎ'은 다시 'ㅅ'으로 발전한다. '형님'은 '성님'으로, '흉'은 '숭'으로 표준어는 사투리로 바뀐다.

'ㅎ'은 이성적이며 법적인 측면이 강조된 반면 'ㅅ'은 끈끈하며 감성적이고 도덕적인 뉘앙스를 풍긴다. '흉악한 놈' 뒤에는 단죄가 따르지만 '숭악한 놈' 뒤에는 관용이 들어간다. 공사(公私) 구분 없이 통용되는 이 말은 사적으로 긍적적 측면이 있겠으나 사업가와 공직자, 정치인, 특히 언론인과 만나서 하루아침에 호형호제의 관계로 빠르게 발전 할 경우 원칙이 무너지는 결과를 낳게 한다. 형제 사이는 좋은 게 좋으며 까탈스런 법률이 끼어들 틈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호형호제의 문화야 말로 우리 사회를 좀먹는 가장 큰 해악이 아닐까 늘 생각했었다.

취재수첩을 다시 한 장 한 장 넘기면 '카지노 자본주의', '이념의 진보성과 삶의 보수성', '회의적 낭만주의에서 실천적 저항주의로 옮겨가는 과정', '가마 타는 사람은 즐거움만 알고 메고 가는 사람의 괴로움은 모른다', '메가케로스의 뿔', 등 등 어디서 보고 듣고 읽고 주워 담은 편린들이 낙서처럼 빛바래 남아있다.

그 다음 장에는 "사실주의는 보이는 그대로를 기록하는 것이며 자연주의는 느끼는 그대로를 기록하는 것"이라고 쓰여 있다. 이어 '아무나 아무말을 아무렇게 내뱉는 이런 민주주의는 싫다'. '즈그들 끼리'의 정치판에 흥겹게 놀면서 제발이지 '국민'과 '민족'이라는 이리의 탈만은 벗었으면 좋겠다는 글 뒤에 사이비들이 들끓는 세상에 시인 김수영은 '민주주의의 싸움에는 그림자가 없다'고 절규했다.

그는 '하… 그림자가 없다'라는 시를 통해 '우리들의 적은 카크 다글라스나 리챠드 위드마크 처럼 사나웁지도 않다/ 그들은 민주주의를 가장하고/ 자기들이 선량이라고도 하고…'라고 노래했다. 적이 뚜렷히 보이지 않는 민주주의는 정말 갑갑한 노릇이다. 우리는 내일 아침에도 사이비언론과의 보이지 않는 싸움을 계속해야 한다. '신문의 마술은 활자크기에 있다. 그러나 신문의 활자는 마술이기에 크다고 해서 진실에 가까운 것은 아니다'고 빠알간 볼펜으로 밑줄 그어져 <참고>라고 쓰여있다.

마지막 장에는 촛불 민심, 박근혜 탄핵, 최순실, 정치권 지각 변동 등에 대한 글들이 정리되지 않은 채 낙서처럼 더럽혀져 있다.

하늘은 마알 같고 시린 바람이 지천에 가득한 이 겨울… 어느새 케니지(kenny G)의 색소폰이 실루엣을 토하듯 봄이 기다려지는 지금, 항상 목탁이며 거울이고자 했던 지난 세월, 난 옷걸이에서 갑자기 툭 떨어지는 옷처럼 공기(公器)로서의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그만 허물어진 채 덧없는 세월을 보낸 것 같다. 하지만 지난 1년동안 글을 쓰면서 많은 것을 배우기도 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에서부터 도도한 흐름에 혹여 낙오될까봐 흔들리는 가치관을 붙들기 위해 무진애를 쓰기도 했고 절망과 좌절의 강을 수없이 건너기도 했다. 그속에서 난 사람사는 아름다움도 구경했고 음모와 비수가 꿈틀거리는 냉혹한 현실도 경험했다.

이제 난 젊은 시절의 작가 앙드레 지드가 답답한 현실의 모든 언어로부터 탈출해 저 아프리카의 사막을 방황하며 알몸뚱이로 자신과 투쟁했듯 정유년 새아침 빈가슴과 치열한 정신으로 또 다른 시작을 준비해야만 한다. 늘 곁에서 "세상은 살만한 것이고 따스한 것"이라는 소박한 진리를 깨닫게 해 준 아내와 날카로운 비판과 격려, 용기의 꽃다발을 안겨주셨던 독자여러분께 감사드리며 올해는 1단  기사도 정성을 다한 탑 기사처럼, 불의에는 추상과도 같은, 약자에게는 한없이 부드러운, 신문의 최후 보루이자 게이트 키퍼로서의 사명을 다하고자 다짐한. 

 

[전국매일신문]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sgw@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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