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매일신문
지면보기
 표지이미지
지방시대
지면보기
 표지이미지
핀란드의 기본소득제 실험에 주목한다
상태바
핀란드의 기본소득제 실험에 주목한다
  • 최재혁 지방부 부국장 정선담당
  • 승인 2017.01.19 14: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선거가 멀지 않았다는 사실이 실감난다. 한동안 잠잠했던 기본소득제가 다시 정치권의 화두로 떠올랐다. 야권에서 이재명.박원순.정운찬 등의 주자들이 도입을 주장했고,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 때마침 '복지천국' 핀란드가 이달부터 2000명에게 매달 71만원씩 지급하는 기본소득제 실험에 들어갔다. 2012년 대선의 '경제민주화'처럼 2017년 대선에서 기본소득제가 최대 쟁점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커 보인다.

 

우려되는 것은 대권주자들이 기본소득제를 포퓰리즘 공약으로 악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들이 제시한 내용에는 기본소득에 대한 오해 또는 의도적 왜곡.과장이 엿보인다. 마치 '공돈을 드립니다' 하는 현수막을 내건 꼴이다. 기본소득이란 국가가 잘살든 못살든 모든 국민에게 일정액의 생계비를 주는 무차별 복지제도를 말한다. 유토피아적 공상이거나 급진좌파자의 주장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기본소득은 논의의 역사가 꽤 긴 데다 최근에는 우파 경제학자나 기업인들이 논의를 주도해 왔다.

 

기본소득 아이디어의 기원은 1516년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라고 한다. 토머스 페인, 니콜라 드 콩도르세 같은 계몽주의자를 거쳐 20세기에는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밀턴 프리드먼 등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다. 이들은 시장경제의 붕괴를 막기 위해 사회적 약자에게 최소한의 안전망을 제공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21세기 들어 논의에 불을 붙인 사람은 독일 자산가인 괴츠 베르너였다. 그는 2005년 각종 연금, 사회보조금 등 복지시책을 기본소득으로 대체하고 세금은 부가가치세로 단일화하자고 주장했다. 이것이 현재 선진국에서 논의되는 기본소득제의 특징이다. 즉 비효율적인 기존 복지정책을 통폐합해 행정절차에 드는 인력.비용을 감축하는 것이 원칙이다.

 

북유럽 핀란드가 국가 단위로는 유럽 최초로 올해부터 ‘기본소득제’ 실험을 시작했다.국민들에게 먹고사는 걱정만큼은 없도록 해보자는 취지다. 최고의 복지시스템을 갖추고도 부족함을 메우려는 시도여서 이목이 집중된다. 벌써 많은 논란이 있지만, 이 나라 정권 담당자들의 노력만큼은 평가할 만하다.핀란드는 2차대전 직후 스웨덴으로부터 복지국가형 사회보장제도를 도입했다. 이어 1960년대 중도·좌파정권이 집권하면서 경제성장에 따라 그 제도를 발전시켜 왔다. 이 나라의 복지 지표는 명확하다. ‘법률에 규정된 조세를 재원으로, 저소득층뿐 아니라 전 국민을 대상으로, 동등하게 높은 수준의 사회보장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한 재원은 40~50%에 이르는 높은 국민담세율이 뒷받침한다. 우리의 2배다.

 

핀란드가 실험에 들어간 새 복지체계는 국민 모두에게 기본소득을 보장해 ‘생계노동은 그만하도록 해보자’는 데 목표점이 있다. 이른바 ‘노동해방 세상’을 실험하는 것이다. 우선 일부만 대상으로 시작했다. 지난 1일부터 복지수당을 받는 생산가능인구 중 2000명을 무작위로 선발해 기본소득 월 560유로, 우리돈 약 70만원을 매달 지급한다. 이 실험을 통해 정부는 기본소득을 받은 대상자들의 반응을 관찰하게 된다. 기본소득을 믿고 대담하게 다른 일자리를 시도하게 될지, 아니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체 더 게을러질지다. 정부는 전자에 더 기대를 건다. 그렇게만 된다면 더 많은 국민을 대상으로 수혜대상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이 제도가 경기상승의 마중물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기본소득 수급자들은 이 돈을 마음대로 쓸 수 있으며, 어떤 용도로 썼는지 당국에 보고할 의무가 없다. 대신 기존에 받고 있던 다양한 형태의 현금성 사회복지 혜택은 기본소득 수급액만큼 공제된다. 핀란드 정부는 이번 실험을 통해 보편적 복지제도인 기본소득이 빈곤 감소와 고용 창출 효과를 낼 수 있을지 면밀히 관찰하고, 성과가 확인되면 소상공업자와 시간제 노동자 등 다른 저소득층으로도 확대한다는 복안이다.

 

그러나 아직은 비관적 시각이 많다. ‘노동 없이 돈을 주면 사람들이 일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소위 회의론적 인간관이다. 국가가 삶을 책임져주는데 굳이 고통스럽게 일하려 하는 사람이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세금 낼 국민은 줄게 되고 재원조달을 못해 높은 수준의 복지는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수 있다.착취와 불평등, 복지와 무임승차 논쟁을 넘어 사회경제적 구조와 게임의 룰을 뒤바꿀 거대한 실험이 준비되고 있다. 핀란드의 기본소득제 실험에 주목한다.이로 인해 그 실험결과가 전세계 기본소득제의 방향에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