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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두장군’ 전봉준과 ‘사이다 시장’ 이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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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두장군’ 전봉준과 ‘사이다 시장’ 이재명
  • 경기도 취재본부장
  • 승인 2017.01.22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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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고 있는 전국적인 200여만 촛불은 동학혁명과 거의 같다.


‘난세영웅(亂世英雄)’이라 했던가. 1894년은 탐관오리의 가렴주구에 항거하기 위해 동학농민운동을 이끌었던 녹두장군 전봉준이 있었다면 2017년은 부정부패한 기득권의 척결하자고 외치는 변방의 사또 이재명이 있다.  

필자는 사이다 이재명 성남시장과 동학혁명의 지도자 녹두장군 전봉준을 비교해보고자 한다.


이는 유력한 대선후보에 대해 좀 더 분석하고자 하는 의미도 있거니와 과거 유사한 사회적배경의 역사적 인물을 재조명해 봄으로써 국민이 지금 우리시대가 필요로 하는 인물을 선택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자하는 바람에서다.


전봉준과 이재명은 가난한 농민이 아들, 먹고 살기 위해 했던 노동, 부정부패한 기득권 및 외세에 대한 저항, 왜소한 체격에서 나오는 거침없는 웅변, 국민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위한 민중으로부터 시작된 상향식 개혁방식 등이 닮았다.


두 사람 모두 집안이 가난했으며 신체적 결함을 갖고 있다. 1964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난 이재명은 집안이 어려워 중·고등학교를 다니지 못했다.


성남으로 이주해 상대원시장 뒷골목 반지하 단칸방에서 생활하면서 5년 동안 공단에서 노동자로 일하면서 산업재해로 인해 장애인 6급 판정을 받았다.


1855년 전북 고창에서 태어난 전봉준은 집안이 가난해 안정된 생업이 없이 약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기도 했으며, 좀 더 성장해서는 세 마지기의 전답을 경작하는 소작농 일을 했다.


어려운 가정형편에 몸이 너무 왜소했기에 흔히 ‘녹두(綠豆)’라 불렸고, 뒷날 ‘녹두장군’이란 별명이 생겼다.


이재명과 전봉준은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배움을 중요시했다. 이재명은 고입과 대입검정고시를 거쳐 중앙대학교 법학과에 장학생으로 입학했는데, 졸업과 동시에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전봉준은 힘든 농사일을 하면서도 동네 어린이들에 글을 가르쳐 주는 훈장 일로 생계를 보태기도 했다고 한다.


이재명과 전봉준은 민의를 대변했다. 부정부패한 정부와 기득권층을 향해 내뿜는 그의 거침없는 비판의 목소리는 대중의 가슴속을 파고들었다.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처음으로 외쳤던 것도 그였다. 그래서 별명이 '사이다 시장'이라고 불리고 있다. 속을 시원하게 뚫어준다는 뜻이다. 속 시원한 정부비판이 지지자들을 결집시켰고 가파른 지지율로 반영됐다.


비록 왜소했지만 전봉준 또한 강렬한 웅변가였다. 1894년 전라도 정읍 말목장터에서 수천명을 헤아리는 군중들 앞에 서서 고부군수 조병갑의 횡포를 낱낱이 고발하고, 동학농민군을 이끌고 봉기했다. 5척 단신 이었지만, 담력은 산같이 컸고, 눈은 샛별같이 빛났다던 전봉준이다.


이재명과 전봉준은 민중을 위한 새로운 세상을 꿈꿨다. 이재명은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다가 성남시립의료원 건립운동을 계기로 현실의 벽을 깨닫고 정치에 뛰어 들었다.


이재명은 2010년 지방선거에서 성남시장에 당선되고 재선에도 성공해, 3대 무상복지 등 과감하고 차별화정책을 펴면서 ‘스타시장’으로 떠올라 변병의 사또에서 지금은 대선주자로 거명되고 있다.


전봉준은 1890년(고종 27)경인 35세 전후에 동학에 입교, 그 뒤 얼마 안 돼 동학의 제2세 교주 최시형으로부터 고부지방의 동학접주로 임명됐다.


동학에 입교하게 된 동기는 보국안민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동학을 사회개혁의 지도원리로 인식하고 농민의 입장에서 동학교도와 농민을 결합시킴으로써 농민운동을 지도해 나갔다. 전봉준과 이재명은 부패한 기득권과 외세에 저항했다.


이재명은 비선실세 최순실의 국정농단을 야기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기득권과 대기업해체·친일파청산 등 대한민국의 적폐를 청산하고 공정한기회가 부여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혁명적인 개혁이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전봉준은 1894년 고부군수 조병갑의 탐학에 항거, 동학농민군을 이끌고 봉기해 동학농민운동의 지도자로서 부패한 관리를 처단하고 시정개혁을 도모했다.


전라도 지방에 집강소를 설치해 동학의 조직 강화에 힘썼으며 청일전쟁의 우세를 이용한 일본의 침략행위에 저항해 대일본전을 펼쳤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이재명과 전봉준은 여러 면에서 매우 흡사하다.


다만 전봉준의 개혁은 미완으로 끝났지만, 이재명은 개혁의 출발점에 서있다는 것이 다르다. 영웅은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백성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고 행동한다고 했었던가.


이재명은 지금이야말로 1894년 전봉준 장군으로부터 시작된 혁명을 완성할 때라고 말한다. 아직도 끝나지 않는 부패한 권력을 이제는 국민의 힘으로 끝내야 할 때라고 말한다.


동학농민혁명유족회 한 간부는 사견임을 전제 “난세에 전봉준 장군 같은 영웅이 나오는 법”이라며 “이재명 시장을 보면 녹두장군과 닮은꼴이 많아 좋아하기 시작했다”고 소신을 밝혔다.


필자는 진정한 국민이 주인인 나라, 민중이 행복한 나라 민주공화국을 함께 만들겠다는 국민의 의지가 모아지고, 용감한 지도자가 있다면 우리가 바라는 대한민국 개혁의 물꼬는 반드시 터질 수 있을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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