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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은 어떻게 파산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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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은 어떻게 파산하는가
  • 최재혁 지방부 부국장 정선담당
  • 승인 2017.12.21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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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지난 일 년 동안 열심히 살아왔다 해도, 한해의 마지막달이 되면 그냥 쓸쓸하고 가슴 아픈 추억이 마음을 시리게 한다. 시간이 지나 세월이 흐르다 보면 그 자국조차 어렴풋해지는 것이지만 12월에 와서야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면 초라하다 못해 측은하게 느껴지는 건 무엇 때문일까? 결국 옳다고 생각했던 삶의 방식이 잘못된 것이었으며, 옳은 것이었다 할지언정 꿈으로만 생각했었지 그 꿈들을 실행에 옮기려 하지도 않고 짐작하였던 것과 전혀 다른 일에 시간을 헛되게 보냈는지도 모른다.

 

12월 들어 내년도 달력이 어김없이 배달됐다. 또 한해를 보내며 만감이 교차한다. 바쁘게 살아온 나날들에 대한 아쉬움 또한 적지 않다. 옆도 뒤도 봐야 하는데, 그저 앞만 보고 달려온 것 같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처럼 오늘도 뛴다. 하지만 제자리다. “왜 달려가는데 그 자리냐”고 물으면, “여기선 뛰는 것이 곧 걷는 것이다”고 한다.

 

농경사회 3000년간 변화를, 산업사회는 300년, 정화사회는 30년, 후기정보화사회는 3년으로 단축했다고 하니 ‘천년이 하루같다’는 말이 실감난다. 남보다 먼저, 빨리빨리 해야 살아남는 경쟁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파도에 표류하는 것처럼 목표를 잃고 허둥지둥 세월을 보내지는 않은지. 역주행하는 기관차는 위험하며, 좌표를 잃은 삶은 피곤하기만 하다. 책상위 수북이 쌓인 명함을 본다. 수백장의 명함을 제대로 들여다 보기나 했는지, 명함을 하나 하나 정리해보면 진실한 관계는 3명도 채 남지 않는다는 보도가 기억난다.

 

좁은 국토에 사람이 많다보니 일만 잘해서도 안되고 원만한 인간관계도 요구된다. 미국은 5명을 건너면 대통령과 연결되는데, 한국은 3명만 연결하면 윗선에 닿는다는 통계도 있다.
 
화려했던 한 시절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었다. 그렇기에 떨어지는 꽃잎 밑에 움트는 신록(新綠)이주는 여정(旅程)을 보라. 그것을 발견하는 자만이 인생의 행복이 무엇인지 체험 할 수 있으리라.
 
권불십년 화무십일홍(權不十年 花無十日紅)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권력은 십년을 가지 못하고, 아무리 붉고 탐스러운 꽃이라도 열흘을 넘기기 어렵다는 말이다. 이는 권력무상의 허망함을 빗댄 말이다.그 욕심이 결국 ‘화(禍)’를 부르고 말았다.

 

동서고금을 통해 수없이 많은 권력자들이 이 말 앞에 자유롭지 못했다. 대한민국 역시 새 정권이 들어서고, 권력 지형도가 바뀔 때마다 유행처럼 이 말이 회자됐다.
 
“(나는 재산을)물려 줄 자식도 없다. 오로지 국민만을 섬기겠다.”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끝없는 욕망에 사로잡힌 최순실과 공범으로 전락하면서 철창신세를 지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主文)을 선고합니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지난 3월 10일 헌법재판소 이정미 재판관은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적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고 본다.”며 박근혜 전 대통령을 파면했다.

 

기원전 3세기 중국 진나라의 환관 노애를 비롯해 100년 전 제정러시아의 그리고리 예피모비치 라스푸틴, 그리고 조선시대의 정난정과 진령군 등이 떠오른다. 권불십년 화무십일홍(權不十年 花無十日紅), 10년 가는 권세 없고 열흘 붉은 꽃이 없다는 진리도 더불어 생각하게 된다.

 

지난해 10월 29일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촉발된 제1차 촛불집회 이후 11월 3일 최순실 구속, 12월 9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국회 가결, 올 1월 21일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구속, 2월 17일 뇌물공여·청탁·위증 등의 혐의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속, 3월 31일 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격동의 세월을 보냈다.

 

그리고 지난 5월 9일 제19대 대선에서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사회 곳곳에서 썩고 부패한 농액(膿液)을 걷어내기 위한 적폐 청산 작업이 한창이다. 그러나 누가 뭐라 해도 적폐 청산의 화두는 ‘공정성과 정상화’로 압축된다. 그만큼 우리 사회는 지금까지 불공정이 판쳤고, 비정형적인 사람과 비정상적인 일들이 나라를 망쳐왔다.

 

박근혜 정부에서 호가호위했던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안종범 전 수석을 비롯해 정호성·안봉근·이재만 등 문고리 3인방, 남재준·이병기 전 국정원장과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 최순실과 함께 국정농단의 중심 또는 언저리에 있던 김종, 차은택, 고영태, 송성각, 장시호 등 영어(囹圄)의 몸이 된 이들을 보면 ‘권불십년 화무십일홍(權不十年 花無十日紅)’의 의미를 새삼 깨닫게 된다.

 

한 때 세상을 좌지우지했던 친박의 거대 계파는 구심력을 잃은 채 가치나 명분보다는 박 전 대통령 한 사람을 향한 조직이었다. 친박계는 오직 권력의지로서 버텨왔다. 친박계 핵심인사는 ‘차 떼이고, 포 떼이고’, 수뇌부마저 완전히 붕괴된 상황에서 훗날을 도모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크고 작은 부침에도 오뚝이처럼 일어났던 친박계는 박 전 대통령의 탄핵-구속-퇴출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보수 세력 참패 원죄를 안고 있는데다 몰락이라는 초대형 쓰나미를 몰고 온 결과를 놓고 보면 혁신 재건축 리모델링으로 친박계 몰락은 만시지탄(晩時之歎)이다. 사실상 친박계는 몰락의 종말이다.

 

앞으로도 최경환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우병우 전 민정수석 등 여러 명이 검찰의 칼날 앞에서 위태롭게 췄던 칼춤의 단죄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이다. 비록 만시지탄이긴 하지만 사회 곳곳에 만연한 비뚤어진 적폐를 고치려는 그러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나마 다행이다.

 

시계는 거꾸로 놓아도 시간은 가는 법이고, 역사는 오늘을 기록할 것이다. 흔히 뉘우침이 없는 역사는 비극을 반복하고, 청산 없는 역사는 미래를 지워버린다는 말이 있다. 따라서 2018년 무술년(戊戌年)은 콩과 보리도 분간 못하는 숙맥불변(菽麥不辨)의 위선이 진실을 가리지 않는 한 해가 되길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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