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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우리 민족의 연상어는 ‘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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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우리 민족의 연상어는 ‘아리랑’
  • 최재혁 지방부 부국장 정선담당
  • 승인 2018.01.04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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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다. 게다가 세계무형유산으로 지정되었으니 한국하면 아리랑이고 아리랑하면 한국을 기억하게 됐다. 이별의 한으로 불린 애가이지만 가락 속에는 상심을 삭이는 흥겨움도 있다. 슬플 때나 기쁠 때나 어느 곳에서나 즐겨 부르던 아리랑이다.
 
‘아리랑’은 한민족의 역사와 같이 한 노래로써 수천 년의 역사와 함께 고려 말 절개를 지킨 두문동의 충신들 중 일부가 정선에 가서 전해졌다고 하는 정선아리랑과 갑오혁명의 아리랑, 일제 강점기와 구한말(舊韓末) 항일독립운동 때의 아리랑 등 전국 곳곳에 수없이 많은 아리랑의 흔적들이 한민족의 역사를 전해주고 있다
 
강원도 정선 아리랑학교 추억박물관에는 전쟁과 관련한 귀중한 아리랑 자료들이 소장되어 있다. 미군들이 참전 기념으로 박은 포스터에도 아리랑이 소개됐다.아리수의 상류에서 불린 노래가 가장 슬프게 와 닿는 정선아리랑이다.
 
그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아리랑 중에 하나인 ‘정선아리랑’은 6·25전쟁을 통해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당시 육군의 위문공연에 우리의 민요 정선아리랑’과 ‘한오백년’이 김옥심과 김란홍 등 인기 가수들에 의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특히 김옥심이 정선 엮음 아라리를 자기 소리에 맞게 바꿔 부른 ‘정선아리랑’은 - ‘정선아리랑’은 옛날부터 정선 지역에서 불리던 토속민요(土俗民謠)와 서울 지역에서 불리던 통속민요(通俗民謠)가 다르게 전해진다. 김옥심이 부른 정선아리랑은 정선 지역에서 전해지는 아라리(강원도 지역에서 불리는 향토민요)와는 다른 당시 시대에 맞게 편곡되어진 곡조이다.- 식민지시대의 암담한 삶과 광복 이후 전쟁에 시달린 우리 민족의 울분과 한이 이입되어 설움과 한을 쓸어내리는 카타르시스 작용을 해 급속도로 대중 속으로 파고들며 전쟁 이후 가장 인기를 끈 민요가 되었다.
 
아리랑은 오랜 시대를 겪으면서 지역에 따라 가사가 다르게 불리거나 숱한 사연들을 포용해왔다. 일제강점기에는 독립군가로, 망향의 노래로 애창되었다.독립군들은 이역만리 만주에서 일본군에게 포로가 되어 죽는 순간까지 아리랑을 힘차게 불렀다고 한다. 민족정신을 일깨웠던 항일의 노래이며 반전의 외침이었다.
 
한민족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연상되는 단어는 무엇일까? 아마도 ‘아리랑’이라고 할 이들이 많을 것 같다. 어머니라는 단어를 보면서 사랑을 연상 이미지로 떠올리듯 ‘우리 민족’의 연상어는 ‘아리랑’이라고 하면 착각인가. 지난 2012년 아리랑이 한국의 대표적인 민요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으니 대표 연상어로 손색이 없다 할 것이다.
 
아리랑의 어원을 두고 여러 설들이 있다. 고려 말 ‘유신들의 망국의 한’에서 찾거나 경복궁 복원 당시 민초들의 고통을 담아낸 데서 비롯됐다는 얘기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아리랑을 ‘참된 나를 찾는 즐거움(我理朗)’이라고 해석한 대목에 눈이 간다. ‘나(我)와 통하는(理) 것을 찾는 과정의 즐거움(朗)’이라는 뜻으로 해석한 게 그럴듯하다. 이런 주장을 하는 이들은 아리랑 가사 중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는 대목은 자신을 찾는 공부를 등한히 하면 삶이 제대로 풀리지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아리랑의 어원이 궁금하기는 하지만 그게 핵심 가치는 아니다. 어원이 무엇이든 아리랑의 가치는 우리가 공동체임을 각인시킨다는 데 있다. 우리라는 공동체가 공감하는 그 무엇인가가 아리랑에 담겨 있다.
 
전국에 많고 많은 아리랑이 있다. 그 수가 아무리 많아도 모든 아리랑은 개인과 공동체의 정서를 아우른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한민족이라면 누구나 유사하게 느끼는 희로애락의 정서를 가락에 싣되 가사는 지극히 개인적인 에피스드로 풀어낸다는 게 공통점이다. 아리랑이 오랫동안 한민족의 연상점에 서 있을 수 있었던 것은 이런 개인과 단체의 희로애락을 한데 어우르고 조화시켰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리랑에 대한 노랫말을 살펴보면 아리랑이 근대에 발생한 민요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리랑의 역사가 그렇게 길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아리랑이 한국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음악학자 이보형에 따르면 아리랑은 강원도 지방의 아라리계통 향토민요가 경기지방으로 전파되어 경기아리랑이 발생했고, 경기아리랑에서 밀양아리랑과 진도아리랑이 파생했다고 보았다. 진도아리랑의 형성과 음악적 배경에 대한 논문을 쓴 김혜정은 진도아리랑이 신민요임에도 불구하고 향토민요로 쉽게 정착할 수 있었던 것은 진도아리랑의 바탕에 산아지타령과 같은 향토민요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근대민요 아리랑이 비록 강원도 지방의 노래에서 비롯되었지만, 아리랑이 향토민요로 정착한 것은 아리랑 이전의 향토민요가 있었던 덕분이라는 지적은 대단히 중요하다. 아리랑이 지방의 노래에서 민족의 노래로 바뀔 수 있었던 것은 아리랑 이전의 향토민요가 존재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진도아리랑뿐만 아니라 강원도아라리도 그 이전 향토민요의 존재에 대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강원도아라리가 경기아리랑으로 변화하는 과정은 '아라리'라는 여음에서 비롯된 아리랑이 '아리랑고개'라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 말로 변화하는 과정과 일치한다. 이것은 아리랑의 어원을 찾는 작업으로 이어지는데, 아리랑 연구가인 김연갑에 따르면 아리랑의 어원설은 '아리다'설, '아리령'(빛고개)설, '알영'설, '아랑'설 등 18가지나 된다고 한다. 이런 다양한 어원설은 아리랑 노랫말이 지닌 다양성 내지 풍요로움과 결부되어 있기 때문에 정서론 내지 주제론적인 타당성을 지니고 있다고 보기도 한다.

독립운동가 김산은 아리랑에 대해 '패배하지 않는 죽음의 노래'라고 본 바 있다. 김산의 아리랑 해석은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노래가 지닌 심층적 의미를 가장 잘 포착한 것이라 생각된다. 죽음을 노래하는 향가 가운데 찬기파랑사뇌가에는 사계절 시들지 않는 '잣나무'가 나오고, 제망매가에는 극락세계인 '미타찰'이 나오는데, 이들은 모두 죽음을 초월한 영원한 생명을 상징한다. 죽음을 초월하고자 하는 신라인의 심성이 김산의 아리랑정신에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 민족은 장례나 제사를 지낼 때 무덤 앞에서 진혼 살풀이춤을 추었는데, 이때 탄식하는 사뇌창법의 향가(만가, 상여소리)를 부르기도 했다. 신라 유리왕 때 살풀이나 사뇌창법의 노래는 궁정악이 되어 도솔가(국가의 정사를 다루는 관청인 도당에서 베풀어진 살풀이), 신열악(身熱樂) 등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진성여왕 때 사뇌창법의 노래를 집대성한 책이 '삼대목(三代目)', 즉 시나위목이라고 필자는 보고 있다.
 
사뇌가(詞腦歌)는 비슷한 음의 '思內樂' '詩腦樂' '辛熱樂' '散花歌'로도 표기되었는데, 이 '散花歌'가 '山花歌'로 인식되면서 '山有花歌'와 메나리(山有花를 우리말로 바꾼)라는 말이 나오게 된다. 강원도아라리와 밀양아리랑은 메나리조, 진도아리랑은 육자배기조(시나위목)로 부르기 때문에 서로 다른 음악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메나리조나 시나위조는 모두 향가의 사뇌가에서 나온 말이므로 사실은 같은 계면조 음악이다. 진도아리랑의 바탕이 된 산아지타령의 '산아지'도 사뇌조가 변한 말이라 생각된다.

구슬프면서 아름다운 아리랑의 선율은 변화 과정에서 밀양아리랑과 같은 씩씩한 노래로 바뀌기도 한다. 밀양아리랑은 독립군아리랑으로 불리기도 했고, 중공군의 군가인 파르티잔아리랑은 밀양아리랑을 개사해서 불렀다고 한다.

지금 우리는 또 다른 고난의 시대를 맞고 있다. 그간 성장의 원동력이었던 수출이 하락세로 돌아서는데 이를 대신할 미래의 성장동력은 아직 가시화되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저출산 고령화로 경제인구가 급감하고, 사회가 양극화되는 현상은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로 부각되고 있다. 여기에 안개 속 같이 뿌연 정치적 상황이 겹쳐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난국이 있을 때마다 온 국민이 단합된 힘을 모아 슬기롭게 헤쳐 온 저력을 가지고 있다.

아리랑은 다양한 가락과 가사로 일상생활에서의 애환을 그리며 전승되어온 전통 민요이다. 체념의 하소연과 강한 삶의 의지가 표명된 노래라고도 한다.수천년 동안 민족의 가슴에 감동적인 노래로 전해 온 것이다.지난 2002년 월드컵 때 윤도현밴드가 로큰롤 스타일로 바꾼 아리랑은 대단히 역동적인 응원가였다. 아리랑의 또 다른 모습이 기대된다. 아리랑에 담긴 노래의 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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