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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과 영감을 주는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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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과 영감을 주는 리더십
  • 박희경 지방부국장 포항담당
  • 승인 2018.03.20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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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경 지방부국장 포항담당

영국의 유명한 수상인 윈스턴 처칠(1874~1969)이 의회에서 연설할 시간에 쫓겨 운전사에게 차를 급히 몰게 했다. 그런데 교통경찰관이 과속으로 달리는 차를 보고 재빨리 차를 세우도록 했다. 면허증 제시를 요구하는 경찰관을 보고 “수상께서 타셨소.”하고 운전사가 말했다. 그러나 경찰관은 “과속은 과속이오, 딱지를 떼겠으니 벌금을 물도록 하시오.”

경찰관은 끄덕도 하지 않자, 수상이 창문을 내리고 “이봐! 내가 누군 줄 알아?” 수상이 언성을 높였다. 그런데 경찰관이 “예, 얼굴은 수상각하와 비슷합니다만, 법을 지키는 것은 비슷하지 않습니다.”며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결국 딱지를 떼고 그 자리를 떠났다. 처칠은 의회 일을 마치고 경시총감을 불렀다.

경시총감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그 경찰관에게 승진시킬 것을 명했다. 그러나 경시총감은 처칠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각하! 과속한차를 적발했다고 특진 시키라는 규정은 없습니다.”고 특진을 거절했다. 지금도 영국에서는 처칠의 일화 중 얘깃거리로 회자되고 있다. 그렇게 법을 존중하는 나라는 역시 신사의 나라고, 아름다운 나라다.

그러나 2차 대전 실록을 보면 히틀러는 처칠과 다른 면모의 지도력을 보였다. 긴 가죽장화를 신은 친위대들의 일사불란한 움직임, 충성스런 히틀러 유겐트(젊은 돌격대), 히틀러는 소련을 침공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유럽을 징벌했을는지 모른다. 영화 속의 한 장면이지만 영국의 처칠은 폭격을 당하는 런던, 전쟁의 폐허에 사람사이를 걸어가는 처칠을 볼 수 있다.

시민들의 손을 맞잡고 환하게 웃는 처칠의 소박한 웃음에서 선동된 카리스마보다 강한 리더십이 나타나고 있었다. 히틀러는 심각한 근시였음에도 안경을 쓰지 않았다. 카리스마를 해친다는 이유에서였다. 1차 대전에서 실패한 독일은 해외의 식민지를 잃고, 프랑스 알사스 로렌지방을 반환해야 했고, 천문학적인 전쟁 배상금을 물어 경제는 파탄 났다.

선정의 귀재 괴벨스는 ‘민중은 선동하는 대로 끌려오는 바보’라고 표현했다. 괴벨스는 선동에 가장 효과적인 야간 횃불시위로 민중을 선동하고, 각종 사이비 시민 연대, 연맹을 동원했고, 사이비 언론들을 만들어 의회를 장악하여 히틀러를 총통으로 세우고, 독일 국민의 90% 지지를 끌어낸 선전장관이 되어 위세를 떨친다.

히틀러는 완전무결하게 보이도록 초인적인 이미지를 교묘하게 가꾸었고, 그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국민에게 과대망상을 갖도록 세뇌시키는데 성공하여 독일 국민을 전쟁터로 몰아내어 수많은 국민을 죽게 하였다. 국민의 일관된 지지의 통일을 위해서 증오심을 불러일으키고 유태인을 표적으로 하여 수많은 인명을 학살했다.

경영학의 대부인 미래학자 피터 트리커는 ‘리더십과 카리스마는 상관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참된 리더십은 카리스마를 가지고 민중을 선동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지만, 지금도 3대 김씨 세습체제의 북한 정권은 그 특유의 카리스마로 300만 이상의 북한 주민을 굶겨죽이고도 유일한 지도자로 군림하고 있다.

동 시대를 살았던 처칠과 히틀러는 상당히 달랐다. 처칠은 히틀러와는 달리 서민과 어울려 자연스럽

게 악수를 하고, 공개적인 자리에서 여러 차례 눈물을 보일 정도의 인간미가 있었고, 히틀러는 그렇지 못했다. 연출되고 조작된 카리스마는 없는 것만 못한 것이다. 히틀러는 자신에게 충성하는 사람에게 놀랄 만큼 관용을 베풀었다.

히틀러에게는 관료로서 전문성이나 도덕성보다는 자기와 코드가 맞느냐는 패거리에 대한 충성심을 중요시 했다. 자연히 아부는 있을지언정 충고는 없었다. 처칠은 자기가 임명한 사람이 기대에 충족하지 못하면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가차 없이 교체를 했다. 개인적으로 코드가 맞느냐 아니냐보다 국가와 정부를 우선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5년 단임의 대통령제 하에서는 처칠보다는 히틀러와 같이 코드가 맞느냐에 중점을 두었기에 인사실패가 뒤따랐던 것을 아닐까. 자기 나라를 망친 히틀러의 패거리 정치보다 처칠의 정직과 영감을 주는 리더십이 얼마나 더 훌륭한가를 말해주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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