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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개헌, 국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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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개헌, 국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 최재혁 지방부 부국장 정선담당
  • 승인 2018.03.22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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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가 주요 현안을 놓고 첨예하게 맞붙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때마다 어느 일방의 완승으로 끝난 적은 거의 없다. 이상한 일이지만 우리 정치권의 현실이다. 결론이 나기까지 지루한 싸움이 계속된 탓에 합의가 이뤄지더라도 승자와 패자를 명확히 구별하기 힘들다. 이겼다고 주장하는 쪽은 많은 상처를 입게 마련이고, 졌다고 여겨지는 쪽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기 일쑤다. 합의됐다는 걸 뜯어보면 누더기로 변한 경우가 다반사다. 여야가 이견차를 좁히지 못해 폐기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논리적·합리적으로 현안을 다루는 게 아니라 자기 당의 이해관계를 최우선시하며 이전투구에 나선 데서 비롯된 우울한 형상이다. 안타깝게도, 시대적 과제인 헌법 개정 문제도 이런 흐름을 타버렸다.

개헌이 갖는 의미는 매우 크다. 정보화, 인공지능(AI), 4차 산업혁명, 블록체인 등 사회는 급변하고 있다. 그러나 헌법은 1987년 ‘1노 2김’에 의해 정략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전혀 어울리지도, 맞지도 않는 낡은 옷을 입고 있는 셈이다. 높아진 국가 위상과 국민들의 눈높이, 달라진 시대 환경에 맞춰 개헌을 통해 국가시스템을 바꿀 때가 됐다. 비생산적인 정치의 틀 역시 손봐야 한다. 특히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가 심하다. 최근 이명박 전 대통령이 검찰 조사를 받음으로써 전직 대통령 가운데 성한 대통령이 한 명도 없는 불행한 헌정사를 갖게 됐다. 대통령 권한을 대폭 줄이고, 대통령이 권력을 남용하지 못하도록 확고한 견제 장치를 마련해 승자독식 구조에 일대 변화를 줘야 한다. 임기 초반의 제왕적 대통령에서 임기 중후반 레임덕 대통령으로 추락하는 악순환도 막아야 한다. 그 피해가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전가되고 있지 않은가. 여론이 개헌에 호의적이고, 지난 대선 때 여야 후보들이 이구동성으로 개헌을 약속한 까닭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요즘도 집권세력과 야당 모두 개헌의 필요성과 당위성은 인정한다. 그러나 엇박자의 연속이다. 왜 이럴까. 정파의 이익을 우선시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맛집으로 소문이 난 음식점의 공통적인 특징은 줄을 서서 기다리는 손님들이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장시간 식당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 불편을 마다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만큼 맛집의 음식이 뭇 사람들의 기호를 사로잡을 만큼 특별하다는 것이다. 그저 끼니를 잇기 위해서 아무거나 먹던 시대에서 일일이 `맛`과 `영양`을 견주어볼 정도로 품질을 중히 여기는 소비시대가 깊어졌다.

국민들의 첨예한 관심사인 `개헌`을 놓고 여야 정당들의 지향점 차츰 드러나고 있다. 정부의 개헌안을 준비해온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자문특위)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정부의 개헌안 자문안을 보고했다. 이어서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의 개헌안 핵심이 나오면서 청와대와 한국당 간 `개헌 주도권` 싸움에 불이 붙었다. 6월 개헌투표냐 아니냐에 대한 논란에 더해 내용에 대한 갑론을박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셈이다.

자문특위가 보고한 개헌안 자문안은 헌법전문에 5·18, 부마항쟁, 6·10 등을 명기하도록 하고 있다. 최고 권력기관인 대통령은 임기4년 연임제로 모아졌다. 대통령선거에서 결선투표제를 도입하는 한편, 국회의원 소환제 등 직접민주주의를 한층 강화키로 했다. 총리 선출방식은 현행 유지(대통령 지명 후 국회 동의)안과 국회에 추천권을 넘기는 안(국회 추천 후 대통령 임명) 두 가지를 복수안으로 제시했다. 자유한국당은 정부형태로 국회가 추천하는 책임 총리제를 기반으로 한 분권형 대통령제를 내세웠다. 대통령은 국가원수로서 통일·외교·국방 등 외치를 담당하고, 국정운영 등 내치는 총리에게 맡기자고 주장한다. 한 마디로 대통령의 권한을 국무총리에게 대폭 나누고, 총리 선출권을 국회가 갖는 방식으로 과다한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하자는 의미다.

개헌과 관련한 여야 정치권의 논쟁에서 `시기`의 문제에서는 야당인 자유한국당의 입지가 좁다. 지난해 5월 대선에서 대통령후보들이 이구동성으로 올 6월 지방선거와 개헌투표를 동시에 실시하자는 약속을 했었기 때문이다. 한국당은 말을 싹 바꿔 지방선거 개헌 찬반 투표를 `곁다리 투표`라며 반대하고 있다. 국민들은 이미 개헌 국민투표 동시실시가 한국당에 불리할 것이라는 셈법에서 기인한다는 사실을 다 꿰고 있다.

하지만 `내용`에 관해서라면 상황이 다르다. 정부여당이 내놓은 개헌안의 설계방향을 보면 야당일 때의 주장에서 달라진 부분이 상당히 읽힌다. 그들이 야당일 적에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을 종식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늘 앞세웠는데, 이제 그 표현이 사라지고 있다.

지지난해부터 불거진 박근혜 대통령의 실정(失政) 논란에서 시작된 `제왕적 대통령 권한` 분산 캐치프레이즈는 이제 야당 손으로 넘어온 셈이다. 권력의 칼자루를 누가 소유했느냐에 따라서 `개헌` 입장이 정반대로 바뀌는 현상은 아직도 우리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천박한지를 드러내는 부끄러운 현상이다.

이제 숨겨둔 개헌안 `패`를 다 내보여야 할 시점이다.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누가 진짜 국가와 국민을 진정으로 위하는 개헌안을 준비해왔는지를 다 밝혀야 할 시간이다. 맛을 보고 평가하고, 줄을 서는 일은 국민들의 몫이다. 허위 과장광고를 일삼아온 게 그 동안 정치권의 일그러진 모습이긴 하지만, 이번엘랑 결코 속일 생각을 말아야 한다. 국민들의 입맛은 훨씬 더 업그레이드되고 까다로워졌다.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포인트 하나는 `지방분권 개헌`의 잣대다. 어느 정치세력이 어떤 방식으로 지방분권 의지를 개헌안에 오롯이 담아내느냐 하는 것도 중요한 판정 포인트가 될 것이다. 지방분권 개헌에 대해 이상한 소리를 해온 자유한국당 못지않게 정부여당의 개헌 골격도 미흡하기 짝이 없다. 지방의 민심을 홀려 표나 훔칠 흑심에 사탕발림으로 내놓는 분권개헌안으로는 어림없을 것이다. 이제 온 국민을 감동시킬 개헌 맛집을 찾아내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현 정부가 진정으로 개헌하기를 바라고, 나아가 그 개헌이 좋은 내용으로 구성되기를 바란다면 이탈리아의 정치이론가 조반니 사르토리가 헌법 설계에서 가장 중요한 원리로 제시한 ‘실체적 내용에 대한 중립성’(content neutral)이라는 말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그의 말대로 헌법은 공동체가 나아갈 방향을 창출하는 방법을 확립하는 것이지 방향 그 자체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보수-진보 간 또는 경쟁하는 사회 세력 간 힘의 균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이념 갈등을 불러오거나 특수 이익이나 특정 집단의 요구를 반영하는 사안들이 헌법 개정으로 들어오지 않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건국과 관련되거나 민주화운동과 관련된 역사적 사건들을 새롭게 헌법 전문에 포함시키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다. 경제 운영에서 특정의 사회경제적 이념이나 내용을 헌법 안으로 불러들이는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문재인 정부가 진정으로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의미 있고 좋은 개헌을 하려 한다면, 지금이라도 청와대가 주도하는 개헌을 그만두어야 한다. 그 역할은 국회로 이관되어 여야 정당들이 의제를 선정하고 심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개헌 논의에서 가장 중심적이어야 할 정부 형태와 선거제도를 둘러싼 논의를 지금부터라도 시작하기를 바란다.개헌은 통합과 조화를 위한 일이지 분열과 제압을 위한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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