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매일신문
지면보기
 표지이미지
지방시대
지면보기
 표지이미지
[세상읽기 89] 정의의 여신상이 뜬 눈을 감고 싶다
상태바
[세상읽기 89] 정의의 여신상이 뜬 눈을 감고 싶다
  •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 승인 2018.08.15 11: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길원 大記者 세상읽기]

-법이 ‘무전유죄, 유전무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권력의 하수인을 자처한 작금의 현실은 법의 존재가치에 대한 근본적 의문이 될 수밖에 없다. -

 

전임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사법부와 청와대의 재판 거래의혹이 점차 실체를 드러내면서 ‘법’에 대한 근본적 회의가 다시 확산되고 있다. 법은 무엇이며 왜 필요하는가 하는데 대한 불신이다.
 
‘법’은 무엇일까. 이를 가장 잘 설명하고 있는 것이 ‘정의의 여신상’이다. 세계 어디에서나 법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우리나라 대법원 중앙현관에도 정의의 여신상이 있다. 법이야 말로 정의구현의 수단이자 최후 보루이기 때문이다.
 
서구 유럽등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정의의 여신상은 두 눈을 헝겊으로 가린 채 한 손엔 천평저울을 들고 다른 손엔 칼을 들고 있다.

정의의 여신상이 두 눈을 가리고 있는 것은 당사자의 신분이나 지위고하를 가리지 않고 공정한 재판을 하겠다는 의미다. 말 그대로 법 앞의 평등이다. 또 한 손에 칼을 든 것은 법을 엄격하게 집행하여 불의를 내치겠다는 것이고, 천평을 든 것은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겠다는 형평성을 상징한다. 그리스의 신화에 나오는 정의의 여신 디케(Dike)에서 기원한다.
 
우리나라의 정의의 여신상은 서양의 여신상을 한국화 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정의의 여신은 서양의 여신과 달리 두 눈을 뜨고 칼 대신 책을 들고 있다. 책은 아마도 법전일 것이다.
 
우리나라 정의의 여신은 ‘왜 눈을 뜨고 있을까?’ 그 물음에 대한 세상의 비아냥 섞인 답이 오늘의 대한민국 법원이 처한 현실이다.

‘판사들은 눈을 떠서 당사자의 사정을 세세하고 살피고 저울에 달아서 공정하고 형평성 있는 판단을 해보다가 그래도 부족하면 책을 펼쳐서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해서 정확한 판결을 내린다고 해석한다. 하지만 국민들은 당사자의 신분과 지위를 확인해서 봐줄 사람인가 아닌가를 식별한 후에 형식적으로 저울에 다는 척을 하다가 손에 든 장부를 보고 나에게 뭘 가져다 줄 사람인지 아닌지를 확인한 다음 심판한다고 해석한다.’ 최강욱 변호사가 자신의 카페에 올린 글이다.
 
최근 드루킹 사건으로 자살한 노회찬의원도 생전에 한 방송에서 정의의 여신상이 눈을 안 가리고 있는데 대해 ‘니 누꼬? 느그 아버지 뭐 하노? 그리고 청와대는 뭐라 카드노? 그러고 있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국민들이 양승태의 사법농단을 보면서 정의의 여신상에 대한 법관들의 이상적 해석이 아니라 최 변호사와 노 의원의 현실적 해석에 공감하고 있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법이 ‘무전유죄, 유전무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권력의 하수인을 자처한 작금의 현실은 법의 존재가치에 대한 근본적 의문이 될 수밖에 없다.

불행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원 행정처의 국민에 대한 시각은 법의 존재가치에 대한 답을 그들에게서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법원 행정처는 상고하는 국민들을 ‘이기적인 존재’로 폄하했다.
 
신체의 자유는 물론 명예와 생명, 재산이 걸린 문제로 상고를 하는 국민들이 이기적인가, 아니면 자신들의 권익확대를 위해 재판결과를 청와대 로비용으로 활용하고 삼권분립을 스스로 포기한 그들이 이기적인가는 비교할 가치조차 없다.

양승태의 대법원은 1심과 2심에서 승소한 KTX 해고 승무원들의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뒤집었고,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이 제기한 소송이 1심에서는 패소했지만 2심에서 승소 판결을 받았는데도 이를 또 뒤집었다. 그런가 하면 과거사 국가 배상이나 전교조 법외노조 효력 정지 등의 재판도 거래하듯 상고법원의 입법을 위한 협상카드로 활용한 정황들이 드러나고 있다.
 
‘사법행정권 남용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은 보고서에서 ‘판결을 거래나 흥정의 수단으로 삼으려고 한 흔적들이 발견되었고... 주권자인 국민이 사법부에 부여한 재판독립, 법관독립이라는 헌법적 장치를 사법부 자신이 부인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스스로 그 존재 근거를 붕괴시킨 것’이라고 명시했다.
 
그들은 이처럼 법을 ‘장사의 수단’으로 이용, 나라의 근간을 무너지게 해 놓고도 ‘사법의 권위’와 ‘사법권 독립’을 운운하는가 하면 양승태는 “대법원 재판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 나라가 무너진다”며 자신을 가리켜야 할 손가락을 국민들에게 향했다.

‘범죄보다 더 범죄적인 판결을 나는 얼마나 많이 보았던가’ 16세기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사상가이며 그 자신이 법관이었던 몽테뉴가 했던 말이다.
 
대법원 청사에 있는 정의의 여신상이 법복을 보면서 뜬 눈을 감고 싶은 요즘이다. 

 

[전국매일신문]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sgw@jeonmae.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