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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93] 전두환의 꽃 같은 시절은 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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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93] 전두환의 꽃 같은 시절은 언제인가
  •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 승인 2018.10.17 13: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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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길원 大記者 세상읽기]

 “범죄현장을 간다는 것이 두렵기는 했지만 내가 그 두려움을 이겨냈다. 살아서 용서를 빌었고, 참회할 수 있어서 기쁘다”며 삶을 정리하는 순간이 전두환이라는 한 인간의 꽃 같은 순간이어야 한다. 세상이 조막만 하게 보이던 ‘그 따위’가 꽃 같은 시절이 될 수는 없다.
 
요즘 들어 부고를 많이 접한다. 지인의 부모님에서부터 친구도 있고, 더러는 한참이나 나이어린 후배의 부고도 듣는다. 겨울철로 접어드는 환절기임이라.
 
부고를 접할 때마다 필자는 언제부터인가 부고 당사자의 삶을 가늠해보는 버릇이 생겼다. 잘 아는 사람의 부고에서는 추억처럼 기억을 더듬고, 잘 알지 못한 사람의 부고에서는 궁금증으로 그의 삶을 헤아리곤 한다.
 
그들의 삶을 생각할 때마다 공통의 기준점이 하나 있다. ‘비록 오늘은 부고장의 주인이 되었지만 누군들 한 시절 빛나던 때가 없었겠는가’하는 것이다. 찬바람에 지더라도 한 때는 벌·나비 날아들었던 것처럼 꽃 같던 시절을 떠올리며 그의 삶을 위로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엊그제도 친구의 부고를 들었다. 월남전 동기였던 그는 어려움 속에서도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았고, 자주 전화를 하며 안부를 묻곤 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에게는 무척 엄격했지만 타인에게는 너그러운 친구였다.
 
그에게 꽃 같던 시절은 언제였을까 생각해보았다. 월남전 동기이니 ‘월남의 정글’을 누비던 군 병장시절이 먼저 떠올랐다. 월남전서 펜팔로 맺어 끊질긴 구애 끝에 성공한 그의 아내와의 결혼식도 생각이 났고, 조그만 중소기업을 운영하며 사장님 소리를 듣던 때도 어쩌면 꽃 같던 시절이었을 수도 있다.

지난해 집을 찾아온 친구를 만났을 때 그가 식탁위로 끄집어냈던 이야기들이기 때문이다. 그는 굳이 꽃 같던 시절을 특정하지는 않았지만 가슴에 훈장처럼 간직한 이야기는 따로 있었다.
 
친구는 IMF로 운영하던 사업을 ‘말아 먹고’ 나서 꽃 같은 시절을 겪었다고 기억하고 있었다.
 
친구도 여느 사업주와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직원들의 급여를 줄이고, 그래도 버틸 수 없어 정리해고를 했으나 결국은 수 십 억 원의 부채를 짊어진 채 사업을 접었다. 그는 “가족처럼 동고동락 했던 직원들을 사업주의 무능으로 인해 황야로 내 몬 것이 견디기 어려웠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사업실패가 국가부도라는 어쩔 수 없는 거대한 힘에 의한 것이 아니라 지극히 작은 자신의 무능에서 비롯됐다고 여겼고, 그로인해 직원들의 삶을 역경에 빠뜨렸다고 자책했다.
 
친구는 여느 사업주와 달랐다. 다시 구멍가게 같은 작은 사업을 시작한 그는 몇 해 전부터 옛날의 직원들을 찾아 나섰다. 빚을 갚아야 한다는 마음의 부담 때문이었다. 직원자녀들의 학비에 보태라며 작은 봉투를 전달하고, 생일이면 축하 케익이라도 보내면서 기쁨을 함께 했다.
 
“이제 내 생일이면 집안에 수 십 개의 축하 케익이 쌓인다”며 씩 웃던 그의 맑은 웃음이 떠올랐다. 그가 훈장처럼 간직한 생애에 가장 빛나던, 꽃 같던 시절은 생일축하 케익을 보내고 받던 시절이 아니었을까 싶다.
 
친구의 부고를 받아들고 안타까우면서도 그가 큰 빚을 남겨놓고 가지는 않음에 미소를 짓고 있을 것만 같아 위로가 됐다. 그는 떠났지만 직원들에게 ‘우리 사장님’으로 남았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권력자라고 해서, 부자라고 해서 예외일 수 없다. 적건 크건 평가만 남을 뿐이다. 때문에 두려워해야 할 것은 죽음이 아니라 남겨질 수밖에 없는 삶의 흔적에 대한 평가다.
 
피로 물든 손으로 정권을 잡았던 전직 대통령 전두환씨가 다시 ‘광주’에서의 재판을 거부하고 있다. 5·18 희생자에 대한 명예 훼손 혐의로 기소된 그는 광주고법의 관할이전 신청 기각에 불복해 항고한 상태다. 87세라는 ‘고령’과 알츠하이머라는 ‘정신이상’이 이유다.

그의 꽃 같던 시절을 생각해 보았다. 그도 한 여자를 사랑하여 아내로 받아들이던 때가 있었을 테고, 용맹한 장교로 군 생활을 할 때도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는 ‘그 따위’ 보다는 청와대의 주인이 되어 세상이 주먹보다 작아 보이고 모두가 굽실거리던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필자는 그가 광주와 대면했을 때를 생의 최고의 순간으로 꼽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범죄현장을 간다는 것이 두렵기는 했지만 내가 그 두려움을 이겨냈다. 살아서 용서를 빌었고, 참회할 수 있어서 기쁘다”며 삶을 정리하는 순간이 전두환이라는 한 인간의 꽃 같은 순간이어야 한다. 세상이 조막만 하게 보이던 ‘그 따위’가 꽃 같은 시절이 될 수는 없다.
 
그가 ‘용서받지 못할 학살자가’에서 ‘용서받은 학살자’라로 바뀌는 평가만큼 중요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순간이 전체를 바꿀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기회는 그가 광주를 직면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질 때가 바로 그 순간이다. 구순을 바라보는 그다. 시간은 때를 기다리지 않는다. 꽃 한 송이 지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는 우리네 삶이다. 그의 마지막 용기를 기대한다.
 
순천만의 흐드러진 갈대도 늙은이의 흰 머리처럼 희끗희끗하여 겨울 색이 완연하고, 마을뒤편 야트막한 가을 산에도 단풍이 울긋불긋 물들고 있다. 저들도 가야할 때를 알고 있다.

 

[전국매일신문]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sgw@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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