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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104] 저 여린 꽃들은 어떻게 숨 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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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104] 저 여린 꽃들은 어떻게 숨 쉴까
  •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 승인 2019.03.13 15: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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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길원 大記者 세상읽기]

-한동안 우리는 물 귀한 줄 모르고 살았다. 어쩌면 이 재앙의 미세먼지는 우리가 물처럼 그동안 맑은 공기 귀한 줄 모르고 산 탓이기도 하다. 어쩔 수 없이 물 사먹는 시대가 됐지만 공기 사먹는 시대마저 만들어서는 안된다.-

 

며칠간 반짝 맑더니 싶던 하늘이 다시 잿빛으로 바뀌었다. 다시 미세먼지 재앙이 전국을 덮쳤다. ‘다시’라고 했지만 정확히는 일상화된 재앙이다. 특히 3, 4월은 중국 내몽고와 몽골 고원지역을 덮고 있던 눈이 녹으면서 엎친데 덮친 격으로 황사까지 가세, 한반도는 그야말로 숨 쉴 수 없는 땅이 되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미세먼지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내용의 청원이 잇따르고, 여행사 상품에는 ‘미세먼지 탈출’ 관광 상품도 나오고 있다.

지난 12일에는 청와대 사칭 ‘미세먼지 휴업문서’를 교육청에 전달한 대학생이 경찰에 검거 됐다. 이 대학생은 미세먼지로 인한 단축수업 주장을 했으나 학교 측이 들어주지 않아 이 같은 엉뚱한 짓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회에서 뒤 늦게 미세먼지를 ‘사회재난’에 포함시키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하는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 개정안을 통과시켰지만 미세먼지는 여전히 국민들에게 재앙으로 들이 닥치고 있다.

미세먼지는 1급 발암물질이자 가장 위험한 환경재해로 꼽힌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연간 700만명이 미세먼지 때문에 기대 수명보다 일찍 숨진다고 발표했다. 700 만명은 매년 전쟁이나 살인, 결핵, 에이즈, 말라리아 등으로 숨지는 사람을 더한 수보다 많은 수치다.

그런가 하면 미세먼지는 전 세계 인구 1명당 기대수명을 1.8년씩 단축시킨다. 흡연이 1인당 기대수명을 1.6년 단축시킨다는 것을 감안하면 미세먼지는 재해 이상이다. 국민의 기본권인 생명권과 건강권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다.

미세먼지는 호흡뿐만 아니라 모공을 뚫고 신체로 거침없이 들어와 혈관을 타고 신체 모든 장기와 세포로 퍼져 간다. 뇌로 올라가 뇌졸중이나 치매를 유발하고, 폐로 들어가면 폐 손상을 일으켜 심하면 폐암을 유발한다. 부정맥이나 심근경색을 일으키기도 한다. 실내라고 안심할 수도 없다. 숨을 곳이 없는 재앙이다.

그런대도 정부의 대책이라는 것이 재난 문자를 날리고, 외출 시 마스크를 사용하라거나, 노약자는 외출을 삼가라는 것 이외는 대책이 없어 국민을 숨막히게 하고 있다.

대책이랄 것도 없다. 바람이 불기만을 기다리는 것이 상책이다. 차라리 조선시대 기우제를 지내듯 기풍제를 지내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후보 때인 2017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국민은 불안을 넘어 정부의 무능과 안일에 분노한다. 정부가 제시한 대책은 미세먼지 오염도를 미리 알려주는 문자서비스뿐이었다”며 “미세먼지를 잡겠다. 푸른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썼다.

통계는 불행히도 문 대통령의 약속을 회의한다. 올 들어 이날 현재까지 발령된 초미세먼지 주의보가 지난해 한 해 동안 발령된 횟수를 훨씬 넘어섰다는 것이 회의에 대한 입증이다.

재앙이 된 미세먼지는 이제 국민들이 삶의 틀마저 바꿔놓고 있다. 건강을 위해 산으로 바다로 나가 운동하기보다는 ‘건강을 위해’ 꼼짝없이 집안에 있어야 하는 셀프 가택연금을 당해야 한다. 젊은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환경이민’ 이 이 나라를 떠나려는 주요 이유가 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숨 쉬는 것조차 빈부차이를 가져오고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재활용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1회용 보건 마스크를 며칠씩 재사용하고, 야외활동을 할 수 밖에 없는 근로자는 마스크 한 장을 마치 무기처럼 들고 전장에 나가는 병사가 되어야 한다. 기본 필수품이 된 공기청정기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공기청정기가 여전히 사치품처럼 느껴지는 슬픔의 이름일 뿐이다.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미세먼지는 순천만을 가리고, 앞산마저 감추고 있다. 남도의 산하는 매화가 흐드러지고 산수유도 피어 축제가 시작될 즈음이다. 뒤이어 개나리 진달래가 피고지고, 산하는 온통 꽃들의 잔치가 벌어질 것이다. 미세먼지에 가린 저 앞산에도 그 꽃들이 피어나고 있을 테다.

하지만 이 재앙 속에서 여린 꽃들도 숨쉬기 힘들까 걱정이다. 하긴 예쁘게 피어나면 무얼 하나. 우리는 오늘도 꼼짝없이 가택연금인데.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한반도에도 ‘눈이 부시게 푸른 하늘’이 있었다는 사실이 우리의 후손들에게 전설이 되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한동안 우리는 물 귀한 줄 모르고 살았다. 어쩌면 이 재앙의 미세먼지는 우리가 물처럼 그동안 맑은 공기 귀한 줄 모르고 산 탓이기도 하다. 어쩔 수 없이 물 사먹는 시대가 됐지만 공기 사먹는 시대마저 만들어서는 안된다.

마음껏 공기를 마실 수 없게 된 오늘이 우리의 편리함에 따르는 대가일 수도 있다면 정부대책과 함께 나의 대책도 필요하다. 정부와 기업, 국민들이 함께 나서야 ‘눈이 부시게 푸른 하늘’ 은 다시 한반도의 자랑이 될 수 있다.

 

[전국매일신문]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sgw@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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