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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고목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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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고목나무
  • 최재혁 지방부국장 정선담당
  • 승인 2019.07.11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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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 지방부국장 정선담당
<전국매일신문 최재혁 지방부국장 정선담당>

나이 먹을수록 나무가 달리 보인다. 봄 나무는 빨리 성장하지만 무르고, 겨울 나무는 더디 자라지만 단단하다. 꽃 피고 질 때의 밀도도 다르다. 계절 따라 바뀌는 나무의 생장 과정에 우리 삶을 비춰본다.

나무 목(木)은 뿌리와 줄기의 형태를 본뜬 글자다. 대지에 뿌리를 깊게 박고 하늘로 가지를 펼친 모양이다. 뿌리에 가로줄(一)을 그으면 근본 본(本)이 된다. 나무의 근본이 뿌리라는 의미다. 가로줄을 가지에 짧게 그으면 아직 열매를 맺지 않았다는 뜻의 아닐 미(未), 길게 그으면 가지 꼭대기라는 뜻의 끝 말(末)이 된다.
 
또 다른 한자로 나무 수(樹)가 있다. 목(木)이 죽은 나무(고목)나 재료(목재)까지 포함하는 개념인 데 비해 수(樹)는 살아 있는 나무(가로수)나 생물학적 분류로서의 나무(활엽수·침엽수)를 가리킨다. 나무의 액체를 수액(樹液), 나이를 수령(樹齡)이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무 목(木)이 둘 모이면 수풀 림(林), 셋이 모이면 수풀 삼(森)이다. 많은 나무가 늘어선 모습이어서 숲을 삼림이라고 한다. 우주의 모든 현상을 의미하는 삼라만상(森羅萬象)도 이 한자에서 유래했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소나무(松)는 목(木)과 공(公)을 합친 글자다. 진시황이 태산에 올랐다가 큰 소나무 아래에서 비를 피한 뒤 ‘오대부(五大夫)’라는 벼슬을 내린 데서 연유했다. 소나무는 옛날부터 배를 만드는 재료였다.

2005년 경남 창녕군 부곡면 비봉리에서 발굴된 8000년 전 신석기 시대 배도 소나무로 건조했다. 임진왜란 때 우리 수군의 승리 또한 소나무로 만든 병선 덕분이었다.
 
나무는 공익적 기능이 매우 많다. 그리고 그 최대 수혜자는 인간이다. 쉘 실버스타인의 동화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간단하면서 명료하게 이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어린 소년이 성장과정부터 노년에 이르는 동안 나무가 제 몸을 아낌없이 내주는 희생의 과정을 그린 내용으로 어린이는 물론 어른들에게까지 많은 감동과 교훈을 주고 있다.

주인공인 사과나무가 한 소년의 유년시절에는 사과를 생산해 주는 것 이외에도 나뭇잎으로 그늘로 시원하게 해주고 나무 아래에서의 낮잠, 나무 줄기에 그네를 설치하게 하는 등의 놀이감이 되어주었다. 소년이 성인이 되니 나무 가지를 내주어 집을 짓게 해주었고, 장년이 되어서는 몸통을 내주어 배를 만들게 해줘서 소년을 넓은 바다로 진출하게 해주었다.

노인이 돼서 고향에 돌아온 소년에게 베어진 늙은 나무는 그루터기로 남아서 같이 늙어버린 소년이 앉아서 쉴 수 있는 공간까지 제공해주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 이야기는 여전히 감동적이다.
 
몇 년전 미국 뉴욕의 센트럴파크에 나무와 관련하여 2천억대의 소송 건이 생겼다. 세 아들과 센트럴파크를 산책 중이던 한 엄마가 쓰러지는 거대한 느릅나무에 깔린 것이다. 4살과 2살배기 아이는 엄마가 밀쳐내어 무사했지만 안고 있던 생후 1개월짜리 아가와 엄마가 큰 사고를 당했다.

아이 엄마는 뇌진탕, 척추골절 등의 중상을 입었고 아기도 두개골 골절상을 입었다. 안타깝게도 엄마는 아이들을 보호하느라 본인의 피해가 더 깊었을 것이다. 공원 관리를 잘 하기로 이름난 센트럴파크에서 일어난 일이라 충격이 더 크다. 점점 노후화되는 공원이 늘어나는 우리나라의 공원관리도 더욱 중요하게 느껴진다.

현대 도시의 30년 정도가 지난 아파트의 재건축이 진행되면서 자원 낭비에 대한 지적이 많다. 그 곳에 살아있는 생명인 나무가 재건축으로 인하여 수명을 단축하고 있다. 그 중에 문제로 삼을만한 대표적인 아파트인 서울 강동구에 위치한 모 주공아파트의 경우 5층짜리 아파트가 지어진 1980년에 심어진 나무는 당시에는 작은 나무였지만 38년이란 세월이 흐르자 많은 나무가 아름드리 거목이 되었다.

대단지 아파트가 입주 초기에는 콘크리트 숲이지만 세월이 지나자 40살이 훨씬 넘은 조경수가 아파트 단지를 푸르름이 우거진 숲으로 바꾸어 놓았다.재건축을 하기위한 인허가 조건 중에 기존 수목을 옮겨야 하는 조항이 있기 때문에 수목 이식을 계획했지만 실제 이식수목은 전체의 8% 밖에 안 된다고 한다.

큰 나무 한 그루 옮기는데 100만원 씩 소요되고, 옮겨진다고 해도 세심한 수목관리를 해야 하기 때문에 가져가는 사람이 없어서 이곳의 큰 나무들은 베어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인근의 상황이 비슷한 대규모 재건축 아파트단지의 철거현장을 보면 커다란 고목들이 무참히 베어져서 산처럼 쌓여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경북 군위에 1000년 전부터 거주하던 느티나무가 인간에 의해 날벼락을 맞았다. 근원 직경이 4m에 이르는 이 나무는 매년 마을 주민들에게 수호신 대접을 받으며 제사상을 받아먹었다.

고려시대, 조선시대, 일제강점기와 6.25 동란 등의 모진 풍파를 겪으면서도 건재한 덕에 마을의 수호신이 된 것은 당연했다. 그런데 이 마을에 군위댐이 건설되자 수몰지구 속하게 된 느티나무는 경북 고령으로 조심스럽게 이식되었다. 그러나 느티나무는 고령 땅에서 미처 자리 잡기도 전에 서울 강남의 유명 아파트 재건축 단지로 다시 옮겨졌다.
 
그 사이에 커다란 덩치의 느티나무 가지와 뿌리는 이리저리 잘리고 찢겨졌다. 사람으로 치면 100살 노인에게 대수술을 짧은 기간에 두 번씩이나 한 셈이 된 것이다. 새로 입주한 아파트에 1000년이나 된 나무가 존재한다는 자체가 세간의 큰 화제가 되어 입주 당시에는 유명세를 꽤나 탔다.

그리고 세월이 가면서 대수술의 후유증을 못 견딘 느티나무는 윗부분부터 제 모습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본래의 모습을 깡그리 잃어버려서 기둥만 남은 느티나무의 몸체에 인간은 이를 대신하려고 다른 느티나무 가지를 덧붙여 놓았다. 식물학대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다시 생각해 본다. 나무가 주는 공익적 기능과 녹색치유의 기쁨, 생명의 경외감 등을 차치하고라도 인간이 자신들의 이득만을 추구하느라 대안도 없이 사라지는 늙은 고목나무의 슬픔이 보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인간은 태어나 죽을 때까지 나무에게 빚지며 산다. 오래된 마을·관청은 온갖 풍상을 이겨 내고 수 백 년 동안 애환과 질곡의 역사를 간직한 채 지켜온 수호신 같은 고목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거목 중에는 매년 음력 정월초순에 제관을 미리 선임, 동제를 지내는 등 마을과 관청의 안녕을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추앙을 받는 경우도 있다.

고목은 수백 년 이상 커야 한다. 계절마다 옷도 갈아입는다. 자연의 섭리를 잘 따르는 나무에게서 우리는 생의 이치를 배운다. 삶의 기록을 매년 몸속에 남기는 고목은 우리에게 훌륭한 벗이자, 살아 있는 과거이자 미래다. 수호목은 우리에게 여름에는 그늘을 제공하는 큰 양산을 펼쳐주고 있다.
 
고목나무의 진수는 외양만이 아니라 나이테에서 알 수 있다. 고목나무 밑은 알림방, 세상 장소 등 진정한 소통의 장소다. 기나긴 세월 동안 지킴이로 살아온 나무는 원치 않아도 수많은 세상살이에 얽혀들기 마련이다.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겪었던 사연들도 많을 것이다. 인생사도 나이가 들면 고목나무 같아 언제 생을 마감할지 누구도 모른다. 해마다 촘촘해지는 나무의 나이테는 우리 인생의 여정과 같다. 그 무늬와 결에 따라 꽃과 열매가 달라지는 이치도 닮았다

정선/ 최재혁기자 (jhchoi@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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