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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에서] 인생무상(人生無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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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에서] 인생무상(人生無常)
  • 최재혁기자
  • 승인 2019.11.14 14: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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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 지방부국장 정선담당

 

▲최재혁 지방부국장 정선담당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늙고 병들고 죽기 때문에 생로병사(生老病死)라는 말이 생기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태어나면서부터 늙어가는 것은 막을 수 없고 죽는 것 또한 막을 수 없는 것이 만고불변의 진리지만, 다만 인간은 그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을 뿐 젊음을 부수는 시간은 화살과 같이 빠르게 지나가 어제의 젊음을 오늘의 늙은이로 만들어 인생이 허무하다는 한탄을 노래하게 한다.

그러나 오늘의 젊은사람들은 그와 같은 엄연한 사실을 받아들이기보다는 젊음의 물리적인 힘만 믿고 현실을 거부하는 어리석은 언행을 일삼는다. 그러나 인생 경험이 많은 노인은 노래하기를 “화무십일홍(花無) 十日 紅)이요 달도 차면 기우느니라.”라고 노래했다. 그리고 인생무상(人生無常)이라는 말과 함께 덧없이 가는 인생이 사는 동안에 부귀영화를 누리며 권세를 잡았다 해도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는 인생의 무상함을 노래로서 표현한다.

어디 그뿐인가? 늙어 받는 외로움이 극에 달할 때 부르는 노래는 “나무라도 고목이 되면 오던 새도 아니 오고 인생이 늙어지면 오던 임도 아니 오고 꽃이 시들면 오던 나비도 아니 오며 깊던 물이라도 얕아지면 오던 고기도 아니 온다.”라고 늙어 서러움을 토로했다.

같은 맥락에서 오늘의 젊음을 무기로 삼아 자랑하는 철없는 젊은이는 인생 선배인 늙은이를 고물(故物)로 취급하지 말고 보물(寶物)로 여기라 그 이유는 젊은이들은 힘이 있지만, 늙은이에게는 지혜가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오늘의 젊은이들은 오만불손하여 법관도 “늙으면 죽어야지.”라고 노인을 비하하는 시대라 세상에 도덕과 윤리가 땅에 떨어진 한심한 현실을 비관하는 노인이 예외로 많다는 것이다.

사자성어에 “노마 지지(老馬之智).”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늙은 말의 지혜라는 뜻이니, 하찮게 생각하는 사람이나 늙은이도 각자 그 나름대로 장점이나 슬기를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는 의미다. 이 사자성어의 유래를 보면 춘추 시대 다섯 패자(覇者) 중의 한 사람인 제나라 화공에게 부하가 말하기를 “맹추위가 몰아치기 전에 어서 돌아가지 않으면 불쌍한 군사들이 많이 상하게 될 것이라.”라고 했다.  귀국하는데 길을 잃어 어디가 어디인지 알 수 없어 헤맬 때 그의 신하인 관중이 말하기를 “이런 때는 늙은 말의 지혜를 빌려 봄 직합니다.”라고 했다.
 
관중은 늙은 말 한 마리를 자유롭게 풀어놓았다. 말은 오랜 경험에 입각한 후각과 본능에 의지하여 터벅터벅 걸어가기 시작했다. 관중은 군사들에게 그 뒤를 따르게 했다. 그러자 얼마 안 가서 큰길을 만날 수 있었다. 이렇게 행군을 계속한 일행은 어느 크고 험한 산을 넘게 되었다는 데서 부터 로마 지지라는 말이 유래되었다.

같은 맥락에서 오늘의 젊은이들도 노인을 학대나 폐기물 취급하지 말고 보물로 알고 늙어 서러움도 감당하기 어려운 늙은이들을 더욱 슬프게 하지 말고 젊은이도 지금 늙어가고 있으니 파종의 원리나 자업자득이라는 말과 같이 심은 대로 거두고 행한 대로 받는 진리가 영원함을 기억하고 자식들 앞에서나 젊은이들 앞에서 노인 공경하는 것을 그들 마음속에 심어주어 자신이 늙으면 자식과 젊은이들에게 대접받을 수 있도록 본을 보이며 사는 것이 늙었을 때를 위한 지혜로운 삶이 될 것이다.

오늘의 노인들은 매우 외롭다. 자녀를 낳아 기를 때는 그들의 대소변을 떡 주무르듯 하였지만, 부모가 늙어 병드니 그만 죽었으면 하고 귀찮아하는 모습을 본 늙고 병든 부모는 피눈물을 흘리며 하나뿐인 생명을 자연사가 아닌 자살로서 짧은 생을 마감하는 이런 일이 없게 하는 것은 부모를 위해서가 아니고 늙어가는 자신들을 위하여 효도 은행에 저축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즐겁게 늙은 부모나 어른을 대접해야 할 것으로 안다.

인간은 누구나 한 번 태어나면 늙고 병들고 죽기 마련이다. 이것은 비단 인간뿐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에게 해당하는 공통적 숙명이다. 흔히 운명은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개척할 수도 있다고 하지만, 이미 정해진 숙명은 어쩔 수 없는 것이 만고불변의 진리다.
 
100세 시대를 맞아 오래 사는 것이 재앙이기를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100세를 넘어 120세 시대를 맞으면서 경제적인 여유를 갖고 건강하게 오래 사는 무병장수를 바라고 있다. 하나 노화는 인간이 겪어야 하는 삶의 숙명적인 과정이다. 가수 이애란씨의 ‘100세 인생’의 ‘재촉 말라 전해라’는 노랫말을 들으면 ‘찡한 느낌’이 든다. 잘나서 잘살고, 잘 죽어서 자신 있게 생사거래(生死去來)의 능력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120세 시대를 맞으면서 인류학자들이 위험의 경고로 “첫째는 ‘일확천금을 꿈꾸며 돈 없이 오래 살 때’, 둘째 ‘건강하면 노년에 더 무엇을 바라겠나?’며 ‘아프며 오래 살 때’, 셋째 ‘일 없이 오래 살 때’, 넷째 ‘언젠가는 혼자가 되는 게 노년이지만 혼자돼 오래 살 때’”를 들고 있다.
 
나이가 들어 몸이 아플 때 서러운 마음이 생기게 된다. 몸이 아픈데 어느 누가 보살펴주는 사람이 없을 때, 외로울 때, 허심탄회하게 대화할 친구가 없을 때는 마음이 편치 않다. 그럴 때 경제적인 여유와 건강이 최고란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한다.
 
인간은 늙으면 늙을수록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짐이 되기도 한다. 한평생 천수를 누리며 살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염원으로 거동조차 못하며 사는 100세는 결코 행복한 것이 아니다. 언젠가는 세상을 떠나야 하는 덧없는 인생무상(人生無常)이지만 모든 노인이 경제적인 여유에다 건강한 노후를 보낼 수 있다면 오죽 좋으랴.

앞산 뒷산의 진달래꽃만이 피었다 쉬이 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젊음도 덧없이 가는 게 사실이다. ‘녹음방초가 승화시라’는 노래도 있지만 그 푸른 풀도 ‘푸르는 듯 누르나니’가 매우 적절한 표현이다. 셰익스피어의 탄식처럼, ‘이렇게 왔다 이렇게 가는 것’이 인생이라면 ‘인생무상‘을 탄식하는 것을 탓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전국매일신문] 최재혁 지방부국장
jhchoi@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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