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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에서] 하명 수사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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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에서] 하명 수사 논란
  • 최재혁기자
  • 승인 2019.12.05 14: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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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 지방부국장 정선담당

지난해 6·13 지방선거 이전 불거졌던 김기현 당시 울산시장 주변 측근비리 의혹을 둘러싼 경찰수사 논란이 재점화됐다.

여기에 더해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자유한국당 소속인 김 전 시장 관련 비위첩보를 경찰에 넘겨 이른바 ‘하명수사’를 하도록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며 파장이 엄청나다.

각종 의혹이 쏟아져 나오고 청와대, 당시 수사 총지휘자였던 황운하 전 울산경찰청장, 울산경찰 등 관련자들은 사실무근이라며 반박하고 있다.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송철호 울산시장의 당시 후보선거캠프 핵심으로, 현재 시 경제부시장으로 있는 송병기 부시장의 모종의 역할론이 사실여부를 떠나 사건의 핵심으로 떠오르면서 휘발성을 높이고 있다.

정권 3년 차, 권력 음습한 곳곳에서 펼쳐졌을지도 모를 일들이 슬슬 불거져 나온다. 지금 드러난 게 사실일 수도, 빙산의 일각일 수도, 과장됐을 수도, 아니면 누군가에 의해 의도적으로 왜곡된 것일 수도 있겠다. 진실은 아침마다 조금씩 밝혀질 것이고, 누군가 퍼다 나르는 가짜뉴스는 조금씩 배척될 게다.

‘권불십년(權不十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은 정치권에서 늘 회자 되는 말이다. 실제 우리 정치사를 보면 이 말은 진리 중에 진리임에 틀림없다. ‘5년 단임, 단 한 번의 대통령 자리에 있는 동안 해야 할 일은 너무 많다’고 조급증에 사로잡히게 된다. 5년 단임제 대통령지만 정권이 바뀌면 완장(腕章)을 찬 호가호위(狐假虎威)자들이 임기 후반에 들어가면 어지럽히는 일이 계속됐다.

우리의 호가호위와 완장폐해는 지난날에는 일제의 앞잡이가 된 한국인 순사, 6.25전쟁 당시 갑자기 좌익이 된 인사의 위력은 대단했다. 국정초기 지지도가 80~90%를 넘는다며 패기만만하게 출범했지만 퇴임 후 줄줄이 감옥행도 있었다.대선 때 줄 잘 서면 팔자가 하루아침에 바뀐다.

한 번 잘 보여서 팔자가 피는 사람이 있고, 한 번 찍혀서 인생을 종친 사람도 있다. 대부분 팔자가 핀 사람은 완장을 하나씩 두른다. 새 정권이 들어서면 엄청난 지지도를 바탕으로 ‘적폐 청산’이라는 강력한 슬로건을 내걸고 출범했다. 정책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적폐논리’가 전형적이다. 민족적 숙원이라는 주장에 대해 어느 누구도 감히 토를 달기 힘들었다.

작년 4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울산지방경찰청의 수사가 시작됐다. 타깃은 당시 김기현 시장. 선거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보통 이런 일이 있으면 당락 여부를 떠나 선거가 끝난 뒤 수사를 한다. 이게 상식이다. 그런데 경찰은 압수수색을 하는 등 강제수사에 들어갔다.

그 지역 유권자들은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현직 시장이 문제가 있어 수사를 받고 있다고 생각했을 게다.김 전 시장의 상대는 현 송철호 울산시장. 대표적 친노친문 인사다. 노무현 전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과 호형호제하는 사이였다. 부산에 노무현 문재인이 있었다면 울산에는 송철호가 있었다.

그런 만큼 이들의 관계는 형제 이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셋 중 송철호는 운이 없었다. 이전 선거 때까지는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문재인 정부들어 소원을 푼 셈인데, 청와대 개입 정황이 드러나고 있어 파장이 어디까지 튈지 모르겠다.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은 지난달 29일 열린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김 전 시장에 대한 이른바 '하명 수사' 의혹과 관련, “청와대의 조사 대상이 아니어서 그대로 (비리 첩보를) 이첩했다”고 밝혔다.

그렇다. 선출직 공무원은 청와대의 감찰 조사 대상이 아니다. 그럼에도 김기현 사건은 청와대를 경유해 경찰로 넘어갔다. 이것을 두고 하명이니, 아니니 하고 있는 것이다.노 실장은 “비리에 대한 첩보는 당연히 신빙성을 판단 이후에 (청와대의) 조사대상자인 경우는 조사한 이후에, 아닌 경우에는 그대로 관계 기관에 이첩했다”면서 “그대로 이첩을 안 했다면 직무유기”라고 밝혔다.

이어 '선출직에 대한 불법 감찰을 하느냐'는 자유한국당 이만희 의원의 지적에 “김기현씨에 대해 감찰한 적이 없다”면서 “민정수석실의 특감반이 울산 현장에 갔던 이유는 고래 고기 사건으로 검찰과 경찰이 서로 다투는 것에 대해 부처간 불협화음을 어떻게 해소할 수 없을까 해서 내려갔다”고 덧붙였다.

노 실장은 ‘경찰이 김기현 전 시장과 관련한 수사를 9번 청와대에 보고했다’는 언론 보도와 관련, “(지난해 3월) 압수수색 직전에 9번 보고를 받은 적이 없다”면서 “압수수색 전에 '이첩된 것에 대해 자료를 수집 중'이라고 한번 보고를 받았고 압수수색에 대해서는 압수수색 20분 전에 보고를 받았다”고 말했다 .

또 반부패비서관실이 경찰청으로 첩보를 이관할 때 '밀봉 서류'로 전달했다는 언론 보도에는 “그것에 관해서는 확인해보지 않았다”고 말했다.더군다나 이 자료는 백원우 당시 민정비서관이 박형철 반부패비서관에게 건넸다고 한다. 하명 사건이 아니라면 백원우가 언제, 어떤 경로로 입수했는지도 밝혀야 한다. 유재수 사건만큼이나 냄새가 많이 난다.

도덕경에는 ‘세상에서 가장 큰 일도 그 시작은 미세하다(天下大事必作於細)’는 말이 나온다. 돌아보면 세상의 그 어떤 큰일도 시작은 아주 작은 조짐에서 시작된다. 우리가 기억하는 굵직한 정치적 사변(事變)들도 마찬가지였다. 권력이 제아무리 틀어막아도 끝내 봉쇄되지 않고 진실이 기어이 밝혀지고 만 역사와 교훈은 부지기수다.

현 정권의 구멍 난 ‘민주주의’가 조금씩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몇 달 동안 나라를 온통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조국 대란’의 여진이 미처 잦아들기도 전에 ‘유재수’ 전 부산시 정무부시장 뇌물사건과 김기현 전 울산시장 ‘청와대 하명수사’ 의혹이 불길을 활활 키워가고 있다. 많은 이들이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과는 또 다른 차원의 권력 일탈을 의심한다.

정말 심각한 것은 지난해 지방선거 직전에 벌어진 야당 후보들에 대한 대대적인 정치공작 논란이다. 김기현 전 울산시장에 대한 하명수사 의혹은 파장을 가늠키 어렵다. 백원우 당시 청와대 민정비서관이 넘겨준 김기현 울산시장의 비리 첩보가 박형철 반부패비서관을 통해 경찰청을 거쳐 황운하 울산지방경찰청장에게 넘어간다.

황운하는 김기현이 자유한국당으로부터 공천을 받던 그 날 전격적으로 울산시청을 압수수색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인 송철호 후보를 10%포인트 이상 앞서 있던 김기현은 그 시점을 계기로 판이 뒤집혀 선거에서 낙선한다.

고향인 대전지방경찰청장으로 자리를 옮긴 황운하는 내년 총선 출마를 위해 명예퇴직을 신청하기도 했다. 오비이락(烏飛梨落)이 겹치고 또 겹치고 있다. 의혹은 백원우가 민정비서관 시절 ‘비선 특감반’을 별동대로 운영하면서 거대한 정치공작을 지휘한 것이 아니냐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백원우는 “경찰로부터 수사내용을 보고 받은 적 없다”고 뻗댄다.

하지만 검찰은 청와대가 선거 이전에 경찰로부터 8차례나 보고를 받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백원우는 현재의 ‘수사 시점’을 거론하며 검찰을 겨냥했다. 그러나 그가 ‘수사 시점’을 시비하려면, 울산시청 압수수색이 왜 하필이면 김기현의 공천 결정일이었는지부터 설명해야 한다.

경찰 수사를 받다가 자살한 조진래 창원시장 후보를 비롯해 경남의 야당 출마자 8명이 경찰 수사를 받은 ‘시점’도 함께 설명이 돼야 마땅하다.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범죄 중에 선거 공작보다도 더 추악한 것은 없다. 이런 험악한 의혹은 결코 그냥 넘어갈 성질이 아니다. 민주주의를 이렇게 무참히 펑크내고도 무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모든 합리적 의혹들은 명명백백 밝혀져야 한다. ‘천 리의 둑도 개미구멍 하나로 무너진다(千里之堤 潰於蟻穴)’는 한비자의 경고는 여전히 유효하다.정치에서 만고의 진리는 없고 민심은 언제든지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역사는 잘 보여주고 있다. 다수가 지지하는 목적은 방법을 정당화시킬 수 있지만 그것이 지나치면 국민들은 목적조차 부정하게 마련이다.

[전국매일신문] 최재혁 지방부국장
jhchoi@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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