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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저계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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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저계급론’
  • 최재혁 지방부국장 정선담당
  • 승인 2015.12.03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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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인터넷에는 수저 신분제 드립이 유행이다.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에서 다이아몬드수저로 발전 중이다. 이는 단순한 숟가락 이야기가 아니다. 양극화 사회에 대한 자조적 메시지이자 벌어져만 가는 사회 계층간 간극(間隙)을 아프게 풍자하고 있다. 삼포세대를 사는 젊은이들의 고민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금수저나 흙수저는 ‘은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나다(born with a silver spoon in his mouth)’라는 관용구의 파생어로 보인다. 원래 은수저를 물고 태어났다는 건 부유한 혹은 행운의 환경에서 태어났다는 뜻이다. 젊은이들은 은수저를 금수저로 발전시키고 흙수저라는 신상품을 만들어낸 거다.
가난한 가정에 태어나는 것을 가리켜 ‘나무 숟가락을 물고 태어났다’고 하는 것도 일종의 파생상품이다. 그래서인지 ‘wooden spoon(나무수저)’은 꼴찌상이라는 뜻도 있다.양극화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3루에서 태어났으면서도 3루타를 친 줄 알고 산다”고 지적한다. 이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전설적인 미식축구 감독 베리 스위처(Barry Switzer)의 말이다.
88서울올림픽 직후 우리네 생활상을 담은 TV 드라마가 최근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다. 예전 세대는 물론 요즘 젊은층에게도 어필하면서 상종가를 기록하고 있다. 추억에 젖어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어 많은 이들이 시청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잠시 시계를 거꾸로 돌려보자. 88 서울올림픽 전후인 80, 90년대 군복무 대상층은 여러 부류로 나눠졌다. 군 면제자는 '신의 아들', 6개월 방위는 '장군의 아들', 18개월 방위는 '사람의 아들', 의무복무 기간을 채우는 '어둠의 자식'들이다. 고위층 자녀들의 잘못된 방법에 의한 군면제나 병역비리 등으로 점철되면서 얼마전까지도 회자됐다.
지금은 2015년이다. 병역과 관련한 얘기는 많이 사그라들었지만 온·오프라인 할 것 없이 사람들 눈에 귀에 포착되는 단어가 나왔다. 세태를 반영하는 신조어가 양산되고 있는데 그 중 '흙수저', '금수저'가 대표적이다. 금수저란 부모 재력과 능력이 너무 좋아 아무런 노력과 고생을 하지않음에도 풍족함을 즐길 수 있는 자녀들을 지칭한다. 반면 흙수저는 평범한 집안 환경을 뜻한다.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는 사회에 대한 젊은이들의 씁쓸한 자조가 묻어있다. 뿐만 아니라 최근 온라인에는 동수저, 플라스틱 수저 등 수저 계층 표까지 나오고, 자신이 어떤 수저인지 볼 수 있는 기준표까지 돌고 있다.
금수저라는 말은 최근에 나온 얘기가 아니라는 주장이 있다. 예전에도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다라는 말이 있었다. 그런데 예전에는 자기가 노력하면 얼마든지 신분을 바꿀 수 있었기 때문에 잘 쓰이지 않는 말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예전에 비하면 노력해도 안된다는 인식이 많이 생긴 것이 사실이다. 오죽했으면 흙수저와 더불어 새롭게 '노오력'이라는 단어가 나왔을까.'노력(努力)'을 길게 발음한 노오력은 노력만 강조하는 기성세대에 대한 비판과 함께 아무리 노력해도 변화가 없는 사회를 풍자하는 단어다.
굳이 흙수저, 금수저 등을 구분하는 기준표를 소개하지 않더라도 우리사회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얼마전 수험생들이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렀다. 또 얼마없으면 중3 수험생들이 고교 입학을 위한 '전쟁'을 치러야 한다. 금수저를 물고 있으면 천만다행이다. 그렇지 못해 은수저나 동수저 인생도 그나마 낫다. 신의 아들도, 장군의 아들도 아닌 우리 흙수저 인생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잔인한 얘기 같지만 기성세대들이 닦아놓은 대한민국의 탄탄대로(?)는 미래세대에게는 가시밭길이다. 갈수록 일자리는 부족하고 계층간, 세대간, 지역간 갈등은 심화하는 등 살고싶은 나라와는 거리가 더욱 멀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금은동 가릴 것 없이 수저만 있으면 다행이라는 자조섞인 얘기들이 나돌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결국 누구의 책임이겠는가. 이미 엎질러진 물은 다시 담으려는 노력은 하지 못하겠지만, 차선책을 찾아야 한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인간 등급표가 유행하고 있다. 이렇게 풍자적인 등급 분류를 하게 된 것은 88만원 세대, 3포·5포·7포세대 등으로 불리며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다수의 청년들이 노력해도 바뀌는 게 없다는 자조 끝에 만들어냈다고 한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날수록 고급교육을 받고 다양한 어학능력을 갖춰 취업까지 유리한 반면, 가정환경이 어려우면 아무리 열심히 공부를 한다고 해도 취직이 어렵고 또 학자금 대출 등으로 하루하루 빚만 늘어난다는 얘기다. 부모의 든든한 재력이 없으면 삶의 질을 보장받을 수 없는 시대라는 것에 젊은이들이 절망감을 느끼고 있다는 말이다.
‘수저계급론’이 젊은이들 사이에 급속히 퍼져 가면서 이것에 대해 부정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을 정도라는 것은 우리 사회의 소득불평등 문제가 사회 전체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계층 이동성이 사라지고 사실상 계급이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인식이 굳어진다면,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자기실현적인 성격이 있어서 꿈과 희망도 사라져 그 사회는 활력을 잃게 된다.
전래동화 ‘금도끼 은도끼’를 떠올려 보자. 나무꾼이 산에서 나무를 하다가 생명처럼 소중한 도끼를 연못에 빠뜨렸다. 나무꾼이 연못가에서 울고 있을 때 산신령이 나타나 금도끼와 은도끼를 차례로 꺼내며 ‘이 도끼가 네 것이냐’고 물었다. 착한 나무꾼은 자신의 도끼가 아니라고 한다. 정직함에 감탄한 산신령은 나무꾼의 도끼는 물론이고 금도끼와 은도끼도 줬다. 자신의 분수대로 성실하게 살면 잘살 수 있는 시대가 다시 올까.
태권V가 나올 법한 돔형태의 '여의도' 건물에서 직장생활하는 분들과 그곳에서 생활하고 싶은 이들은 내년 4월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 젊은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달해줄 그런 사람들만 나왔으면 하는 것은 너무 작은 소망일까? 제발 흑역사가 반복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이 모든 유행어가 결국은 사람 팔자가 태어날 때 정해진다는 함의(含意)를 담고 있어 우리의 가슴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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