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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길을 걸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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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길을 걸어가자”
  • 한국농어촌공사(철원지사) 박종민 차장
  • 승인 2018.08.15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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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민 차장

1910년 일제가 우리 국권을 찬탈했다. 이로써 대한제국의 역사를 송두리째 빼앗겼다. 힘없고, 나라가 기울면 강대국의 제물이 된다는 뼈아픈 교훈이다.  

이후 일제는 무단정치를 시작했고 20여 년이 지난 뒤엔 문화정치를 표방해 1930년 12월 29일 조선 총독부령 103호를 공포했다. 이어 이듬해 1931년 4월 1일 전국의 41개면(面)이 읍(邑)으로 승격된다.  

이에 따라 강원도에서는 강릉면. 춘천면 철원면 등 3개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당시 강원도 행정구역은 21개 군, 인구는 141만으로 지금의 도내 인구 150만 명과 비슷한 수를 기록하고 있다. (별지참조)  

돌아보면 일백 여 년의 세월이 흘렀고 당시 읍 승격을 했던 다른 도시와 비교하면 초라한 느낌을 지을 수 없다. 아마도 이런 연유는 예전에 부모님이 들려주신 우리고장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철원 읍(邑)의 위세(威勢)가 당시의 명성에 훨씬 미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난 주 철원·동송지역 초등학교 연합동창회에서 친구들과 추억을 얘기한 적이 있고 마침 일제가 발행한 1930년대 통계자료를 인용해 고향이야기를 적는다. 


우리고장은 도내 3대 도시로 불릴 만큼 강릉. 춘천과 같이 문화. 역사. 교통의 중심권에 있어 같은 날 읍으로 승격했지만 지금은 동일자로 태어난 두 곳 도시와는 경제력과 인구와 예산 등 모든 것을 대비하기엔 너무도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2018년도 7월말 현재 강릉시 인구 22만, 춘천 28만 명에 비해 우리 고장 철원은 인구 5만을 못 채우고 원주시의 경우 1936년도 당시 2만 인구의 원주면에서 읍으로 승격되었지만 지금은 도내 최고의 도시로 성장하면서 32만의 인구를 보이고 있다. 

-일제 강점기 강원도내 군별 인구현황-

헌데 수부 도시를 자부했던 철원읍은 1931년도 1월 승격한 전국의 41개 읍 가운데 1만의 인구도 채우지 못하고 고작 8천 5백 여 명에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물론 해답은 역사의 굴레와 지정학적 특성에서서 찾아야 하지만 지난날 부모님이 들려준 고향의 정서와 너무도 동 떨어진 현실이 아닌가 싶다.  

때마침 최근 들어 많은 이들이 우리 고장 철원이『평화의 행복』성지로 급부상하고 덩달아 철원 땅 값도 오르는 추세라는 입소문이 들리니 여간 반갑지 않다. 

수복 후 지금까지 민통선이라는 특수지역에 묶여 고된 삶을 살아온 이곳 주민들에게 보상의 대가를 예고하는 이야기가 들리니 여간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고 때마침 남북관계 개선 움직임과 관련해 철원이 뉴스의 초점으로 부상하니 한반도의 평화와 미래의 설계에 희망을 기대해 본다.  

때는 1953년 7월, 정전 후에 나온 60년대의 『피어린 600백리』를 걸어가며 분단의 아픔을 절규한 노산 이은상 선생님의 고뇌를 되새기면 무궁무진하고 다양한 문화 콘텐츠가 이 땅 여기에 숨어 있는 이 땅이다.  

이제는 피아간 아픔을 도내고 행복과 번영을 이야기하며 통일의 길목! 이 땅에서 한반도의 미래를 설계하는데 고민해보자. 이는 한반도의 통일, 평화 그리고 분단의 아픔을 치료할 시대적 소명이고 그 몫은 후손이 챙겨야 한다. 


중부전선 끝자락에 누워있는 철마는 세월의 아픔도 모른 채 잠들어 있지만 희망이 가득한 번영의 땅, 동주평원엔 땀방울의 대가를 예고하는 알곡이 영글어간다.  

몇 해 전 통일이 대박이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번질 땐 해당 지자체마다 평화공원 유치를 위해 저마다 당위성을 주장했지만 이젠 이 터에 종전이란 단어가 암시하듯 평화와 통일의 새로운 바람이 일고 있다.  

세태에 무심한 민초이지만 한반도의 번영과 미래, 통일에 따른 손익과 역사성 등 종합적인 분석, 이어서 부분적인 접근성이나 소지역 이기주의 목소리는 단절해 국민적 공감대를 만드는 과업이 평화통일 앞에 전제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연일 쏟아진 폭염 속에서도 풍요로움과 행복의 미래를 예고한 철원평야! 그리고 수 만년 동안 이 터전을 적셔온 한탄강 주변엔 연일 축제 분위기 일색이어서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다음 달엔 추석과 성묘의 문턱이니 부모님이 들려주신 고향의 옛이야기가 귓가에 다가온다. 

광복과 전쟁 등 격변기를 거치며 살아오신 부모님과 필자의 형제 그리고 증조부님 모두 철원 사람이어서인지 늘 이맘때면 유년기 시절 아버님이 들려주신 고향 이야기가 어렴 풋 어렴 풋 떠오른다, 고난의 운명처럼 느껴지는 그때 그 시절에는 모든 것이 어렵고 궁핍했다. 

영농 출입증과 패찰 그리고 빨간 모자를 쓰고 5검문소와 6검문소를 통과했고 민통선 월하리 마을 앞을 지나칠 때면 피난시절의 애환과 애증, 관전리 언덕에서는 뼈대만 남은 동주금융조합 건물을 가리키며 여기서 근무했던 아버지의 청년시절을, 외촌리 길목에 들어서는 지뢰 밭 속에 잠든 철원공립보통학교에서의 가을 운동회를 회상하며 학생시절의 추억담을 들려줬다.  

참고자료

▲ 1931년 4월 1일(1930년 12월 29일 공포 조선 총독부령 103호) 전국 41개 지정 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관보) ▲ 일제 강점기 철원군 관내 교육기관(16개교)관련 보도내용, ▲ 1935년8월19일 매일신보 ▲ 일제 강점기 철원시가도

■ 일제 강점기 소화6년(1931년)내 인구현황

군별

면수

인구

비고

강릉

12

88,073

강릉13,495

삼척

9

83,546

 

울진

8

66,626

 

정선

7

55,035

 

평창

5

70,969

대화22,338 진부16,592

영월

8

65,338

 

원주

10

69,492

 

횡성

8

66,746

 

홍천

9

76,972

 

화천

4

36,544

간동10,178 상서10,721

김화

12

87,341

 

철원

10

76,921

철원 동송 갈말 어운 북 내문 마장 인목 묘장 신서

평강

7

60,877

평강10,617

이천

11

73,308

 

춘천

13

80,315

북산11,599 춘천9,210

인제

6

70,090

 

양구

7

48,840

 

양양

7

73,856

 

통천

7

47,172

 

고성

7

50,798

 

양양

9

62,265

 

 

 

 

 

 

 

 

 

21

 

1,411,124

 

※ 출처 : 국립중앙도서관 관보70/286 조선총독부 관보 1931.12.08.

 

한국농어촌공사(철원지사) 박종민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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