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온갖 반인류범죄가 만연해 있다”는 내용을 담은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의 최종 보고서에 대해 중국이 거부권 행사를 말 것을 언급하고 나서 그 배경이 주목된다.　박 대통령은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핵안보정상회의에 앞서 지난 19일 청와대에서 행한 네덜란드 NOS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혹시 중국 측이 북한의 인권관련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이에 대해 대통령은 실망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중국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는다면 북한 인권 부분에 있어 더 임팩트가 강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답한 것으로 23일(현지시간) 확인됐다.　비록 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형식을 띠었지만 최근 한중 양국, 특히 박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그동안 쌓아온 우호적 관계를 감안하면 상당히 높은 수준의 주문으로 해석될 여지가 충분한 발언이었다.　특히 이러한 박 대통령의 주문은 중국 정부가 지난 18일 COI의 최종 보고서에 대해 “인권 문제의 정치화에 반대하고 인권 문제를 핑계로 다른 국가의 내정에 간섭하는 것에도 반대한다”며 유엔 안보리에서 거부권을 행사할 것임을 강하게 시사한 다음날 나온 것이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자신의 인터뷰 언급이 자칫 중국을 자극할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었을 것으로 관측된다. 핵과 미사일 실험 등만 겨냥했던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이 인권문제로까지 확산할 경우 북한이 강력히 반발하면서 한반도 정세가 불안에 휩싸이는 상황은 중국으로서는 원치 않는 시나리오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이 중국의 거부권 행사 자제를 공개 요청한 것은 장성택 처형 등과 맞물려 북한 인권문제가 최근 국제사회의 핫 이슈로 떠오른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게 대체적인 해석이다.　1년에 걸친 조사 끝에 나온 보고서는 “북한에서 고문과 성폭행, 납치와 감금, 강제이주, 실종과 처형, 노예화, 영양결핍 등 온갖 반인류범죄가 만연해있다”고 고발하는 내용을 담았다. 심지어 마이클 커비 COI 위원장은 북한 정권을 독일의 나치정권, 캄보디아의 크메르루주에 버금가는 범죄정권으로 규정했다.　이 때문에 박 대통령의 대중국 호소는 기본적으로 북한의 열악한 인권현실을 중국이 외면하지 말아달라는 원칙론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굴기하는 중국이 보편적 인권문제에 대해 눈감지 말아달라는 당부를 함으로써 우회적으로 북한을 압박했다는 것이다.　특히 북한에 대해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나라가 중국이라는 점도 감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또 최근 ‘통일대박론’을 내세우며 강력한 통일드라이브를 건 박 대통령으로서는 북핵 문제에 더해 탈북사태 등으로 부각된 북한인권문제의 공론화에 불을 지핌으로써 통일의 당위성과 시급성을 국제사회에 과시하는 효과도 노린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중국이 탈북자 문제를 비롯한 인권에 관한 문제에 무척 민감한 점을 고려하면 이러한 주문이 일정 정도의 외교적 리스크를 안을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일각에서는 제기된다.　이와 함께 박 대통령이 이 인터뷰에서 북핵문제에 대한 ‘파일럿 프로젝트’라는 구상을 처음으로 제안해 눈길을 끌었다. 파일럿이란 시범케이스라는 의미로, 북핵문제 해결을 다른 유사한 사태를 관리, 해결하는 ‘전범’으로 삼자는 제안으로 여겨진다.　박 대통령은 “북한이 핵물질을 이전할 수도 있고 또 그 이전된 핵물질이 테러에 사용될 수도 있다”며 “이런 북한의 행동은 주변국에 핵무장 경쟁을 야기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다. 영변에 너무나 많은 핵시설이 집중돼 있기 때문에 거기에서 한 건물에서만 화재가 발생해도 체르노빌보다 더 큰 핵재앙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위험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핵문제가 심각한 이 한반도의 비핵화를 하나의 세계의 ‘파일럿 프로젝트’(시범사업)와 같이 만들어 전세계가 여기서부터 핵무기 없는 세상이 시작된다는 마음으로 힘을 모은다면 그것은 이뤄질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파일럿 프로젝트를 언급했다.　이는 북핵문제가 결국 국제사회의 공조를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는 인식의 연장선에서 나온 언급으로 풀이된다. 북핵 6자회담이 장기 공전하는 상황에서 비핵화시 경제보상이라는 신뢰프로세스의 진전을 위해 주요국이 공조할 수 있는 하나의 돌파구로서 ‘틀’을 마련해야 한다는 절박감에서 나온 제안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