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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우리 사회 복지의 현 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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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우리 사회 복지의 현 주소
  • 최재혁 <지방부 부국장 정선 태백담당>
  • 승인 2014.03.06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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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고를 비관한 세 모녀의 동반 자살은 ‘개인의 불행은 개인의 책임’으로만 인식하는 우리 사회 복지의 현 주소다. 서구 선진 사회에서 일반화 되어 있는 ‘복지는 국민의 권리’라는 개념은 한국에서 통하지 않는다. 가난한, 생황이 어려운 사람만 골라서 혜택을 준다는 ‘선별적 복지’를 정부 여당이 선전하면서 복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상당히 부정적이다. 비정하고 잔인한 측면도 있다. 복지는 '공짜', '다른 사람에게 고통 주는 혜택'이라는 인식만이 팽배하다. 복지 정책을 펴는 정부가 예산 부족을 이유로 복지 대상을 줄이려 하기 때문에 대상 선정 규정이 매우 까다롭고 복지 대상을 널리 발굴하는 식의 행정은 찾아보기 어렵다. 한때 복지 대상이었는데 자격을 박탈하는 일도 드물지 않다. 최근 서울에서 발생한 세 모녀의 동반자살 사건은 많은 이들의 가슴을 때렸다. 생활고를 견디지 못해 가족이 동반자살하는 사건이 늘어나는 것이 현실이지만 이들의 사연은 더없이 기구하고 비극적이었다. 암에 걸려 숨진 아버지, 아버지 치료비를 대다가 카드빚을 지고 신용불량자가 된 딸들, 고혈압과 당뇨에 걸린 두 딸을 부양해야하는 노모, 그녀마저 팔을 다쳐 식당일을 접으면서 내몰린 벼랑 끝. 그곳에서 그들은 번개탄을 피웠다.허술한 복지와 빈부 격차, 자살률 1위 등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입이 닳도록 했던 얘기들이 또 재탕되고 있다. 그러나 복지천국을 실현할 것 같았던 대선 공약들이 하나 둘 폐기되고, ‘3년 안에 국민소득 4만달러 시대를 열겠다’는 새로운 공약이 들어선 마당에 세 모녀의 죽음을 놓고 원론적인 해법을 얘기하는 것은 너무도 무의미할 것 같다. 3년 안에 4만달러와 4% 성장시대가 온다고 한들 그 수치를 체감할 인구는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세 모녀가 우리가 그동안 성장 수치들을 향해 무한 질주해온 대가를 대신 치렀는데도 정부가 밝힌 미래의 정책 기조가 이렇다면 현행 복지정책을 재정비하고 내실화 하는 차선책이라도 모색해야 한다. 우선 정책을 시행하는 일선 자치단체들의 분발을 촉구하지 않을 수 없다. 세 모녀는 신청만 하면 받을 수 있는 기초생활보장제의 혜택을 보지 못했다. 첫째딸의 경우 차상위계층 지원을 신청하면 최소한의 의료급여는 받을 수 있었다. 해당 구청은 이들이 신청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복지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당사자가 시행기관을 찾아 신청해야 하는 것이 현행 제도이기는 하지만 인지능력이 떨어지는 장애인이나 노약자들은 절차 밟기가 쉽지않다. 수요자를 찾아가는 행정을 펼치겠다고 목소리를 높여온 지자체들 아니었던가. 이렇게 지원제도가 있는 줄도 몰라 병원을 포기한 사람이 있는 반면, 의료급여 혜택을 남용한 나머지 병원을 돌아다니며 1년에 무려 33년치 약을 처방받은 사람도 있었다. 제도의 보완과 정비도 필요하다는 얘기다.정부는 혜택이 필요한 주민을 찾아 도움을 제공하는 대신 사회복지통합전산망에 현미경을 들이대 부정수급자를 색출하고 혜택을 박탈하는데 주력했다. 어디 사는지도 모르는 자식의 소득이 늘어나는 바람에 졸지에 부정수급자로 몰리고 지원이 끊겨 생활이 막막해진 노인들이 허다하다. 2010년 155만 여명이었던 기초생활수급자가 2013년에는 135만 명으로 줄었다. 정부는 빈곤층을 줄였다는 긍정적 수치라고 자평했지만 수급자에서 제외된 20만명 중 상당수는 형편이 전혀 나아지지 않은 상태로 혜택 박탈을 통고받았다. 실제로 기초수급자에서 탈락한 후 스스로 목숨을 끊은 노인도 있었다. 제도적 살인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는만큼 수급자 지정기준을 완화해야 한다. 차제에 복지담당 공무원의 확충도 추진해야 한다. 복지 업무가 급증하면서 담당 공무원들이 격무에 허덕이고 있다. 발품을 팔며 지원에서 누락된 주민을 찾아다니기에는 역부족이다. 지난해 업무 스트레스를 받던 복지 담당 공무원 세 명이 자살하기도 했다. 담당 공무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탓도 있겠지만 지자체마다 현재의 직렬·직위별 업무 분장이 합리적인지도 따져봐야 할 때다. 아직도 뼈빠지게 일하는 공무원과 빈둥대는 공무원이 한 조직에 공존한다는 지적이 많이 나온다. 기초 지자체마다 5급 사무관 자리가 늘어나고 무보직 6급 간부들도 양산되고 있다. 공무원 표를 의식한 선심성 시책이라는 지적을 받는다. ‘전 공무원의 간부화’가 추진되면 일선이 취약해질 수 밖에 없고, 민원인을 찾아가는 적극적 행정은 어려워 진다.복지는 당연히 국민의 세금으로 하는 것이다. 부자 증세를 외면하면서 복지를 부정적으로 먹칠하는 복지 철학이 춤을 춘다. 세계 최고의 자살률과 최저의 출산율이 현실이지만 이를 부끄러워하고 비통하게 여기면서 구조적 개혁을 외치는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세 모녀의 집단 자살이 또 발생할 수 있는 참혹한 현실이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세 모녀의 죽음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새삼 가르쳐준다. 21세기는 국민소득이 몇 만달러를 돌파했다고 웃고 박수치는 그런 시대가 아니다. 소외계층을 방치하고 사회적 약자를 외면한 상태에서 쌓아올린 숫자는 의미가 없다.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국가의 근본은 복지에 있다. 박근혜 정부가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는 국민행복시대도 복지에서 출발한다.정부는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린 빈곤층을 위해 좀 더 촘촘하게 사회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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