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매일신문
지면보기
 표지이미지
지방시대
지면보기
 표지이미지
무관심
상태바
무관심
  • 최승필 지방부국장 화성·오산담당
  • 승인 2016.09.28 14: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무관심은 원래는 정신의학분야에서 무감동, 무신경을 의미하는 용어다. 사회과학에서는 정치적 무관심의 뜻으로 사용된다. 정치적 상황에 대해 적극적인 반응을 나타내지 않고 주체적 행동도 결여된 의식이나 태도를 의미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정치적 상황에만 국한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회적 상황이나 세상사에 대해 아무런 반응을 표시하지 않는 무감동, 무기력, 비행동적인 태도도 무관심에 속한다.
지난 1993년 영국 전국을 충격에 빠트린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무관심이 불러온 일명 ‘리버풀의 38인 사건’이다.
그해 2월의 어느 날, 오후 3시 30분이 막 지난 시각이었다. 영국 리버풀 외곽에 자리한 보틀 스트랜드 쇼핑센터의 보안 카메라에 수많은 쇼핑객들이 장바구니를 들고 여기저기로 바삐 움직이고 있는 가운데 어린 아이 하나가 자기보다 큰 소년의 손을 잡고 있는 뒷모습이 찍혀있었다. 그야말로 형제가 나란히 서 있는 듯한 다정한 뒷모습으로, 평범한 장면이었다.
그로부터 이틀이 채 지나기도 전에 그 사진은 충격적인 사건의 전말로 드러나게 된다.
다정했던 그 장면은 사실 두 살배기 제임스 벌저가 스트랜드 쇼핑센터에서 유기된 직후이자, 사망하기 두 시간 전에 찍힌 화면이었던 것이다.
소년들은 제임스를 살해하기 전까지 2시간 동안 3km가 넘는 복잡한 거리를 배회하며, 교대로 제임스의 손을 잡거나 끌고 다녔다고 한다.
이 사건의 재판 과정에서 검찰 측이 내세운 38명의 증인들은 하나같이 그날 오후 세 사람이 함께 있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일상적인 하루를 보내고 있던 38명의 시민들은 제임스가 두려움에 떨고 있는 상태에서 소년들이 제임스를 구타하고, 거칠게 다루는 모습을 보았는데도 누구 하나 그 사건에 개입하거나 선뜻 그를 돕기 위해 나서지 않았다고 한다.
일부 증인들은 다가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고, 소년들은 “동생을 집으로 데려가고 있다”고 대답하거나 “제임스가 길을 잃은 거 같아 경찰서에 데려가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으나 이들이 간다고 하는 곳까지 함께 가주거나 경찰서에 전화를 한 사람도 없었다.
사건을 목격한 38인의 목격자들은 모두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이처럼 어떤 사람의 행동만 보고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보는 그대로 판단해 버리는 성향을 표현하는데 ‘위기윅의 함정에 빠지다’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위지윅(WYSIWYG)은 what you see is what you get(보는 대로 얻는다)의 약칭으로, 사용자가 현재 화면에서 보고 있는 내용과 동일한 출력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개념이다.
위기윅에 빠지게 되는 중요한 이유는, 어떠한 상황에 대해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인식하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요즘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외면하는 이른바 무관심병이 중국의 고질적인 사회문제로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중국 정부가 무관심병에 대한 처벌 규정을 만들거나 캠페인을 통해 개선하려고 나섰지만 도무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도로변에서 오토바이를 멈추고 전화를 걸고 있던 한 여성이 술에 취한 괴한으로부터 성추행 당하는 동영상이 SNS를 통해 전파됐다.
당시 이 같은 현장을 지나던 목격자가 9명이 있었으며, 이 중 4명이 남성이었으나 누구도 피해 여성을 도와주지 않았다.
이에 대해 중국 언론은 “여성이 저항할 수 없어 구조 요청을 했는데, 행인들이 도와주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또 지난해 4월 한 시골마을에서 길을 가던 어린이가 통학버스에 치었으나 20분 동안 수많은 행인이 지나갔지만 그 누구도 쓰러져 있는 아이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결국 아이는 숨졌다고 밝혔다.
석 달 뒤에는 한 여성이 다리에서 투신하는 사건이 발생했으나 많은 시민들은 구경만 했다며 곤경에 처한 사람을 못 본 체하는 이른바 ‘무관심병’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중국 정부가 나서서 위험에 처한 사람을 돕지 않으면 처벌하고, 언론을 통해 각종 캠페인성 보도를 쏟아내지만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지난 9일 불이 난 서울 마포구의 5층 건물에 뛰어들어 잠을 자고 있던 주민들을 깨워 탈출시키다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초인종 의인 고(故) 안치범 씨의 살신성인이 요즘 우리 사회를 훈훈하게 하고 있다. 성우를 꿈꾸던 28살의 평범한 청년이었던 안 씨는 평범하지 않은 정의로운 선택으로 많은 이들의 소중한 생명을 구했다.
공자(孔子)는 “뜻 있는 선비와 어진 사람은 살기 위해 인(仁)을 해치는 일이 없고, 오히려 자신의 목숨을 바쳐 인(仁)을 행할 뿐이다”고 했다.
살신성인은 반드시 목숨을 바치는 것뿐 아니라 자신의 고통을 감수하며, 이웃에 봉사하거나 자신의 이익을 양보해 남을 위하는 경우에도 사용한다.
무관심은 인간의 의식을 병들게 한다. 무관심은 통합과 소통을 방해하고, 의로운 일을 멀리하게 한다. 안 씨와 같은 의인들의 정의로운 선택이 무관심으로 팽배한 이시대의 현대인들에게 자기반성의 계기가 되길 기대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