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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59] 노룩패스와 ‘제 옷은 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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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59] 노룩패스와 ‘제 옷은 제가...’
  •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 승인 2017.06.07 14: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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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길원 大記者 세상읽기]

정치와 권력이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와 존중마저 지키지 못한다면 그러한 정치와 권력은 존재의 이유와 가치를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지난달 다소 낯선 용어가 신문방송을 타고 인터넷을 달궜다. 이른바 ‘노룩패스(No look pass)’다. 농구 경기 등에서 시선의 반대방향으로 볼을 패스하는 스포츠 용어다. 노룩패스를 마술만큼이나 잘했던 미국 LA 레이커스의 어빈 존슨은 ‘어빈’ 대신 ‘매직'(마술) 존슨으로 불렸다.
 
바른정당 김무성 의원이 마술에 가까운 노룩패스의 기술을 선보인 탓에 스포츠 용어가 정치용어처럼 회자되고 있다.

김 의원은 지난달 23일 일본 여행을 마치고 귀국하던 길에 김포공항 입국장에서 수행비서의 얼굴도 쳐다보지 않고 바퀴 달린 여행 가방을 밀어 보냈다. 시선은 정면을 응시한 채 오른쪽 45도 방향의 비서를 향해 여행 가방을 밀어 보내 화제가 된 것이다.
 
김 의원의 이러한 행위는 노룩패스에 비유되며 우리나라는 물론 해외 방송에서까지 보도되거나 패러디 되면서 유명세를 탔다.

미국 NBC 토크쇼 ‘지미 팰런의 투나잇 쇼’에서 지미 팰런은 “한국의 한 정치인이 공항에서 입국하는 장면이 엄청난 화제가 되고 있다”며 “그는 마치 담배꽁초를 버리듯 그의 캐리어를 ‘휙’하고 던졌다”고 비꼬았다.

전 세계 축구소식을 다루는 웹사이트 블리처리포트 풋볼의 공식 인스타그램에도 패러디가 올랐다. 블리처리포트 풋볼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의 얼굴 사진을 합성한 영상을 게시하고 캐리어에는 유로파리그 우승 트로피를 얹어 놓았다.

한 때는 대선 유망주로 오를 만큼 한국의 유명한 정치인인 김 의원의 노룩패스가 국제적 조롱거리가 된 것이다.

그러나 국민들을 더욱 실망시킨 것은 자신의 노룩패스에 대한 김 의원의 인식과 대응방식이다. 외신에까지 보도된 자신의 행위에 대해 김 의원은 ‘그게 뭐, 어째서?’였다.

김 의원은 다음날 “수행원이 보여서 밀어준 것인데 내가 왜 해명해야 하나. 관심도 없고 해명할 생각도 없다”고 했다.
 
권위주의가 몸에 밴 슈퍼갑질이라는 비난이 터져 나온 것도 무리가 아니다. 마치 탄핵된 뒤 재판을 받고 있는 박근혜가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느냐’하는 것과 정도의 차이는 있을망정 권력자들의 비천한 선량의식을 압축하여 보여준 한 단면이 아닐 수 없다.
 
“관심도 없고, 해명할 생각도 없다”는 단정적 말에서 “너는 내 비서이고 나는 너의 상관이자 권력자니까 당연히 그래도 된다”는 완고하고 천박한 인식의 밑바닥을 보는 것 같다.

이러한 천박한 인식이 어디 김 의원 개인에 국한된 문제이겠는가. 한 때 ‘보좌진이 뽑은 함께 일해 보고 싶은 의원’에 선정되기도 했던 김 의원이 이 정도 임에야 더 무슨 말이 필요할까 싶다.
 
정치와 권력이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와 존중마저 지키지 못한다면 그러한 정치와 권력은 존재의 이유와 가치를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몇 년 전만해도 김 의원과 같은 이러한 행위는 별로 이상할 게 없었고 갑질로 비추지도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김 의원의 퉁명스런 말처럼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세상은 무서운 속도로 변하고 있다. 과거 100년의 변화가 현대사회에서는 1년의 시간도 걸리지 않는다.

권력자와 국민의 관계는 상하관계에서 실질적 수평관계로 전환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물결에 동참하면 생존하는 것이고 변화를 거부하면 소멸하는 것이 인간을 포함한 자연의 법칙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와 인기가 역대 최고를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낯간지러운 칭송으로 비칠까 우려되지만 그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가 높은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정권초창기의 기대나 역대 최악의 전임자 효과도 있었겠지만 필자는 그에게서 느껴지는 사람냄새가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를테면, 경호원이 상의를 받아주려고 하자 “옷 벗는 정도는 제가...”라며 직접 웃옷을 벗고 테이블에 앉는 그러한 모습들에서 국민들은 더 높이 보는 것이다. 그게 설령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국민들은 그러한 별것도 아닌 모습에 목말라하고 있는 것이다. 높이 오르려거든 자신을 낮추라고 했다. 빠르게 변하는 시대의 물결은 권력자들에게 겸손해야 생존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전국매일신문]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sgw@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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