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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61] ‘천한 것들’ 이제는 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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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61] ‘천한 것들’ 이제는 변해야 한다
  •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 승인 2017.07.19 15: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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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길원 大記者 세상읽기]

-약자에게는 신이나 된 것처럼 군림하고, 강자에게는 더 없이 비굴한 천한 자본의 천박한 인식이 우리사회가 버티고 견디어 낼만한 수위를 넘어서고 있다.-

“XX 같은 새끼, 너는 생긴 것부터가 뚱해가지고. 자식아, 살쪄가지고 미쳐가지고 다니면서. XX 너는 월급 받고 일하는 놈이야. 잊어먹지 말라고. 너 한테 (내가)돈을 지불하고 있다는 거야 인마. 알았어?”
 
최근 갑질 논란으로 유명세를 탄 국내 모 제약회사의 회장이 운전기사에게 한 폭언의 한 대목이다.

천박한 인격이 이 보다 더 이상 적나라하게 드러날 수 있을까 싶다. 오로지 몇 푼의 돈이 있다고 하여, 자신이 급여를 제공하는 입장에 있다고 하여 쏟아 부은 이 욕설은 도저히 한 재벌회장의 발언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다.

하지만 서글프게도 한국사회에 존재하는 엄연한 현실이고 이러한 천박한 갑질은 시간이 흐르면서 줄어들기는커녕, 끊임없이 재생산되며 더욱 확대되어가고만 있다.

지난 2015년에는 간장을 만드는 한 회사의 명예회장이 운전기사를 상습폭행해 물의를 빚은데 이어 한 해 전에는 어느 재벌가의 딸이 과자를 봉지채 줬다는 이유로 승무원을 폭행하고 비행기를 회항시켜 전세계적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닭튀김을 팔아 돈을 번 회장님이 여직원을 성추행하여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있고, 피자를 팔아 돈 좀 번 회장님은 자신이 건물 안에 남아 있는데 문을 잠궜다며 경비원을 두드려 패더니 이번에는 친인척이 관여한 치즈를 비싸게 공급한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또 대한민국보다 외국에서 더 잘 알려진 삼성의 이재용 회장은 대통령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다.
 
약자에게는 신이나 된 것처럼 군림하고, 강자에게는 더 없이 비굴한 천한 자본의 천박한 인식이 우리사회가 버티고 견디어 낼만한 수위를 넘어서고 있다.
 
천한 갑들도 을로 위장하는 때가 있다. 자신들의 추한 행위가 드러나 사회의 지탄을 받게 될 때다. 천한 갑들은 경영일선에서 잠시 물러나 공분이 사그라지기를 기다라며 고개를 숙인다. 설혹 감방에 가더라도 정부의 사면 및 복권이 있을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들이 기자회견을 하면서 고개를 숙일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자신의 잘못된 행위가 아니라 곳간의 돈이다. 돈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비굴한 모습을 보이며 잠시 고개를 숙이는 것이다.
 
지금이야 권좌에서 겨나 재판을 받고 있지만 박근혜가 탄핵되기 전에 문득 스쳐 지나던 상념이 떠오른다. 길거리의 노숙자와 박근혜가 신 앞에 섰을 때 신은 누구의 손을 잡아 줄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그 상념의 대상이 박근혜에서 회장님으로 바뀌었지만 노숙자의 손을 잡아줄 신을 위로로 삼기에 신은 너무 멀고 현실은 추하기 그지없다.

천박한 갑들의 인격이 천한 것은 우선은 그들의 유전자가, 다시 말해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본성이 그렇다고 할 수는 없다. 모든 인간은 자기 우선, 자기우월의 본능이 내재하기 때문이다. 박근혜가 노숙자를 비웃을 수 있듯이 노숙자도 박근혜를 비웃을 수 있지만 그 힘을 누가 더 갖고 있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비뚤어진 재벌의 모습은 우리가 안고 있는 부의 대물림이 전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축에 속한 데서 찾을 수 있다.

미국이나 일본 등은 100대 부호중 창업자 비율이 60-90%인데 반해 우리는 100대 부호 가운데 창업자 비율이 30%에도 미치지 못한다. 상속에 의한 재벌 2-3세가 대부분이고 이들 재벌 2-3세들이 고착화된 계급 사회를 만들어 군림하고 있는 것이다. 능력도 인격도 사라진 ‘머니 머신’들의 사회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외환위기 이후 소득의 상위 집중이 급격하게 높아진 것도 주요 원인가운데 하나로 꼽을 수 있다.

우리의 상위 10% 소득집중도는 IMF 이전인 1995년에만 해도 29.2%로 미국(40.5%)은 물론 싱가포르(30.2%), 일본(34%), 영국(38.5%), 프랑스(32.4%) 등 대부분의 국가보다 낮았다.
 
하지만 2012년 우리의 상위 10% 소득집중도는 44.9%로 급속히 높아져 미국(47.8%)을 제외하고 가장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의 경제성장 성과가 대부분 상위 10% 소득층에 집중적으로 배분됐다는 의미다.
 
부가 정당성을 갖기 위해서는 부의 축적과 부의 행사가 정당해야 한다. 천박한 자본가는 자신은 물론 사회를 천박하게 만든다. 천한 자본가들에 대한 엄정한 법 집행이 필요한 이유다.

 

[전국매일신문]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sgw@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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