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매일신문
지면보기
 표지이미지
지방시대
지면보기
 표지이미지
우리 사회의 ‘주홍글씨’
상태바
우리 사회의 ‘주홍글씨’
  • 최승필 지방부국장
  • 승인 2018.03.11 11: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승필 지방부국장

미국 할리우드에서 시작된 성폭력 고발 캠페인인 ‘미투(#me too)’ 운동이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미투운동(Me Too movement)은 지난해 10월 미국에서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폭력 및 성희롱 행위를 고발하기 위해 소셜미디어에서 인기를 끌게 된 ‘나도 그렇다’는 뜻의 Me Too에 해시태그(#Me Too)를 다는 행동에서 시작됐다.

이 해시태그(hash tag) 캠페인은 사회운동가 타라나 버크가 지난 2006년 최초로 사용했던 것으로, 미국 전역을 들썩이게 만들었던 할리우드 유명 영화제작자 하비웨인스타인의 성추문 사건 당시 영화배우 앨리사 밀라노에 의해 폭로된 이후 대중화됐다.
 
밀라노는 여성들의 트위터에 여성혐오와 성폭행 등의 경험을 공개, “당신이 성폭행 피해를 봤거나 성희롱을 당했다면 주저하지 말고 여기 트위터에 ‘미투(Me Too)’ 라고 써 달라”고 호소했다. 그의 호소는 어마어마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밀라노가 제안한지 24시간 만에 50만 명이 넘는 이용자가 그의 트위터에 리트윗으로 지지를 표명했고, 8만여 명이 해시태그를 달아 자신의 성폭력 피해 경험을 고백하게 하는 등 미투운동이 전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힘을 얻게 됐다.

한국의 미투운동은 지난 1월26일 서지현 창원지방검찰청 통영지청 검사의 폭로로 촉발되면서 법조계는 물론, 연극계, 문단, 연예계, 영화계, 가요계, 종교계를 넘어 정치계로까지 빠르게 확산되면서 온 사회가 충격에 빠졌다.
 
그 동안 피해자들의 증언으로 거론된 인물만도 3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난 가운데 성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던 외국인 이주여성들의 미투운동도 가세하고 있다.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의 공통점은 피해자와의 관계에서 우위(위계·위력 등에 의한 성폭력 및 성추행)에 있는 ‘권력형’이었으며, 그래서 피해자들은 자신들에게 돌아올 불이익이 두려워 상황이 발생할 당시에는 가해자를 고발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처럼 미투운동이 사회 전반에 걸쳐 확산되면서 피해자들의 증언이 잇따르고 있으나 피해자로부터 지목된 ‘미투’ 가해자들의 공통점은 혐의를 부인하거나 ‘기억나지 않는다’, ‘합의에 의한 행위’ 등을 주장하며, 책임을 회피하려는 듯한 공통적인 패턴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 ‘자숙하겠다’, ‘법적·사회적 모든 책임을 회피하지 않겠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그들은 일단 자신들의 혐의에 대해 부인한 뒤 결정적인 폭로가 나올 경우 뒤 늦게 피해자와 국민들에게 사과하거나 반성의 기미를 보이고 있지만 국민들은 ‘진정성’을 의심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의 이중적인 주장과 변명으로 일관하는 모습은 진정성 있는 사과를 원하는 피해자를 한 번 더 유린, 국민들로부터 공분을 사고 있는 것이다.
 
미국 소설가 너새니엘 호손(Nathaniel Hawthorne)의 대표 소설인 ‘주홍글씨(The Scarlet Letter)’가 생각난다.
 
1804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 세일럼에서 태어난 호손은 보스턴 세관에서 검사관으로 근무하정권이 바뀐 뒤 관직에서 강제로 물러난다. 그는 이에 불만을 ‘주홍글씨’의 서문격인 ‘세관’을 통해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집필활동을 시작, 1850년 대표작 ‘주홍글씨’를 발표했다.
 
호손은 청교도 신자로, 죄와 인간의 위선에 대한 통찰력이 담겨있는 이 작품은 현대에 들어 모든 과실에 대한 낙인이 ‘주홍글씨’라고 불리게 된 계기를 만들 작품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청교도 목사 딤스데일의 죄책감과 그와 간음한 헤스터 프린의 순수한 마음을 대비시켜 17세기 미국 청교도들의 죄와 위선에 대해 말하고 있다.
 
간음한 헤스터에게 ‘A’라는 붉은 낙인을 찍는다는 설정에서 붉은 낙인 ‘주홍글씨’는 인간을 얽매는 굴레를 뜻한다.
 
헤스터는 학자인 남편보다 먼저 미주로 이사해 살림을 차렸으나 남편이 2년여 동안 오지 않자 불륜에 빠져 임신을 한 여성이다.
 
작품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17세기 미국 뉴잉글랜드에서 간음혐의를 받은 피고 헤스터에 대한 재판이 열린다. 치안판사들은 헤스터와 간음한 상대 남성이 누구인지를 묻지만 그녀는 끝까지 답변하지 않는다.

당시 청교도의 법률에 따라 그는 죽음을 면치 못했겠지만, 남편의 생사도 알지 못한 채 오랫동안 떨어져 있음이 참작돼 가슴 한 복판에 금실로 수놓은 ‘간통’을 뜻하는 ‘A’라는 낙인을 단 채 처형대 위에 서게 됐다.
 
자신의 불륜으로 태어난 딸 펄을 두 팔에 안은 채 처형대에 서서 모욕을 당하는 것으로 감형을 받았으나 대중들의 시선은 차가웠다.

그 후 헤스터는 삯바느질을 해서 딸과 단 둘이 먹고 사는 어려운 처지였지만 가난한 이웃들을 돕기 시작한다. 그녀의 도움을 받는 이웃들은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은 채 냉담한 반응을 보이는 등 치욕의 나날을 보내지만 고통을 인내로 받아들이는 용기로 삶을 이어간다.

헤스터를 간음한 딤스데일 목사는 떳떳이 죄를 밝히지 못하고 명망 있는 인물로 추앙받게 되자 더욱 심하게 자책하느라 몸과 마음이 쇠약해져 간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괴로움을 감내하기 위해 괴로워하는 이들을 위로·구원해 주는 소명을 다한다.
 
헤스터가 죽은 줄 만 알았던 전 남편 로저 칠링워스가 돌아와 헤스터 간음한 상대를 찾겠다고 결심한 뒤 딤스데일에게서 수상한 점을 발견하고, 결국 헤스터의 불륜상대가 목사임을 알게 된다.
 
마침내 헤스터와 딤스데일은 먼 곳으로 도망하기로 결심하지만 쇠약해진 딤스데일은 새 장관이 임명되던 날 설를 한 뒤 대중들 앞에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헤스터의 품에서 숨을 거둔다.
 
호손은 이 작품을 통해 “이 가엾은 목사의 비참한 경험이 우리에게 깊은 감명을 주는 몇 가지 교훈 가운데 다만 이것만을 적어보려 한다”며 “참되어라! 참되어라! 참되어라! 최악의 죄는 아닐지라도 그 것을 통해 최악의 죄를 짐작할 수 있는 어떤 특징을 이 세상에 숨기지 말고 밝혀라!”고 주장했다.
 
최근 미투운동의 확산은 성범죄의 피해자임에도 불구, 가해자의 지위나 권력 때문에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사회분위기를 ‘용기’를 통해 바꿀 수 있는 긍정적인 변화다. 그 변화의 완성과 우리사회에 새겨진 ‘주홍글씨’를 지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진실된 고백’과 ‘자기반성’, ‘속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