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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7, 아름다운 역사로 기록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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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7, 아름다운 역사로 기록되길
  • 최승필 지방부국장
  • 승인 2018.04.29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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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필 지방부국장

2018년 4월 27일, 세계의 이목이 판문점 평화의 집으로 쏠렸다. 문재인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위원장이 이날 오전 9시30분 판문점 군사분계선(MDL)에서 역사적인 만남이 이뤄진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은 분단 이후 북한 최고지도자의 첫 방남이라는 상징성이 있는 데다 한반도 평화 정착의 중대한 전기가 됐다.
 
한국과 북한 간 역사적인 만남의 시작은 18년 전인 지난 2000년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베를린 선언을 통해 “한국정부는 북한이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줄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고, 이에 극심한 식량난을 겪고 있던 북한이 대북유화정책을 펼친 김 대통령의 이 같은 제안을 수용하게 됐다.
 
1차 정상회담 후 발표한 ‘6·15남북공동선언’은 이산가족 상봉과 금강산 관광 등 남북교류의 계기가 됐다.
 
이어 2차 정상회담은 남북관계가 해빙무드였던 노무현 정부시절인 2007년 10월2~4일 성사됐다. 당시 노 대통령이 걸어서 군사분계선을 넘는 역사적인 장면도 연출됐다.
 
양국정상은 ‘10·4 남북정상선언문’을 채택하며 한반도 평화와 통일 실현을 위한 다양한 합의를 도출했다.

그러나 이 같은 2차례의 남북정상회담 이후 성과를 보면 참담하기 그지없다.

1998년 2월25일 김대중 대통령 취임 이후 같은 해 11월18일 현대그룹 금강산 관광사업 협의성공으로 금강산 관광이 시작됐으나 99년 6월15일 북한에 의한 제1연평해전 발발한 뒤 북한은 9월3일 북한 서해 북방한계선(NLL) 무효화를 선언했다.
 
이어 2000년 3월9일 김 대통령은 햇볕정책을 공식화 하고 남북경협 제안(베를린 선언)한 뒤 6월9일 현대상선 대북송금 및 분단 후 첫 김정일과 남북정상회담을 가졌고, 7월29일 6·15 남북공동선언을 통해 낮은 단계에서의 연방제 통일지향에 합의했다.
 
또, 같은 해 7월29일 남북장관급회담을 통해 판문점 남북연락사무소 재개를 결정했고, 8월15일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성사됐다.
 
그러나 같은 해 11월7일 조지W. 부시미대통령 당선된 뒤 2001년 3월13일 5차 남북장관급 회담 불발에 2002년 6월29일 제2연평해전 발발, 2003년 1월10일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하게 된다.
 
또, 2003년 2월25일 노무현 대통령 취임 이후 6월30일 개성공단 착공식에 이어 2005년 9월19일 9·19성명과 함께 북한은 제4차 6자회담 중 NPT와 국제원자력기구(IAEA) 복귀를 약속했다.
 
그러나 2006년 10월9일 북한 1차 핵실험을 실시한 뒤 2007년 2월13일 2·13선언을 통해북한은 핵시설 폐쇄를 약속하고, 6자회담 참가국은 북한을 지원키로 했으며, 8월2~3일 남북 고위급접촉을 통해 당시 김만복 국정원장이 방북하게 된다.
 
8월8일 2차 남북정상회담 개최키로 하고 같은 달 28~30일 평양에서 진행키로 했으나 앞서 7~12일 북한의 수해 발생하고, 18일 북한이 회담연기를 요청했다.
 
같은 해 10월4일 남북정상선언문을 발표한데 이어 11월27일 평양에서 남북국방장관회담을 통해 서해 국사적 긴장 완화에 대해 논의한 뒤 2007년 7월11일 이명박 대통령 취임 후 2008년 2월25일 금강산 관광객 피격사건 발생, 9월21일 북한 2차 핵실험이 실시됐다.
 
2010년 3월26일 천안함 폭침사건이 발생한 뒤 4월8일 우리 정부는 금강산관광 사업을 동결하고, 2012년 12월12일 북한이 장거리 로켓을 발사, 인공위성 궤도 진입에 성공하고, 2013년 2월12일 북한의 3차 핵실험이 실시됐다.

같은 달 2월25일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후 2014년 3월28일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로 ‘선 핵폐기 후 대화’라는 드레스덴을 선언했으나 2016년 1월6일 북한은 또 다시 4차 핵실험을 실행한다.
 
우리 정부는 같은 달 22일 북한을 제외한 5자 회담을 제안한 뒤 2월10일 개성공단을 폐쇄하기에 이른다.

이처럼 북한은 합의된 약속을 깨고 핵개발 및 핵실험을 계속했으며, 연평해전과 천안함 폭침, 목함지뢰 사건 등 다양한 도발을 시도하며 한반도에 전쟁의 위기감을 고조시켰다.

그러나 11년 만에 성사된 이번 제3차 남북정상회담은 그 동안의 분위기와는 확연히 다르다.
 
MDL 위에서 남북 정상이 조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북한 최고 지도자가 남한 땅을 밟은 것도 역시 최초다.

그리고 북한 최고 지도자가 우리 육·해·공군의 사열을 받은 것도 최초다. 이 자체로도 남북 분단사의 한 획을 긋는 장면이다.
 
‘평화,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남북 정상회담은 두 정상의 역사적인 만남의 순간부터 오전 회담, 각자 오찬에 이어 기념식수 및 산책, 오후회담, 합의문 서명, 발표, 만찬, 환송행사 등으로 진행됐다.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진행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선언’을 통해 양 정상은 한반도에서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렸음을 8000만 우리 겨레와 전 세계에 엄숙히 천명했다.
 
우선, 남과 북은 남북 관계의 전면적이며, 획기적인 개선과 벌전을 이룩함으로써 끊어진 민족의 혈맥을 잇고 공동번영과 자주통일의 미래를 앞당겨 나갈 것이라고 선언 했다.
 
이를 위해 당국과 국회, 정당, 지자체, 민간단체 등 각계 참가하는 민족공동행사를 적극 추진, 화해와 협력의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남북 적십자회담을 개최, 이산가족·친척상봉을 비롯한 제반 문제들을 협의하기로 하고, 당면해 오는 8월15일을 계기로 이산가족·친척 상봉을 진행키로 했다.
 
남과 북은 또, 한반도에서 첨예한 군사적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전쟁 위험을 실질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공동 노력하기로 했다.
 
당면해 5월1일부터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확성기 방송과 전단살포를 비롯한 모든 적 행위들을 중지하고, 그 수단을 철폐하며, 앞으로 비무장지대를 실질적인 평화지대로 만들어 가기로 했다.
 
이밖에 한반도에서 비정상적인 현재의 정전상태를 종식시키고, 확고한 평화체제를 수립하는 것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역사적 과제라며, 남과 북은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적극 협력할 것을 선언했다.
 
세계인들이 바라본 4·27의 잊지 못할 순간순간들이 평화를 위한 아름다운 역사로 기록되길 간절히 염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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