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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길 끄는 노(No)스펙(spec) 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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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길 끄는 노(No)스펙(spec) 전형
  • 최승필 지방부국장
  • 승인 2019.09.22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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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필 지방부국장
<전국매일신문 최승필 지방부국장>

‘스펙’은 영어단어 ‘Specification’의 준말이다. 직장을 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학력과 학점,토익 점수를 합한 것 등 서류상의 기록 중 업적에 해당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본래 ‘제품 특징’을 가리킬 때 흔히 사용되는 말이지만 마치 제품 특징처럼 구직자들이 취직을 하기 위해 갖춰야 할 자신의 능력을 증명할 수 있는 자격증이나 시험 점수 등을 가리키는 말로, 지난 2000년대 초반부터 이 같은 의미가 확대 사용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실제로, ‘스펙’이라는 단어는 2004년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신어 자료집에 등록되어 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구직자 자신의 능력을 증명할 수 있는 요소로, 대부분의 기업과 많은 대학들은 이를 바탕으로 입사 및 입학 지원자를 평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스펙은 취업은 물론,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많은 젊은이들에게 큰 부담요소로 작용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지난 2010년 3월 고려대 경영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이던 한 여학생이 정경대학 후문에 ‘끊임없는 불안감과 경쟁만 조장하는 대학을 그만 두겠다’는 선언이 담긴 장문의 대자보를 게시했다.
 
그는 자신을 “G(글로벌)세대로 ‘빛나거나’ 88만원 세대로 ‘빚내거나’ 그 양극화의 틈새에서 불안한 줄다리기를 하는 20대, 뭔가 잘못된 것 같지만 어쩔 수 없다는 불안에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20대”라고 표현했다.
 
이어 “친구들을 넘어뜨린 것을 기뻐하면서 앞질러 가는 친구들에 불안해하면서 대학 관문을 뚫고 25년간 트랙을 질주했다”고 덧붙였다.
 
특히, 그는 대학과 기업, 국가를 향해 “이름만 남은 ‘자격증장사 브로커’가 된 대학, 그것이 이 시대 대학의 진실”이라며 “국가와 대학은 자본과 대기업의 ‘인간 제품’을 조달하는 하청업체가 됐다”고 말했다.

또, “(새 자격증도) 10년을 채 써먹을 수 없어 낡아 버려지고, 우리들은 또 대학원에 유학에 돌입한다”며 “큰 배움 없는 ‘大學’ 없는 대학에서 우리 20대는 ‘적자세대’가 돼 부모 앞에 죄송하다”고 했다.
 
그는 “대학과 자본의 이 거대한 탑에서 내 몫의 돌멩이 하나가 빠진다 해도 탑은 끄떡없을 것이라는 것을 알지만 더 많이 쌓기만 하다가 내 삶이 시들어버리기 전에 쓸모 있는 상품으로 간택되지 않고, 인간의 길을 선택하겠다”며 대학을 그만 두겠다는 굳은 의지를 밝혔다.
 
당시 ‘88만원 세대’의 한 여학생의 이 같은 항변은 무분별한 ‘스펙 쌓기’를 조장하는 우리사회를 향해 경종을 울렸다.
 
“나의 부모가 누구인가에 따라 나의 노력의 결과가 결판이 나는 식으로 흐름이 바뀌어 나간다. 우리 사회의 가장 근원적 문제라고 본다”
 
조국 법무부장관이 지난 2016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시절 한 강연에서 한 말이다.

그러나 조국 장관의 딸이 필기시험 한 번 없이 외고와 명문대, 의학전문대학원을 이른바 ‘금수저 전형’으로 내달렸다는 의문이 제기되면서 무분별한 ‘스펙 쌓기’에 대한 논란으로 온 사회가 들썩이고 있다.
 
평소 ‘공정’을 강조해 왔던 조 장관의 자녀의 자기소개서에서 매우 특별하고 남다른 ‘스펙’이 보였고, 그를 둘러 싼 ‘스펙’에 대한 의혹들이 부적절한 ‘특혜’로 드러나면서 많은 젊은이들을 좌절케 했다.
 
“스무 살이 되어서도 꿈을 찾는 게 꿈이어서 억울하다”며 “더 거세게 채찍질 해봐도 다리 힘이 빠지고 심장이 뛰지 않는다”고 항변한 ‘88만원 세대’ 여대생의 자괴감 섞인 자성의 대자보가 생각난다.
 
학력과 경력 등 스펙 위주의 전형에서 벗어나 오로지 청년 정책에 대한 비전만으로 선발하는 ‘경기도 청년비서관 노(No)스펙(spec) 전형’이 눈길을 끌고 있다.
 
경기도는 지난 16일부터 18일까지 3일간 ‘경기도 청년비서관’ 전형 지원자를 모집한 결과 1명 선발에 106명이 접수해 경쟁률 106대 1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도는 일반 경력직 채용의 평균 경쟁률이 5대 1 수준임을 고려할 때 매우 이례적인 접수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도는 지원자들이 제출한 정책제안서를 토대로, 서류심사를 진행한 뒤 다음달 1일 진행될 공개발표면접에 참여할 지원자를 선발할 계획이다.
 
공개 발표면접은 일반 청중단 50명 앞에서 정책제안서를 발표한 뒤 질의응답을 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도는 서류심사와 공개발표면접 등을 토대로 최종합격자를 선정, 다음 달 중으로 발표할 예정이다.
 
‘청년비서관’은 5급 공무원 상당으로, 경기도 청년정책 수립 및 시행을 위한 이재명 지사의 정책결정 보좌와 다양한 분야의 청년관련 사업을 발굴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도 관계자는 “학력이나 경력에 구애받지 않고 공정한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노(No)스펙(spec) 전형으로 실시한 이번 전형에 청년들이 높은 관심을 보였다”며 “이번 전형을 통해 실력과 열정, 비전을 갖춘 청년이 선발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스펙’을 이용한 취업시장의 평가 방법이 조금이나마 개선되길 기대해본다.

최승필기자 (choi_sp@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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