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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133] 지금은 인고의 시간을 견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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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133] 지금은 인고의 시간을 견딜 때다
  •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 승인 2020.04.08 10: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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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길원 大記者 세상읽기]

아직은 긴장을 풀 때가 아닌데도 ‘설마’하는 안일한 생각이 마치 코로나19처럼 은밀히 확산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벗님에게.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 했던가요. 요즘의 계절을 춘래불사춘이라는 단어 이상으로 적확히 표현한 단어가 또 있을까 싶네요.

얼마 전에는 병아리 조동아리 같던 개나리가 홀로 피더니 이젠 지는 벚꽃이 바람에 날리고 있습니다. 흐드러지게 피었던 남도의 산수유도 지고 매화도 이미 꽃잎을 모두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맘때면 꽃샘추위에 떠는 꽃잎이 안타까워 가슴 시렸지만 이젠 보는 이 없이 홀로 피고 지는 꽃들이 안타까운 날들입니다.

안녕하신지요. 절실한 심정으로 안부를 묻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우리의 일상생활마저 바꿔버린 지금, 그저 별고 없기만을 바랍니다.

며칠 전 “운영하던 작은 식당 문을 닫았다”며 한숨을 내쉬던 벗님의 전화 목소리가 지금 이 순간에도 이명처럼 울리고 있습니다. 그때 나에게 했던 님의 말이 잊혀지지 않네요. “나야 어떻게든 살아보겠지만 10여 년간 함께 일해 온 식구나 다름없는 종업원 아주머니를 내보냈는데 그 일만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는다”고 했잖아요. 아이들 뒷바라지며, 남편의 약값이며, 님은 구구절절 내보낸 아주머니의 속사정을 헤아리며 가슴 아파했었지요.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고, 님은 “왜 세상은 어려운 사람에게 더 가혹한지 모르겠다”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었죠.

‘어려운 이에게 더 가혹한 세상’에 나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분노하는 것도, 슬퍼하는 것도 사치스럽게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목숨을 담보로 해야 할 만큼 너 나 없이 모두가 어려운 시기입니다. ‘코로나19 전염보다 굶어 죽을까 더 두렵다’는 말도 가슴에 와 닿는 요즘입니다.

그래도 우리가 사는 데까지는 이 악물고 버티어, 이겨내는 것 말고는 달리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위로가 되지 않겠지만 나만 죽을 만큼 힘든 것이 아니잖아요. 나도 힘들고 너도 힘든 세상이니까요.

하지만 화가 나는 것은 정작 다른 데 있습니다. 모두가 힘든 이때 이웃을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신천지가 조용해지자 이번에는 일부 교회가 그 대상이 되고 있잖아요. 사랑의 무슨 제일 교회 인가하는 곳에서는 당국의 강력한 권고와 제지에도 불구하고 현장 예배를 강행하고 있더군요. 교회에서 예배를 강행하다 코로나19 감염자가 나오는데도 말입니다. 그러면서 종교탄압이라고 항의를 한다더군요.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며칠 전에는 또 서울의 유명한 클럽에서도 확진자가 나와 비상이 걸렸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내 목숨이니 내가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것은 아니지 안는가 싶어요. 나로 인해 공동체가 위험에 빠질 수 있다고는 왜 생각을 하지 못하는지요.

더구나 지난 주말 정부가 강화된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을 오는 19일까지로 연장했음에도 시민 이동량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다행히도 최근 들어 신규 확진자가 하루 50명 이내로 떨어졌다고 합니다. 미국에서는 사망자 수 만해도 1만 명을 넘어서고, 일본도 결국은 코로나 긴급사태를 선포할 만큼 코로나19의 위기상황이 세계적으로 증폭되고 있지만 우리는 조금씩 안정 단계에 접어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방역 한류’라는 말이 나올 만큼 우리나라 의료진의 대응이 국제적 모범이 되고있는 것도 사실이고요.

그래서일까요. 아직은 긴장을 풀 때가 아닌데도 ‘설마’하는 안일한 생각이 마치 코로나19처럼 은밀히 확산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어요.

벗님!. 조금만 더 참고 이겨내도록 합시다. 길어지는 사회적 거리 두기에 피로감이 쌓이고 경제 상황이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지만 그럴수록 함께 견뎌내야 하지 않겠어요. 자칫 그동안의 수고가 한순간 무너지게 할 수 없다는 데는 님도 동의하리라 믿습니다.

힘들고 어렵더라도 지금은 모두가 인고의 시간을 견뎌야 하는 때입니다. 벗님도 다시 식당 문을 열고 맛있는 음식으로 손님을 맞고, 식구나 다름없던 종업원 아주머니도 다시 불러들이는 그 날을 위해서 말입니다. 님의 맛있는 요리 솜씨를 맛보러 가는 날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전국매일신문]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sgw3131@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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