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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식 칼럼] 세종시로 가는 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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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식 칼럼] 세종시로 가는 국회
  • 김연식 논설실장
  • 승인 2020.12.21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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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식 논설실장

국회가 세종시로 이전될 전망이다. 아직 절차가 많이 남아 있어 언제 옮길지는 모르지만 내년도 예산에 설계비가 반영돼 일단 첫 삽은 뜬 셈이다. 노무현 정부 당시 행정수도 이전으로 거론된 국회의 세종시 이전은 오랫동안 답보 상태에 있었다. 서울시민의 반대와 청와대의 서울잔류 등을 이유로 반대의견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 부처가 세종시로 이전함에 따라 국회와 정부 모두 업무효율성이 현저하게 떨어지고 있다. 국가 예산을 의결하고 감사하는 국회의 업무성격상 정부부처와의 거리는 가까이 있어야 마땅하다. 이러한 상호 연계성에도 불구하고 국회는 정부 부처만 세종시로 이전하고 자신들은 서울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절대의석을 확보한 민주당은 국회를 단계적으로 세종시에 이전하겠다고 밝히고 예산도 확보한 상태여서 현실화는 먼 얘기가 아니다.

우리나라 제헌 국회의사당은 서울 광화문에 있는 옛 조선총독부 건물인 중앙청이었다. 1948년 5월31일 개원한 대한민국 국회는 6.25전쟁 직후인 1950년 6월27일까지 중앙청을 의사당으로 활용했다. 제헌 국회의원 선거는 1948년 5월10일 실시됐다. 좌익의 치열한 선거방해 공작과 김구 김규식 등 민족주의 진영의 선거 불참에도 불구하고 유권자의 95.5%가 투표에 참여해 제주도를 제외한 남한 전역에서 임기 2년의 국회의원 198명을 선출했다. 제주도는 1년 후에 2명의 의원을 선출했다. 그해 5월31일 제헌 국회 개원식이 열리고 초대 의장에 이승만, 부의장에 신익희 김동원을 선출했다. 당시 이승만은 최연장자였다.

제헌국회는 1948년 7월1일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하고, 내각책임제 요소가 가미된 대통령 중심제의 헌법을 만들어 7월17일 국회의장이 서명해 공포했다. 제헌국회는 헌법에 규정된 절차에 따라 7월20일 초대 대통령에 이승만, 부통령에 이시영을 선출했다. 이승만의 대통령 선출로 공석이 된 국회의장에는 8월20일 신익희가 선출됨으로서 사실상 첫 민생국회로 탄생한 것이다.

국회가 개원된 지 2년 만에 6,25 전쟁이 터지자 국회의사당은 서울과 부산 대구에 임시 사무실을 마련해 의정활동을 했다. 당시 임시 국회의사당은 대구 문화극장과 부산극장 경남도청의 무덕진 등이 활용됐다. 6.25가 끝난 후에도 국회의사당은 중앙청과 현재 서울시의회 건물인 시민회관 별관에 터를 마련하고 의정활동을 했으며, 1975년까지 대한공론사와 삼중정(해군본부) 등을 오가며 난민신세를 면치 못했다. 제헌국회부터 제9대 국회까지 무려 27년 동안 남의 집 신세를 전전하다가 1975년 9월22일 지금의 여의도 의사당으로 이전했다.

여의도 의사당은 1969년 박정희 전 대통령 재임시절 착공해 당시 정부 예산의 1%인 135억 원이 투입된 천문학적 공사였다. 대한민국 국회의사당인 만큼 국내 자본과 기술만 쓴다는 원칙이 지켜졌다. 국회의사당은 당초 남산이 후보지로 거론되기도 했으나 청와대가 내려다보인다는 이유에서 여의도로 옮겼다는 설도 있다. 최근에는 2000억 원을 들여 제2의원회관을 신축하는 등 300명의 의원에 맞게 예산도 매년 수천억 원이 투입된다.

제21대 국회가 개원하면서 절대의석을 확보한 민주당은 국회 사무처와 예산 정책 입법조사처 등을 세종시로 이전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그리고 세종시에 소재한 부처 소관 상임위원회인 교육위 문체위 농림해양위 산자중기위 보건복지위 환노위 국토위 정무위 기재위 행안위 예결특위 등 11개 상임위와 특위를 1단계로 이전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국회 이전비로 내년도 예산에 127억 원을 설계비로 반영했기 때문에 가시화 단계에 들어갔다. 국회 각 상임위원회가 이전하면 국회 본회의장도 머지않아 이전돼야 한다. 일각에서는 국회 이전비로 1조원 이상을 추정하고 있어 본회의장까지 이전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국회의사당에는 재떨이가 날아다녔다. 국회사무처는 급기야 1967년 양은재떨이로 교체해 의원들 간의 폭력을 막았으나 그것도 잠시였다. 정책이 있으면 대책이 있다는 말처럼 양은재떨이로 교체하자 재떨이는 물론 명패와 전화기 의자 등의 비품이 정쟁의 전투용으로 동원됐다. 물론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우리나라 국회의 역사이다. 최근에는 국회선진화법이 제정돼 의원들의 폭력사태는 크게 줄었다.

제21대 국회가 국회가 어려운 결단을 하고 있다. 서울을 떠나 지방으로 이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국가의 백년대계를 바라보고 선택하는 일은 국회의원으로서의 당연한 책무다. 아울러 우리 국회가 대결과 투쟁의 정치, 막말과 불신, 폭력과 독주의 정치를 버리고 국민과 함께 하는 새로운 지방시대의 국회를 열어가길 희망한다.

 

[전국매일신문] 김연식 논설실장
ys_kim@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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