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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익의 시선] 나는 이런 나라에서 살고 싶다-팬데믹은 역사의 반복이다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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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익의 시선] 나는 이런 나라에서 살고 싶다-팬데믹은 역사의 반복이다①
  • 양동익 제주취재본부장
  • 승인 2021.01.27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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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익 제주취재본부장

인류는 아주 오래전부터 전염병과 함께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의학이 발달된 지금도 예외는 아니다. 중세 스페인이 중남미를 정복한 과정에서 전염병의 위험성을 극단적인 모습으로 보여주고 있었고 인간사회에 이러한 전염병의 유래에 대한 중요한 과제를 오랫동안 던져 주고 있었다.

피사로의 스페인 군대가 잉카의 수도 한복판까지 쳐들어와 주민들을 죽이는 학살극이 일어나는 중에도 잉카의 황제 반대파들은 상황을 방관만 하고 있었다. 자기들의 적인 황제와 귀족들을 이방인인 스페인인들이 대신 죽여주니 자신들로서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정적을 제거할 수 있는 기회라고 여긴 것이었다.

피사로는 잉카 제국을 공격했을 때 황제를 인질로 삼아 중앙 권력의 상심한 그들을 손쉽게 각개격파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은 몇 안되는 스페인 군대가 잉카제국을 무너뜨린 중요한 이유로 스페인인들이 가져온 전염병이 아즈텍과 잉카를 멸망시킨 중요한 원인이었다고 말한다.

일만년 전, 베링해협이 갈라지면서 신대륙에서는 오랫동안 인체에 치명적인 세균이나 전염병이 존재하지 않았다. 아즈텍인들은 매우 깨끗한 환경을 유지했고 여기를 방문한 스페인 병사들도 감탄할 만큼 위생적이었다. 잉카인들이 고원지대에 살았던 환경은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전염병으로부터 안전하였다.

하지만 유럽에서 온 스페인인들은 이와는 반대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야만인이라고 깔보던 신대륙의 원주민들보다 훨씬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지냈고 덕분에 평소에도 온갖 전염병에 시달렸다. 역설적으로 이런 부분이 신대륙 정복전쟁에서 강점으로 작용하여 스페인 병사들의 몸에 붙어 있던 병균들이 원주민들에게 치명적인 살인 무기가 된 것이었다.

인류역사에서 전염병은 인류의 농경생활과 연관되어 있다. 우리가 정착해서 농경 생활을 하면서부터 굉장히 잦아졌다라고 많은 고고학자들이 말한다. 10명에서 50명 사이 정도가 무리를 지어 다닌 수렵경제의 사람들은 치명적인 바이러스에 걸린다 해도 순식간에 다 죽어 버리기 때문에 그 바이러스도 그 부족과 함께 같이 소멸되어 버렸다.

그러나 농경사회는 농사를 지을 때 수백명 또는 수천명의 사람들이 노동력을 합쳐 농사를 짓기 위해서 마을이나 도시를 이루고 살았기 때문에 치명적인 바이러스도 한 명을 죽인 다음에 다음 숙주로 계속 이동하면서 연명할 수 있었기에 바이러스가 사라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일단 인구 밀도가 높아질수록 팬데믹의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농경사회의 인간이 동물과 훨씬 더 가까이 좁은 공간에서 사는 것도 원인이 된다. 인류가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고농축 탄수화물을 많은 동물과 같이 나눠 먹는다. 예를 들어 소나 말들과 농가에 숨어 들어온 쥐, 말 또는 소에 피를 빨아먹는 벼룩이나 빈대, 파리 등도 농장에서 인간과 같이 생활을 하게 된다. 이렇게 인간과 동물이 가까이 생활하면서 인수 공통 감염병, 즉 사람과 동물을 오가면서 살아남는 그런 미생물들이 창궐하게 된다. 게다가 이제 농사를 짓기 위해 땅을 개간을 하기 위해서는 야생동물이 이미 살고 있는 서식지를 파괴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았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전에 접촉하지 않았던 동물과 접촉을 하게 되고 그 동물에서 살고 있던 전염병이 인간으로 옮기기 때문에 농경사회가 수렵사회보다 훨씬 더 전염병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

또한 농경사회는 사람들이 이동을 하게 된다. 대체로 한 가지로 자기 동네에 맞는 작물만 농사를 짓고 나머지는 교역을 통해서 물건을 얻게 된다. 국가 같이 마을을 초월한 큰 정치 집단은 군대가 이동을 하게 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서로 접촉을 하게 한다. 그러면서 한 문화에서 시작된 전염병이 다른 문화로 퍼져 팬데믹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굉장히 높아지는 것이다.

서구 역사에서 가장 끔찍한 팬데믹 중에 하나로 ‘안토니우스 역병’이 있다. 이는 160년경에 로마에서 창궐한 전염병이다. 로마에서 수백만 명의 죽었을 것으로 추정이 되고 심지어 한 기록에 따르면 로마에서 2천 명이 하루에 사망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훗날 이 전염병은 로마에서만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중국의 한나라에서 이 로마의 팬데믹과 비슷한 시기에 역병이 돌았다는 기록이 있고 그 역병의 징후가 로마에서 돌았던 병과 상당히 유사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로마도 수많은 도시들이 발전을 하면서 살림을 파괴하고 농경이 고도화되고 있었고 한나라도 마찬가지였다. 거대 정치체제가 만들어지면서 마을 간의 교역이 활발해 지고 심지어 실크로드나 인도양 무역을 통해 각 대륙이 연결되고 있던 시대이다. 그리고 인구가 굉장히 팽창하던 시대이기도 하다.

다음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한 것은 흑사병이다. 중국부터 유럽까지 거의 모든 나라에서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세계 인구의 3분의1에서 반 정도가 사망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무시무시한 전염병이었다.

이 전염병은 처음으로 기록된 것이 카파라는 흑해 있는 동네에서 몽골 군대가 생물학전을 하면서 유럽쪽으로 전해졌다. 이 카파가 항복을 하지 않으니까 흑사병으로 죽은 사람들의 시체를 갔다가 투석기로 던져 그 마을 안에서 또 흑사병이 돌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당시 흑해와 유럽 사이의 교역을 담당하던 제노아 사람들이 배를 타고 유럽으로 들어와서 유럽을 초토화시키기 시작했다. 또한 프랑스와 독일의 원시림들이 이 시대에 거의 대부분 사라졌다라고 할 정도로 환경파괴가 굉장히 심하였고 경제가 고도화되던 시기와 일치했다. 인구가 굉장히 많이 늘고 있고 몽골이 개척한 길이 새로운 무역로가 되면서 동 서양 사이의 교류가 굉장히 활발하여졌다.

이러한 유라시아의 오랜 내성은 면역력이 없는 남미의 원주민 수천만명을 한순간에 전멸시켰다. 스페인 군대에 의해 전파된 천연두는 기원전 12세기 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파라오였던 람세스 5세의 미라에도 흔적이 발견된 만큼 아주 오래된 전염병이 바로 천연두였다. 천연두 바이러스는 공기를 통해 매우 빠르게 전파된 것이었다.

[전국매일신문] 양동익 제주취재본부장
waterwrap@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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